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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역사
· ISBN : 9788936511357
· 쪽수 : 456쪽
· 출판일 : 2016-01-10
책 소개
목차
한국어판 서문/ 추천의 말 - 야마구치 요이치(山口陽一)/ 들어가는 말
제1부 하비에르 이전의 역사
1. 하타우지(유즈키)와 그리스도교 2. 쇼토쿠 태자와 그리스도교 3. 네스토리안파에 대하여 4. 경교(景敎)의 중국 전도 5. 경교와 일본 6. 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에 대하여 7. 베텔하임의 오키나와 전도 8. 요약
제2부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본 선교
제1장 예수회의 일본 선교
제2장 하비에르 이후의 일본 선교와 발리냐노의 개혁
제3장 오다·도요토미 정권과 그리스도교
제4장 도쿠가와 막부와 그리스도교
제3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일본 선교: 전전(戰前)
제1장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개시
제2장 최초의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설립과 고찰(高札)의 철거
제3장 초기 프로테스탄트의 3대 원류
제4장 성장기의 교회: 1874-1890년
제5장 전도 부진의 시대: 1891-1900년의 교회
제6장 메이지 말기의 교회: 1900-1912년
제7장 다이쇼기의 기독교회: 1912-1926년
제8장 쇼와기(昭和期)의 교회: 전전(戰前)
제9장 전시하(戰時下)의 교회
제4부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일본 선교: 전후(戰後)부터 현재까지
제1장 연합군 점령 시대와 기독교
제2장 전후 기독교회의 전개
제3장 1960년대부터 1970년대의 교회: 고도성장에서 혼미의 시대로
제4장 1980년대의 교회: 천황의 세대교체를 중심으로
제5장 1990년대의 교회
제6장 21세기를 맞이한 세계와 교회
제5부 재포교 후의 가톨릭교회사와 하리스토스정교회 약사(略史)
제1장 재포교 후의 가톨릭교회사
제2장 일본 하리스토스정교회 약사(略史)
부록
주/ 연표/ 찾아보기: 인명/ 나가는 말/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일본 기독교사 연구를 시작한 동기는, 일본 프로테스탄트 선교 역사가 짧지 않음에도 왜 일본 기독교인은 인구 대비 1퍼센트의 벽을 넘지 못하는 소수자에 그치고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였습니다. 따라서 서구 선교사들은 어떤 복음을 전했으며 일본인은 이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알고자 했습니다.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일본에서 선교가 보다 효과적으로 진행되어 교회가 성장할 것인가 하는 실마리를 찾는 것이 바람이었습니다. … 이 책의 번역 출판을 통하여 한국의 많은 분께서 일본 교회의 역사와 기독교의 양상 및 과제를 한층 이해하는 계기가 되며, 두 나라의 선교 협력을 위해 작으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_ ‘한국 독자 여러분께’
이러한 일본의 기독교 수용의 특색을 한국과 비교해 보면, 차이점이 더욱 명확하다. 한국의 경우, 기독교는 처음부터 일반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한 선교의 양상은 네비우스 선교정책(Nevius Plan)을 철저히 활용했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이 정책의 중심점은 상류계급보다는 일반대중, 근로자 층을 대상으로 전도해야 하고, 여성들에 대한 전도가 매우 중요하며, 주부가 후대 교육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화여자대학교 등 여성을 위한 미션 스쿨이 한국에서는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끼쳐 왔다. 이와 같이 처음부터 대중에 초점을 맞춰 철저히 전도했기에 한국 교회는 혹독한 일제 식민 통치기에도 국민과 운명을 함께했던 것이다. _ 제3부 제2장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고찰 철거
전쟁 책임에 대한 태도가 애매모호한 일본 교회를 독일 교회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같은 패전국인 독일의 고백교회는 1945년 10월에 ’슈투트가르트 죄책선언‘을 발표하고 이 전쟁에 교회가 범한 죄를 고백했다. (중략) 나치 독일과 싸우며 순교자까지 배출한 교회이면서도 그들은 스스로 전쟁 책임을 통렬하게 묻고 그 죄를 솔직하게 회개하며 고백한 것이다.
왜 전쟁 책임에 관하여 일본 교회와 독일 교회는 이렇게 다른 것일까. 그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일본 교회가 스스로를 군국주의 체제의 피해자의 입장에 두는 데서 탈피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 의식에서 스스로 전쟁 책임을 묻는 태도는 생겨나지 않는다. 더욱이 전후 일본을 지배한 GHQ(연합군총사령부)는 일본 교회에 검사(檢事) 역할을 하려 하지 않은 채, 더없이 관대하고 호의적이었다. (중략)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던 교단이 GHQ가 전면적으로 호의를 보인 것에서 자신의 의기를 다지며 전쟁 책임을 유보한 채 기독교 대유행에 편승하여 전후 재출발을 도모했던 것이다. _ 제4부 제1장 ‘연합군 점령 하의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