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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88936803902
· 쪽수 : 330쪽
· 출판일 : 2009-01-05
목차
작가의 말- 역사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프롤로그 - 조선의 굴욕외교, 그 원천
태조에서 문종까지 1392~1452
쿠데타의 시나리오
임금님의 이름은 세 가지
삼봉 정도전이 도도한 식견
스물두 살의 지성
세 잔의 술
대마도 정벌
숭례문, 옛 이야기
베이징 올림픽과 미래의 중국
단종에서 연산군까지 1453~1595
수양이 뽑아 든 난세의 칼
잘못된 소설 《단종애사》
압구정과 칠삭둥이 한명회
죽음을 <졸기>에 적어서
임금님의 과외공부
조선조 최고의 지식인 여성
사모곡
판내시부사 김처선
중종에서 광해군까지 1506~1622
쿠데타의 도덕적 규범
정암 조광조의 비극
문정왕후의 독단
10만 양병론의 허구
조선통신사
광해군의 이중외교
폐모·살제의 진상
아름다운 이름 ‘청백리’
인조에서 경종까지 1623~1724
역사의 흐름에도 ‘틀’이 있다
명·청 교체기의 입씨름
사연 많은 강화 섬
소현세자와 서양문물
‘화냥년’이 돌아오다
독대가 좌절을 부르다
무식하면 나서지도 말라
통한의 《인현왕후전》
스승과 제자의 싸움
영조에서 현종까지 1725~1849
영조의 콤플렉스
아들을 굶겨 죽인 아버지
정조 이산
지식인이 가는 길
에세이와 역사의 거리
여자의 원한이 싹을 틔우면
아! 슬프다. 페니스를 자르며
저는 기생이 초월입니다
철종에서 일제강점기까지 1850~1945
강화도령, 철종
개혁과 탐욕
여우사냥
1세대 개화사상가
<사토 페이퍼>에 적힌 이동인의 모습
융희황제의 때 늦은 후회
거룩했던 두 지식인의 삶
이방자 여사의 한국어
에필로그 - 나라의 정체성과 역사인식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제8일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임금이 뒤주에 구멍을 뚫고 손을 넣어 만져 보라 하니 벌써 절명하였는지라, 뒤주를 동궁으로 옮기고 못을 뽑고 열어보니, 세자는 드러누워 한 다리를 꼬부렸는데 도저히 펼 수가 없고, 판장板張을 뜯어보니 박은 못이 다 휘어 꼬부라져 있었다. 이날이 윤 5월 21일 새벽이었다.
이 얼마나 참담한 정황인가. 자식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들은 영조는 눈시울이 젖어드는 것을 참지를 못한다.
“세자의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를 차비를 갖추도록 하라!”
영조는 중얼거리듯 뱉어낸다. 부정父情일 것이리라. 그는 맹자의 고사를 떠올리며 그간에 내렸던 세자의 죄를 사한다는 교서를 내린다.
죽은 세자에게는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고, 세자빈 홍씨에게는 혜빈惠嬪이라는 군호와 옥인을 함께 내려서 부왕으로서의 회한을 풀었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기록한 문서는 그리 많지 않다. 사도세자의 빈이자 정조의 모후인 혜경궁 홍씨가 환갑을 맞아 사가의 아우 홍낙인의 큰아들 홍수영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쓴 《한중록閑中錄》이 거의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사도세자가 죽음에 이른 세세한 과정이 적혀있을 당시의 <승정원일기>는 영조가 직접 불태워 없애 전해지지 않는다.
영조의 세자였던 선, 그는 보위에 오르지 못한 채 28세의 나이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다. ‘뒤주왕자’라고도 불리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어찌 해석해야 옳을까. 일부에서는 영조가 경종을 독살케 한 사실에 누구보다도 깊이 의아심을 품은 세자가 영조를 임금으로 밀어올린 노론 세력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언동을 보였기에 노론의 주축들이 후일을 위해 미리 그를 제거하였다는 설, 또 다른 일부에서는 영조의 변덕과 세자의 질병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임금 된 아버지가 세자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두어서 굶겨서 죽였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 본문 '아들을 굶겨 죽이는 아버지' 중에서
장장 34대, 475년 동안이나 왕권을 이어 온 고려왕조는 이렇게 종말을 고한다.
쿠데타의 실세들은 이성계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강청하지만, 이성계는 ‘학덕을 갖추지 못한 자질로 어찌 왕위에 오를 수가 있는가.’를 되풀이 강조하며 극구 사양하다가, 마침내 7월 17일 또 다시 실세들에게 등을 떠밀리어 용상에 오르는 구색을 갖추면서 수창궁 화평전에서 스스로 임금의 자리에 올라 새 나라의 창업을 선언하였지만, 실상은 나라의 이름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1월 27일에 이르러 비로소 새 나라의 국호를 거론하게 하였더니, 여러 의논들로 분분하다가 마침내 ‘조선朝鮮’과 ‘화령和寧’의 두 가지로 압축된다.
조선이야 예로부터 동이東夷의 나라로 불리어왔으니 당연히 거론되어 마땅하지만, <화령>이라는 지명이 국호로 등장한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화령은 영흥부이니 지금의 함흥이다. 영흥부는 태조 이성계가 태어난 곳,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의 주면에는 아첨하기를 좋아하고, 줄서기에 능한 위인들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전하, 화령은 전하께서 탄신하신 성스러운 곳이오니, ‘화령’으로 새 나라의 국호를 삼으심이 옳은 줄로 아옵니다.”
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던 모양으로 ‘조선’과 ‘화령’의 두 가지 국호가 끝까지 남아서 경합하게 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과 화령 중에서 국호를 정하기로 하고 명나라 황제에게 재가를 청하는 사신을 보내게 된다. 쿠데타로 나라를 세웠으니 이미 정해진 국호를 묻는 것이 무례한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해 주기를 청하는 편법을 쓰면서 자신이 가장 신임하고 있던 한상질韓尙質(칠삭둥이한명회의 조부)을 주청사로 선임하여 명나라로 보낸다.
명나라 황제의 답서는 이러하다.
동이東夷의 국호에 다만 ‘조선’의 칭호가 아름답고, 또 그것이 전래된 지가 오래되었으니, 그 명칭을 근본하여 본받을 것이며, 하늘을 본받아 백성을 다스려서 후사를 영구히 번성케 하라. - 본문 '쿠데타의 시나리오'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