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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88954431927
· 쪽수 : 588쪽
· 출판일 : 2016-09-12
책 소개
목차
해 질 무렵 안개 정원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가상 세계로 도망쳤어요. 어떤 사람들은 꿈꾸는 집을 짓거나 요트를 만드는 상상을 했어요. 상상할 수 있는 세세한 부분이 많을수록 우리를 에워싼 공포감에서 더 멀리 벗어날 수 있었지요. (중략) 윤 홍이 방문했던 교토의 정원을 떠올리며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이야기한 덕분에 우린 온전히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언니는 내게 말했죠. ‘우린 이 방법으로 목숨을 부지할 거야. 이게 우리가 수용소에서 걸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이야.’”
해가 산맥을 뚫고 나왔다. 멀리 나무 꼭대기 위로 새 떼가 검은 실처럼 하늘을 가로질렀다.
“가문의 명예.”
아리토모가 대답했다.
내가 만났던 일본인 전범들이 자주 그렇게 합리화할 때마다 혐오를 느꼈다. 아리토모가 이어서 말했다.
“자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 우리 아버지는 내가 일본을 떠난 직후에 세상을 떠나셨지. 동생은 부친의 타계가 내가 저지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그는 지팡이 끝으로 물가의 자갈을 긁었다. 아리토모가 계속 말했다.
“자네를 만나기 전, 그러니까 자네가 여기 오기 전에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 중에 일본 점령 때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이가 없었어. 물론 이곳 사람들이 내 모국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실은 알았지. 마을 사람들, 이곳 일꾼들, 매그너스와 에밀리까지도.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에서 멀찌감치 있었지. 모든 불쾌한 일과 거리를 두고 지냈어. 오직 내 정원에만 신경 썼지.”
첫 저녁 별이 나타났다. 몇 분 전에 쏟아진 빛에 압도된 듯 별빛은 뿌옇고 흐릿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인생은 공평하지, 그렇지 않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비행기를 만들었다. 그러니 계산을 맞추어야겠지. 내 아들도 죽어야 될 거야.”
그는 흔들림 없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명령에 불복종하라고 너에게 압박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두어라. 네가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해야 될 일을 너도 인정해야 한다.”
아버지는 한동안 앉아 있었고, 어찌나 가만히 있던지 저는 속으로 그가 다시는 움직이지 않기를 바랐지요. 아버지가 이 일을 하느니 차라리 돌로 변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아버지가 단도를 집어 칼집을 벗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