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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7483936
· 쪽수 : 240쪽
책 소개
목차
전망 좋은 집
남자를 빌려 드립니다
미성년
강변의 추억
아바타를 사랑한 남자
그림자
장군 의자
작가의 말
작품 해설
허구의 이미지와 이미지의 허구 | 김진수(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원래 인간이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휴식과 평화를 느끼고 나아가 몽상에 젖어 들지.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현대인들은 휴식과 몽상은커녕 오히려 불안에 떨어. 그러니 질병이랄밖에.”
“왜 그럴까?”
“그야, 휴식과 몽상이 경제 활동에 장애가 되고 그러다간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고 말 거라는 강박 관념 때문이지.”
('전망 좋은 집' 중에서/ pp.25~26)
내 인생은 한때 양지였으나 지금은 햇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음지다. 어느 날 사람들이 나를 슬슬 피하는 이유를 주차장에서 깨달았다. 똥차 옆에 고급 차가 주차되는 법은 없다. 함부로 굴러다니는 똥차는 다른 차에 흠집 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도시민들은 본능적으로 하이에나를 알아보고 경계하는 것이다. 세상인심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어서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일도 없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에 금을 긋고 어디에 발을 디딜지 번민했다. 문득 더 이상 잃을 것도 불행해질 일도 없으며, 본래부터 빈손으로 온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졌고, 촘촘한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하이에나의 자유는 생각보다 달콤했다.
('남자를 빌려 드립니다' 중에서/ p.38)
“지옥 훈련이란 어떤 훈련입니까?”
“다 놈들의 개수작이죠.”
그리고 류 씨는 입을 다물었는데 다분히 회사의 정책에 반발하는 어투였다. 나는 맞장구를 치려다가 그만두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뱃전에 부딪히는 물결 소리가 찰랑찰랑 들려왔다. 잔잔한 물결 위에 달빛과 별빛의 꼬리들이 아롱거렸다. 노를 젓지 않아도 나룻배는 조금씩 흘렀다.
“지옥 훈련이 무진장 힘들었던 거로군요?”
“뭐, 군대 갔다 온 사람이라면 옛날 생각 하며 받을 만해요.”
병약한 류 씨의 생김새로 미루어 보아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탈출했습니까?”
류 씨가 운동복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 불빛에 그의 얼굴이 환히 드러났다. 류 씨의 입에서 나온 담배 연기가 푸른 어둠 속으로 풀풀 날아갔다.
“김 형,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지옥 훈련 따위나 강요하는 이 사횝니다. 요새 기업들은 무슨 유행처럼 그따위 돼먹잖은 훈련을 신설하고, 또 매스컴은 그런 훈련 덕분에 생산성이나 업무 능률이 배가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 대고 있어요.”
('강변의 추억' 중에서/ pp.12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