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53126992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16-11-28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복음은 종교가 아닙니다
PART 1. 치열하게 돌이키라
01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눈물이 보이지 않습니까?
-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해서 부르셨습니다
02 교단에 속했습니까, 그리스도께 속했습니까?
-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03 논리로 십자가를 설명할 수 있습니까?
- 세상은 지식으로 일하지만 교회는 지혜로 일합니다
04 분명한 복음에 왜 세상 논리를 덧칠합니까?
- 우리가 엉망이어도 복음은 복음입니다
PART 2. 치열하게 성숙하라
05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 영적인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06 언제까지 어린아이로 있겠습니까?
- 완벽이 아니라 성숙을 원하십니다
07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노합니까?
-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PART 3. 치열하게 살라
08 세상과 똑같다면 신앙이 무슨 소용입니까?
- 똑똑하지 말고 바보같이 지혜로우십시오
09 나를 본받으라 말할 수 있습니까?
- 우리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0 감추기만 하는데 어떻게 씻습니까?
- 죄가 드러나는 것이 순결입니다
PART 4. 치열한 복음으로
세상에 기준을 다시 세워라
11 사랑과 용서를 버릴 수 있습니까?
- 우리는 새로운 기준으로 삽니다
12 남들 다 하는 이혼, 해야겠습니까?
-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책임은 있습니다
13 무엇을 위해 조바심 내며 삽니까?
- 규범은 지키면 좋은 것이지 진리가 아닙니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당신은 신앙인입니까, 종교인입니까?
별 차이 없이 들릴 수 있지만, 이 두 단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믿지만, 종교인은 그들이 만든 율법을 믿습니다. 신앙인은 기준이 하나님이지만 종교인에게 기준은 율법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신앙인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고민하지만, 종교인은 ‘율법적으로 이 일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집니다.
이 시대 교회에는 신앙인보다 종교인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였던 교회에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은 사라져 버리고 율법과 규칙만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그것이 옳은 일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옳은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하나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버릴 만큼 우리를 사랑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놓고 서로 편을 갈라 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상대방의 생각은 틀렸다고 손가락질하며 지적하고 끌어내리지는 않습니까? 과연 내가 생각하는 옳은 것이 정말 옳습니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없다면 교회는 그 옳은 일을 하다가 깨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옳은 일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받고 병을 고칩니다. 사탄에 묶인 환자를 돈으로 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이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병 고침 받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연 그가 성경의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라서 그를 찾아가는 겁니까? 아니면 단지 병 고침 받기 위해 찾아가는 것입니까? 병을 고치려면 병원에 가야지 왜 사람을 찾아갑니까? 성경 어느 곳에 돈을 주고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나옵니까? 성경 어디에 돈을 받고 예언했다는 얘기가 나옵니까? 성경의 진리를 따르는 사람도 아니고 정식 허가를 받고 병을 고치는 의사도 아니라면, 그는 귀신을 쫓기 위해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굿을 해주는 무당과 무엇이 다릅니까?
고린도교회에 일어난 문제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로 사람들을 속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은사를 받고 은혜를 체험한 뒤 우쭐해져서 그렇지 못한 사람을 판단하며 용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내가 경험한 은혜와 은사를 가지고 사람들을 제멋대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분류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조주의에 빠진 바리새인의 행태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를 때까지 믿음 위에 서서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복음을 모두 잃어버린, 변질된 진리 때문에 우리는 돈과 명예와 성적으로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한때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홍혜선 전도사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언론이 돈에 매수되어 종북주의자가 되었다고 비판하면서 하나님이 2014년 12월에 한국 땅을 심판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해외로 도피해야만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해외로 도피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이 전쟁이 일어나면 피신하라고 가르칩니까? 조국과 가족, 더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일까요? 그런데 성경과 너무나 거리가 먼 이런 말들에 현혹되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세상의 방법을 가지고 돈을 취하고 명예를 취하고 복음의 본질을 어지럽히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때로 무섭게 비판합니다.
바울은 이 고린도교회를 향한 서신에서 교회가 십자가의 복음을 놓쳐 버리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사람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깊이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를 통해 세상의 숱한 현혹들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원리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지인 중에 어느 판사가 하는 말이, 교회 안에서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면 누구도 말릴 재간이 없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나 주먹으로도 해결하고 술 한 잔 마시면서도 해결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양쪽 다 하나님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똑같은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 맞습니까? 설령 내가 옳았고,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승리라면 그것이 옳은 승리일까요?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라고하면서 지체들이 제멋대로 주장하고 갈등하고 싸운다면 그것이 어떻게 교회겠습니까? 이미 그 교회의 머리는 예수가 아닌데 말입니다.
감자탕 교회로 잘 알려진 서울광염교회의 조현삼 목사님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교회 초창기 때였는데, 교인들이 서로 너무 싸우더랍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서로 잘해 보려고 싸운다는 겁니다.
“목사님,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이게 다 잘해 보려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니까 정말 잘못되자고 싸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우리 잘하지 맙시다. 잘하려고 싸울 거면 싸우지 말고 그냥 보통만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무조건 양보하고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뭘 잘하려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곳입니다. 교단과 교파가 생긴 것도 잘하려다 그리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집중하지 않고 잘하려고만 하면 곧 타락하게 되고 어떤 기준이나 법이 우상이 되고 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