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88959066100
· 쪽수 : 316쪽
· 출판일 : 2021-07-09
목차
책머리에 - 건축은 전쟁의 생존자
1장: 프랑스 - 낭만의 나라에 숨겨진 전쟁 이야기
에펠탑 - 히틀러도 정복하지 못한 파리의 상징
에투알개선문 - 전승 기념비 열풍의 원조
루브르박물관 - 나폴레옹의 야욕과 집착의 산물
앵발리드 - 황금 돔으로 빛나는 프랑스군의 기념물
베르사유궁전 - 화려함에 가려진 프랑스의 역사적 순간들
랑부예성 - 나폴레옹의 치욕과 드골의 영광이 공존하다
마지노선 - 슬픈 역사가 된 유럽의 만리장성
2장: 독일 -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베를린전승기념탑 - 베를린을 굽어보는 영원한 랜드마크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 수도 한복판에 우뚝 솟은 지붕 없는 교회
노이에 바헤 추모기념관 - 단순한 공간, 단순치 않은 슬픔
브란덴부르크문 - 격동의 현대사를 말없이 증언하다
하이델베르크성 - 전쟁으로 얼룩진 독일 건축의 걸작
드레스덴 성모교회 - 부서진 벽돌로 되찾은 귀중한 유산
3장: 영국 - 끊임없이 전쟁터가 되어온 섬나라
런던탑 - 매년 빨간 양귀비꽃으로 장식되다
웨스트민스터사원 -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영국의 성역
대영박물관 - 다른 나라의 유물이 더 많은 박물관
윈저성 - 왕실의 깃발이 나부끼는 둥근 탑의 성
칼라일성 -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치열한 격전지
도버성 - 34만 명을 구한 세기의 구출 작전이 시행되다
에든버러성 -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격받은 요새
4장: 이탈리아 - 유구한 역사만큼 긴 전쟁의 역사
콜로세움 - 생명이 여가의 수단이 된 투기의 장
콘스탄티누스개선문 - 로마제국의 영광을 간직하다
티투스개선문 - 로마인에게는 기쁨, 유대인에게는 아픔
산마르코대성당 - 뺏고 뺏기는 전리품의 화려한 전시장
몬테카시노수도원 - 한 수도원이 거친 오뚝이의 역사
5장: 러시아 - 동토에 새겨진 전쟁의 흔적
크렘린궁전 - 800여 년을 함께한 러시아의 붉은 심장
예르미타시박물관 - 수많은 문화유산의 아늑한 은둔처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 감옥으로 악명 높았던 무용지물의 공간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하지만 에펠탑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프랑스가 마지노선을 쌓고 만전을 기했지만 1940년 5월, 독일은 개전開戰 6주 만에 파리를 함락한다. 1940년 6월 22일 히틀러는 프랑스와 휴전협정을 맺은 후 파리를 방문해 파리의 오페라하우스, 에투알개선문, 앵발리드, 에펠탑을 둘러보았다. 히틀러는 에펠탑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이 승강기의 케이블을 끊어놔 계단으로 올라가야 해서 포기하고 만다. 이를 두고 “히틀러가 프랑스는 정복했으나 에펠탑은 정복하지 못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진다. 독일군은 탑 꼭대기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서 나치즘Nazism을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Hakenkreuz(‘갈고리 십자가’라는 뜻)를 내걸었고, 깃발은 4년 가까이 에펠탑에 걸렸다. (「에펠탑 - 히틀러도 정복하지 못한 파리의 상징」)
마지노선은 전투 공간뿐만 아니라 대규모 병력이 상주해 생활할 수 있도록 통신, 에어컨 등의 전기 장비를 갖추었다. 또 지하 통로와 레일을 통해 이동할 수 있도록 연결했으며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탄약 운반 리프트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강철과 콘크리트로 지은 보루의 가장 얇은 벽두께도 3.5미터나 될 정도로, 이 요새는 독일 대포의 420밀리미터 포탄을 한 번, 300밀리미터 포탄을 여러 번 정통으로 맞아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당시 최대의 거포巨砲라 불리는 구스타프나 칼 자주 박격포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마지노선을 뚫으려는 독일의 노력이기도 했다. 당시 히틀러가 프랑스 침공을 주저하던 이유도 마지노선 때문이었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10년에 가까운 건설 기간을 고려한다면 마지노선은 분명 프랑스에 든든한 존재로 비쳤을 것이다. 그렇게 마지노선은 프랑스 국민에게 ‘난공불락’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마지노선 - 슬픈 역사가 된 유럽의 만리장성」)
종전 후 1956년엔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를 다시 짓기로 하고 공모전을 진행했다. 그 결과 독일의 유명 건축가 에곤 아이어만Egon Eiermann, 1904~1970의 설계가 채택된다. 그는 붕괴 위험을 안은 종탑을 허물고 새로 짓는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종탑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이를 수용해 베를린에서는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의미로 교회를 보수하지 않고 원래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중략)
현재 베를린 사람들은 교회를 간단하게 ‘KWGKaiser-Wilhelm-Gedachtniskirche’라고 하거나 생긴 모양을 빗댄 애칭인 ‘깨진 이’ 또는 ‘썩은 이’로 부르기도 한다. ‘기념교회’를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 ‘Gedachtniskirche(게데히트니스키르헤)’에서 ‘Gedachtnis(게데히트니스)’의 의미는 ‘기억’이다. 오늘날 기념교회가 기억하는 대상은 빌헬름 1세가 아니다. 전쟁이 끝난 후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기억하는 것이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입은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평화의 경고비’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 수도 한복판에 우뚝 솟은 지붕 없는 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