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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0212275
· 쪽수 : 262쪽
· 출판일 : 2014-11-20
책 소개
목차
책을 엮으며 ― 5
매장을 체험하는 최면술사 ― 9
의자에 앉은 구름 ― 12
내가 읽은 나의 시 ― 17
비참하고 아름다운 말의 시간 ― 22
어머니라는 순수한 물체 ― 39
시간/기억, 풍경 그리고 침묵 ― 43
1980년대에 관한 기억 ― 71
「알렉산더와 해바라기꽃」을 읽고 ― 79
텔레비 속의 텔레비에 취한 아아 김수영이여 ― 84
홍상수의 「하하하」와 이창동의 「시」 ― 87
질문들 ― 109
고양이의 보은 ― 113
무한을 바라보는 유한한 자의 마음 ― 131
사랑과 희망, 그 불가능성 ― 145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 158
재가 되지 않은 불 ― 162
사랑, 타오르는 물 ― 171
허공의 얼굴 ― 182
고아의 자유 ― 193
혜가가 달마 앞에서 자신의 팔을 자른 것은 비유일 뿐인가 ― 199
‘위반하고 즐겨라’라고 말하는 시 ― 206
안녕(安寧)이라는 말의 기원 ― 227
<근대문학의 종언>과 새로운 문학의 지평 ― 236
출처 ― 261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의 내면에는 아무것도 놀라운 것이 없다. 고통에 저항하면서 아무런 호소도 없이 병을 참아 내는 여자아이의 기분으로, 나는 견고한 세계의 원형 천장을 올려다본다. 구름이나 별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구름이나 별의 영향력이라도 된다는 듯이 약간의 소음이 그쪽에서 들려온다. 나는 그 소음의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린다. 널찍한 역의 중앙 광장을 가로질러 어떤 소년 하나가 구두 뒤축을 울려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면서 춤을 추듯이 뛰어 가고 있다.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대지에 두통과도 같은 압력을 가하면서, 결코 침묵으로만 버틸 수 없도록 어떤 충동과 동요를 소년은 몰아온다.
나는 소년이 사라진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는 여행객들 사이에 작용하는 무거운 중력을 느낀다. 중력들은 견고해 보이기에, 곧 허물어질 어떤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포에지는 그 견고한 믿음의 찰나와 곧 무너질 실존의 경계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존재하고 있다.
―「의자에 앉은 구름」 중에서
누구라도 그렇지만 특히 시 쓰는 사람은 자신의 양심을 믿어서는 안 된다. 양심은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인다. 그래서 시 쓰는 사람에게 양심은 고백의 대상이 아니라 투쟁의 대상이어야만 한다. 시 쓰는 사람은 매번 양심에 진다. 시는 번번이 질 수밖에 없는 패를 들고 양심에게 덤벼든다. 그런데 정작 승리의 이득을 챙겨 가는 쪽은 양심이 아니라 시와 양심이 도박판을 벌일 수 있게 비밀 장소를 제공한 삶이다. 삶은 시와 양심의 배후에서 그들이 어떤 술수를 부리는지 조용히 양쪽 모두의 패를 지켜본다.
―「고아의 자유」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