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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39231634
· 쪽수 : 164쪽
· 출판일 : 2024-12-31
책 소개
목차
1부
횃불 11
새 13
도자기 15
짐 17
호수에서 19
액자 속 바다 21
파도 23
북소리 25
대전의 별, 신채호 27
임란의사 추모탑 29
대가야에서 31
클로버라는 이름의 박애주의자34
비둘기 37
동물원 탈출 챌린지 39
2부
오늘 45
기억 속 방랑자 46
그늘의 무덤 48
겨울나무 50
꿈이 뿌리내리기까지 52
소금 54
여름 식탁 55
가을 57
별자리 59
낙타 61
가을 63
슬픈 이야기 65
꿈길 67
오솔길 69
3부
검은 새 73
자작나무 75
장마 77
거미 79
회룡포에서 81
반딧불이 83
길 85
동백꽃 87
열쇠 88
소풍 91
샛강 93
지하철 95
도산 안창호 선생 97
매미 99
4부
돌탑 103
안중근 의사 105
가위 107
하늘 108
백두산 가는 길 111
숲 113
나무의 노래 114
기린 115
매헌 윤봉길 의사 117
하늘 120
밥 122
빙어 무도회 124
물방울 126
해설 | 이영춘 128
시인의 말 149
역대 수상 목록 150
저자소개
책속에서
김하은 시의 특성과 시적 알레고리
문학의 3대 특성 중 하나는 보편성이다. 이 보편성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세계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emotion를 뜻한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기생충>이란 영화가 칸 국제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비롯하여 네 개의 상을 휩쓴 것도 이 ‘보편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김하은은 백일장에 참여하여 시제가 주어질 때마다 가장 먼저 화자, 혹은 시적 대상으로 설정하는 주인공이 ‘아버지’이다. 이때에 그 ‘아버지’는 권력도 부富도 가진 것이 없는 민초들의 상징적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는 주로 노동자 농민으로 인력시장에서 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로 등장한다. 「새」란 작품부터 감상해 보자.
조류 도감 첫 페이지
비석처럼 나열된 목차들 사이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지고 있다
반세기가 넘도록 파닥이다가
퇴화한 지 오래인 아버지의 날개는
몇 년 전 떨어지던 철근이 어깨에 박혔을 때
마른 등에 흉터로 굳어 버렸다
공사장 계단에서 미끄러지며
시멘트 바닥으로 추락하던 굽은 등의 새
매일 날개에 스며들던 통증
마침내 병원에 둥지를 틀었다
얼음찜질을 하다 곤히 잠든
나이 많은 새의 등에 새겨진 날개의 역사
튀어나온 척추 양옆에 남겨진 깃털 하나하나가
새가 날아온 발자국이다
하루가 넘어갈 때마다
흔적처럼 어제와의 경계에 흘린
지울 수 없는 흉터 같은 눈물 한 방울이다
-「새」 1,2,3,5연
아버지를 ‘새’로 형상화하여 첫 행에 “조류 도감”을 끌어온 발상부터 기발한 알레고리다. 그리고 그 “조류 도감 첫 페이지”에 “비석처럼 나열된 목차들 사이/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지고 있다”는 표현은 환자들의 이름이 나열된 명부를 암시한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노동을 하다가 “몇 년 전 떨어지던 철근이 어깨에 박혔”는데 이번에는 또 “공사장 계단에서 미끄러지며/시멘트 바닥으로 추락”한 “굽은 등의 새”로 상징화되었다. 이 ‘새’는 아버지를 날개 잃은 새로 승화시켜 낸 기법이다. 시는 곧 은유의 언어이다. “시의 언어는 은유를 대리인으로 한다는 것은 새로운 뜻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한 쉘리의 말과 같이 뛰어난 상상력으로 이 시 「새」의 5연과 같은 수사법을 구사, 구가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김하은 시의 강점이다.
지워지지 않는 파랑이 있다
곤히 잠든 아버지의 숨소리는
방 안의 적막을 채우며 너울지고
하늘과 맞닿은 푸른 일터는
어부들의 발자국을 삼키며 몸집을 키운다
파도는 요동치며 계곡을 만든다
아버지가 건너간 수면의 굴곡 위로
선박의 그림자가 푸른 물때처럼 흔들린다
-「파도」 1~2연
노란 형광 조끼를 걸친 아빠의 빗자루가
길가를 쓸고 있는 가을날
쓰레받기로 밀려 들어가는 낙엽 사이에
아빠의 계절이 숨어 있다
가을이 다가온 것도 잊은 채
종일 비질을 하는 아빠
눈물처럼 떨어지는 땀방울이
단풍에 물든 듯 붉은 얼굴을 식혀주고 있다
거리의 가장자리를 청소하는 아빠의 계절
굽은 허리 위에 쌓인 낙엽은
누가 쓸어줄 수 있을까
-「가을」 1,4연
아빠의 허리가
익어가는 벼처럼 구부러지는 여름날
잡초를 뽑는 주름진 얼굴이
땀방울에 잠기는 정오가 되면
아빠는 논바닥에 뿌리내렸던 몸을 이끌고
나무 밑 잔디밭으로 걸어간다
허공에 그림자를 걸어 놓고
잔디밭을 식탁 삼아 새참을 먹는 아빠
푸른 식탁은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어
그릇과 함께 고단한 하루도 올려 놓는다
하늘의 발자국을 반찬 삼아
숟가락을 들어 올리는 아빠
-「여름 식탁」 1~2연
이 세 편의 시에서도 ‘아버지’를 시적 대상으로 하고 있다. 「파도」에서의 아버지는 어부로 종사하는 노동자로 묘사되고 있다. 아버지의 힘든 노동을 「파도」라는 제목과 잘 매치시킨 극적 효과의 형상화다. 「가을」의 제재는 청소부로 매치시킨 아버지다. 이 청소부의 노동을 “눈물처럼 떨어지는 땀방울”로 힘든 노동을 암시한다. 실제로 청소부들의 노동은 매우 힘들다고 한다. 특히 음식물을 수거하는 청소부들의 노동은 부패되어 흘러내리는 음식물로 인해 삼백육십오일 역겨운 냄새에 시달린다고 한다. 「여름 식탁」에서는 아버지를 농부로 형상화하여 “아빠의 허리가/익어가는 벼처럼 구부러지는 여름날”이란 동일시 현상의 기법으로 의인화하고 있다. 특히 2연에서는 “잔디밭”과 “지평선”을 “푸른 식탁”으로 비유한 것은 과연 김하은은 이미지 창조의 재벌가이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작품 「여름 식탁」은 2023년 9월 8일 「메밀꽃 필 무렵」의 고장 봉평 이효석 백일장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받은 ‘대상’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