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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일보

김교신 일보

(육필일기에 담긴 삶과 시대, 고뇌와 꿈)

김교신 (지은이), 김교신선생기념사업회 (엮은이)
  |  
홍성사
2016-11-10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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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일보

책 정보

· 제목 : 김교신 일보 (육필일기에 담긴 삶과 시대, 고뇌와 꿈)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인물
· ISBN : 9788936503413
· 쪽수 : 300쪽

책 소개

김교신은 성서를 조선 위에, 성서 위에 조선을 세우려 한 신앙인으로, 조선산(産) 기독교, 조선적 기독교 운동을 주창했다. 1932년 1월부터 1934년 8월까지의 일기로, 원문을 가능한 한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오늘날의 독자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역하였다.

목차

간행사/ 이만열
1932년 1~6월/ 1932년 7~12월/ 1933년 1~6월/ 1933년 7~12월/ 1934년 1~8월
발문/ 김철웅 김교신의 주변 인물/ 전인수

저자소개

김교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1년 함남 함흥에서 아버지 김염희와 어머니 양신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부친은 1903년 21세로 요절해 모친의 슬하에서 자랐다. 18세에 함흥농업학교를 마치고, 19세에 도일해 도쿄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에서 당시 일본의 저명한 영문학자 사이토 히사부로 밑에서 영어를 수학했다. 22세에 도쿄고등사범학교 영어과에 입학했고, 중도에 박물 지리과로 전과해 27세에 졸업하고 귀국 후 함흥 영생여고와 서울 양정, 제일(경기), 개성, 송도 등에서 1942년 ‘성서조선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15년을 청년 교육에 종사했다. 그중 양정고등보통학교에서 10년간이 가장 길었고, 1940년 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고)에 재직 중에 불온 인물이라는 낙인으로 6개월 만에 추방되기도 했다. 1920년 4월에 길거리 전도를 받아 홀리니스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같은 해 6월에는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교회 내의 심한 부패와 알력에 회의를 품고 같은 해 11월에 우치무라 간조의 문하에 들어가 7년간 성서 강연에 참석했다. 1927년에는 김교신을 포함한 함석헌, 송두용, 양인성, 류석동, 정상훈 등 우치무라 문하의 신앙 동지 6명이 모여 ≪성서조선≫을 창간했다. 1930년부터는 김교신이 ≪성서조선≫의 주필이 되어 경제적인 면에서부터 원고 작성, 잡지 편집, 배송, 총독부 검열 등 잡지의 제작과 발간, 우편 배송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했다. 그래서 김교신과 ≪성서조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가 쓴 대부분의 수필이나 산문이 모두 ≪성서조선≫에 실려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1942년 ≪성서조선≫의 권두언 <조와(弔蛙)>가 발단이 되어 김교신을 비롯한 구독자들이 검거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일로 인해 김교신은 1년간 옥고를 치르게 되었고, 1943년 불기소 처분으로 출옥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김교신은 한동안 신앙을 전수한 형제들을 방문하며 신앙생활을 독려했다. 1944년 함흥 질소 비료 공장에 입사해 3000여 조선인 노동자들의 복지와 교육, 의료, 주택 등의 개선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1945년 공장 노동자의 병을 간호하던 중에 발진티푸스에 전염되어 갑자기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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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오후에 류달영(柳達永)이 집에 와서 졸업 후의 일을 상담. 교사가 되어 월급쟁이 되는 일을 단념하고, 양정학교 졸업 후 농업으로 자립 생계(生計)하기를 권하다. 옳은 판단인 줄로 자신하기에 말하였다. … 오늘 함(咸) 형(*함석헌)의 편지가 오다. 루비콘 강을 건너섰다고 하다. 오산학교의 앞날을 위해 기도. (32. 2. 13)

◀수업 후에 양정 대(對) 배재 직원 정기 정구시합이 양정 코트에서 열려, 양정이 우승하다.
김은배(金恩培), 손기정(孫基禎), 권태하(權泰夏) 등 선수 일행이 도쿄 예선을 마치고 오후 7시에 경성에 도착하여 직원 및 다수 학생들이 마중 나가다. (32. 6. 2)

◀오전 8시에 청량리의 대학 예과에 출석하여 강습. 돌아오는 길에 김정식(金貞植) 선생을 54번지로 찾아가 뵙다. 저녁에 류영모(柳永模) 씨가 와서 이야기. 11시 반까지의 담론(談論)에 흥겨움이 끝이 없었다. 진정한 방문에 감사. (32. 7. 25)

◀숙직실에서 오전 1시 경에 잠이 깬 후로 4시 경까지 〈성서조선〉발행과, 동지들 생활문제에 관한 몽상 또 공상으로 다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일어나 박물실에서 냉수마찰을 한 후, 시편 102, 137편을 읽으려니 감격이 북받쳐서 자주 소리를 삼켜야 했고, 다시 일본어 찬미가 321, 233, 35번을 부르려니 눈물이 샘솟듯 흐르도다(流淚如泉). 병적(病的)이나 아닌가 하고 의심할 만큼 감동이 격하였다. (32. 10. 8)

◀등교, 당직. 오후 독어 출석.
어젯밤 오전 2시까지 애써서 “조선 반도”라는 글 하나를 어린이 사(社) 윤석중(尹石重) 군에게 보내다. 일반 잡지사에 글 보내기는 처음이다. (33. 6. 26)

◀5시 전에 일어나서 한림(韓林) 군을 생각하며 또 위하여 기도하다. 아침식사를 일찍 마치고, 4년 반의 형기(刑期)를 마치고 출옥(出獄)하는 군을 맞으려고 서대문형무소 문 앞에 가니 7시 10분. 한인숙(韓寅淑), 한진헌(韓鎭憲), 한흥(韓興), 류승흠(柳承欽), 주종선(朱鍾宣) 외 친족, 친구 수십 명이 모여서 기다리다. 8시까지 시간을 끌면서(延引) 나오지 않으므로 나는 등교하여 수업 후에 다시 경일여관에 가서 그를 만나 악수하다. 전후 6년간이나 부자유한 생활을 보내고도 그 심신이 모두 건강함에 놀라다. (33. 9. 6)

◀〈성서조선〉 검열 통과. 날씨는 날로 따뜻해져 얼음이 흩어져 진흙길이다(散氷泥道).
한 일 없이 또 한 달이 갔다. 일은 시작도 못하였는데 시간만 12분의 1이 흘렀다. 365-31=334.
1901년 4월 18일(목) (신축辛丑 2월 30일 병인丙寅)부터 오늘은
8+365×32+(13+31+30+31+31+30+31+30+62) = 11977 (34. 1. 31)

◀《산상수훈 연구》와 〈성서조선〉 구호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것을 볼수록, 출판하는 일을 단념하고 고구마 농사나 전념하고 싶다. 고구마는 아무라도 줄 수 있고, 주면 고마워하려니와, 출판물은 그렇지도 못하다. (34.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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