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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 붓다의 진의를 추적하다

금강경 : 붓다의 진의를 추적하다

이승명 (지은이)
  |  
한솜미디어(띠앗)
2014-08-10
  |  
18,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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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 붓다의 진의를 추적하다

책 정보

· 제목 : 금강경 : 붓다의 진의를 추적하다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경전/법문
· ISBN : 9788959594009
· 쪽수 : 464쪽

책 소개

금강경을 보통 공부하기 위해서는 한자로 된 구마라집본 금강경을 읽으면서, 혹은 번역해 놓은 것을 읽어야 하는데, 그 번역한 것의 뜻을 알기 위해서 또 사전을 찾아야 하고, 사전에 나오지 않은 것은 또 불교 용어를 익혀야 한다.

목차

서문/ 4
참조한 번역본에 대한 소감을 말하자면…/ 10
붓다를 생각한다/ 11
일러두기/ 12
금강경에 대한 간략한 상식들/ 18

금강반야바라밀경

1절 |법회가 시작되다/ 30
2절 |수보리가 가르침을 청하다/ 41
3절 |관념을 없애라/ 52
4절 |의존하지 않는 보시를 하라/ 74
5절 |특징에 집착하지 말라/ 88
6절 |미래에도 깊은 믿음을 가진 중생은 있다/ 98
7절 |법은 말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121
8절 |붓다의 법은 이 법문에서 나왔다/ 134
9절 |관념을 버린 자가 진정한 과실을 얻는다/ 151
10절 |장엄한 불국토는 장엄하지 않다/ 170
11절 |공덕을 비교하다/ 196
12절 |법문을 가르치는 장소를 탑묘와 같이 생각하라/ 206
13절 |지혜를 완성했다고 하지 말라/ 219
14절 |관념을 떠난 보시를 하라/ 242
15절 |법문의 효력은 불가사의하다/ 277
16절 |까르마를 없애는 법문/ 290
17절 |법도 없고 자아도 없고 일체법이 불법이다/ 299
18절 |오안(五眼)에 의해서 마음의 흐름을 보라/ 322
19절 |공덕은 쌓이지도 않고, 쌓인 것도 없다/ 340
20절 |몸의 형상도, 특징을 갖춤도 없다/ 345
21절 |가르침도 없고, 중생도 없다/ 351
22절 |법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 357
23절 |선법으로 깨달음을 이루라/ 361
24절 |법문을 가르치는 공덕은 무한하다/ 367
25절 |중생은 해방되지 않았고, 해방될 중생도 없다/ 371
26절 |특징을 갖춘 것에 의해 여래가 보이지는 않는다/ 377
27절 |법은 소멸하거나 끊어지지 않는다/ 386
28절 |공덕에 집착하지 말고, 받도록 하라/ 393
29절 |여래는 가지도 오지도 않는다/ 401
30절 |덩어리로 뭉쳐진 것의 모습을 떠나서/ 405
31절 |일체법을 알고, 보고, 믿어야 한다/ 422
32절 |가르침은 드러내지 않고 하도록/ 429

마치는 말 / 436

부록 |금강경에 나온 내용들의 분류/ 439

저자소개

이승명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변호사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동법과대학원 법학석사 동법과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과 졸업 한국디지털대학교 예술학과 졸업 (현 고려사이버대학교) Wimbledon School of English Advanced Course(40weeks) 수료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중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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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24절
법문을 가르치는 공덕은 무한하다

“그리고 또다시 수보리여, 여자나 남자가 삼천대천세계의 수메루산 왕만큼 많이 쌓인 칠보를 모아서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은 분들에게 보시를 한다면,

그리고 좋은 가문의 아들과 딸이 이 반야바라밀다의 법문으로부터 단지 네 구절로 된 게송을 뽑아서 남들에게 가르쳐준다면,

수보리여, 이 공덕에 비하여 저 앞의 공덕은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비교조차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해설]

다시 물질적 보시와 법문의 보시를 비교하고 있다. 이러한 비교는 6번째로 나온 것이다. 처음에 우주의 십억 세계를 칠보로 채우는 보시와 법문의 보시를 비교하였고, 그 다음 셀 수 없는 우주를 칠보로 채우는 보시, 세 번째 갠지스 강의 모래 수와 같은 목숨을 희생하는 것, 네 번째 13절에서 갠지스 강의 모래 수와 같은 겁(劫) 동안 자아 존재를 희생하는 것, 다섯 번째 셀 수 없는 붓다를 모시는 공덕과 비교하였다. 이제 우주의 수메루산 왕들과 같은 양의 칠보를 보시하는 것과 법문을 보시하는 것을 비교한다. 경전이 진행될수록 물질적 보시의 양이 줄어든다는 견해도 있지만, 중간에 물질적 보시에서 육체적 희생도 출현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규칙성을 발견할 필요는 없다. 단지 붓다가 계속 반복해서 보여주는 비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법문을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이해한 법문을 남들에게 알려주는 공덕이 얼마나 큰지 은연중에 체득된다. 그리고 그렇게 체득된 후에는 그것이 생활 속에 자리 잡게 되고, 매사를 대할 때에도 경전의 가르침이 생각나고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금강경의 내용이나 줄거리 요지를, 무슨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알고 있는 것과 금강경을 배우고, 이해하고, 남들에게 자세히 가르쳐주기 위한 노력은 천양지차이라고 보인다. 이상하게도 금강경을 읽고 공부하다 보면 점점 붓다의 설법이 몸속으로 들어와서 자리 잡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것이 금강경의 신묘한 효력이라는 느낌이 든다.

* 소명은 제목을 ‘복덕과 지혜는 서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복지무비분福智無比分)’고 하였다.

[설명]

그리고 또다시 수보리여, 여자나 남자가 삼천대천세계의 수메루산 왕만큼 많이 쌓인 칠보를 모아서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은 분들에게 보시를 한다면,
그리고 좋은 가문의 아들과 딸이 이 반야바라밀다의 법문으로부터 단지 네 구절로 된 게송을 뽑아서 남들에게 가르쳐준다면, 수보리여, 이 공덕에 비하여 저 앞의 공덕은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비교조차도 되지 않을 것이다.

수메루산 왕 - 원문에는 수메라밬 파르바타라즈낰Sumerava? parvatar?j? na?이라 되어 있고, 번역에 약간의 혼란이 있다. 파르바타parvata는 산(mountain)이고, 라자r?j?는 왕(king)이므로, 이것을 수메루산들이 여러 개 있고, 그것들의 왕에 해당하는 산을 말하는 것인지, 산의 왕이라 할 만한 수메루산을 말하는 것인지이다. 한자 번역본은 대체로 ‘모든 수미산 왕’으로 번역하였고, 콘체는 ‘산들의 왕인 모든 수메루’, 뮐러는 ‘산들의 왕인 수메루들’, 레드파인은 ‘모든 수메루산들’이라고 번역한다.
수메루산이라는 것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즉 각 세계마다 산들 중에 제일 큰 수메루산이 하나씩 있으며, 우주는 10억의 세계(삼천대천세계)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10억 개의 수메루산이 있다. 그래서 여기 이 구절은 수메루산 왕들의 양만큼 많은 칠보로 보시를 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네 구절로 된 게송 - 보통 사구게(四句偈)라고 표현하지만, 너무 가벼운 느낌이 들어서 사용하는 것이 어색하다. 원어의 gatha는 시구(詩句, verse)를 게송으로 번역하였는데, 가사(歌詞)라는 한국말과 통하기도 한다. 그런데 보통 가사라면 노래 가사를 말하므로, 여기서는 게송이라는 말이 적당하겠다.

다시 엄청나게 많은 칠보로 보시하는 공덕과 네 구절로 된 게송을 남들에게 가르쳐주는 공덕을 비교하고 있다. 금강경 앞부분에서는 ‘네 구절로 된 게송을 배우고 이해하여 남들에게 자세하게 가르쳐주는 공덕’을 비교 대상으로 하였는데, 여기서는 ‘남들에게 가르쳐주는 공덕’만을 비교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미 금강경의 설법이 완연히 진행되어 ‘배우고 이해하고’의 단계를 지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자 번역본은 여전히 ‘받아 지니고 독송한다’는 구절을 넣었지만 영문 번역본들은 원문과 같이 번역하였다.

칠보와 법문의 보시 - 수메루산 왕들만큼의 칠보로 보시하는 자는 원문에는 ‘여자나 남자’이고, 법문을 보시하는 자는 ‘좋은 가문의 아들과 딸’이다. 그런데 현장은 처음과 다음의 보시하는 자를 모두 ‘좋은 가문의 아들과 딸’로 번역하였다. 나머지 한자 번역본들은 두 번 모두 단순히 ‘사람’이라고 번역하였다. 영문 번역은 모두 이 책과 같이 번역하였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원문에서 그렇게 차이를 두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칠보로 보시하는 사람은 일반적인 남녀를 가리키고, 법문을 보시하는 자는 이제 보살행을 가려는 ‘좋은 가문의 아들과 딸’이기 때문이다.
법문을 보시하는 경우에 모든 한자 번역본은 금강경 내지 사구의 게송을 언급하고 있지만, 원문에는 경전이 아니라 ‘법문 dharma-pary?d’을 나타내고 있다. 영문 번역가들도 ‘법문’이라고 번역하였다. 그 외 소소한 차이가 있지만 생략한다.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비교조차도 되지 않을 것이다 - ‘백분의 일’ 구절 다음에 한자 번역본들은 16절에서 붓다를 모셨던 공덕과 법문을 보시하는 공덕을 비교하면서 예로 들었던 백분의 일 다음의 ‘천분의 일, 10만분의 일, 1억분의 일, 100억분의 일, 10조분의 일, 10만 구지나유타분의 일, 측정할 수도 없고, 계산할 수도 없고’ 등의 구절을 번역가의 편의에 따라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원문과 영어 번역본들은 이 책과 같이 간략하게 되어 있다.
비교조차도 되지 않을 것이다의 원문은 upani?adam으로, 16절에서는 이를 ‘비밀스런 의미’라고 번역하였지만, 여기서는 16절과 달리 ‘비교할 수도’라는 구절이 앞에 없으므로 ‘비교’라는 콘체의 번역을 사용하는 것이 문맥에 맞는다고 본다. 앞서 현장도 유비(喩比-견주어 깨우치다)로 번역하였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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