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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7753146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13-05-14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에필로그
작가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미쳤어.”
“날 미치게 한 게 누군데?”
이수에게 다가온 은재는 이수의 뒤통수를 손으로 감싸 끌어당기고 나머지 한 손으로 허리를 단단하게 감아 안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는 이수를 발견한 그 순간부터 빌어먹을 욕정이 또 동했다.
“한 번 하자고 하면 성질낼래?”
느물거리는 은재의 말에 이수의 손바닥이 벗은 그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밥 먹기 싫지?”
“밥 말고 다른 거 먹으면 안 되나?”
“점점…….”
“불쌍한 인생 하나 구제한다 생각하고 식탁에서 한판 어때?”
이수의 손이 또다시 그의 벗은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얼른 씻고 와. 안 그러면 밥 없어.”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뒤통수에 있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가 싶더니 불쑥 몸이 공중으로 들렸다. 중심을 잃고 엉겁결에 팔을 들어 은재의 목을 끌어안자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잡았다.”
빙그르르 돌던 은재는 그대로 욕실로 직행하더니 세면대 위에 이수를 앉혀 두고는 선반 위에서 면도기를 꺼내 들었다.
“뭐 하는 거야?”
“한 번 할 거 아니면 보고라도 있어. 나 아직 술도 안 깼는데 씻다가 죽을 수도 있어.”
“아직 술이 덜 깬 모양이네.”
“잔말 말고 보고 있어. 나 무지 잘생겼잖아.”
도가 지나친 은재의 뻔뻔함에 피식 웃으며 이수는 그가 원하는 걸 들어주기로 했다. 그의 말마따나 아침부터 눈요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쉐이빙 크림을 턱에 바르고 거품을 낸 은재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면도를 하였다. 그러다 쓱쓱 움직이는 면도날이 날렵한 턱 선을 밀 무렵 이수가 손을 뻗어 면도기를 집어 들었다.
“줘 봐. 내가 해 줄게.”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한 번쯤 해 보고 싶기도 했고.”
순순히 이수의 손에 면도기를 넘겨준 은재는 그녀의 손에 목숨을 맡긴 채 두 팔을 뻗어 이수를 가뒀다. 진지한 표정으로 면도를 하는 이수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내 얼굴에만 집중해. 까딱하면 피를 볼 수도 있어.”
겁을 주듯 낮게 말하며 은재는 이수의 원피스 아래로 손을 넣어 허벅지를 어루만졌다.
“가만히 좀 있어 봐. 자꾸 그러면 내가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잖아.”
이수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은재는 더듬거리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이수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릴 수 있는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닌데 멈추란다고 멈출 그가 아니다.
“신경 끄고 내 얼굴에나 집중하라니까. 이 잘생긴 얼굴에 흠집 내기 전에.”
이수는 한숨을 내쉬며 면도기를 잡은 손에 정신을 집중하려 애썼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아찔함을 떨쳐 내기 위해 일부러 말을 돌렸다.
“어제 아이스크림 사 왔어?”
“응.”
“어쨌어?”
“그야 냉장…… 아, 맞다! 다 녹아 버렸어?”
“당연하지. 아침에 보니까 거실 바닥에서 죽이 되어 있더라.”
“젠장. 냉동실에 넣어야 하는 걸 깜빡했어.”
“대체 아이스크림은 왜 술만 마시면 사 오는 건데?”
쉐이빙 크림을 칼날로 걷어 내며 이수가 물었다. 그 사이 은재의 손은 더욱 깊숙이 들어와 팬티라인에 닿아 있었다.
“몰라, 기억도 안 나.”
“자알 한다.”
“재작년이었나. 술을 마시고 집에 가려는데 갑자기 네가 너무 보고 싶더라. 불쑥 오밤중에 찾아가려면 무슨 이유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핑계 삼아 아이스크림을 샀던 건데 이수 네가 너무 좋아했었어. 그 밤중에 왜 찾아왔는지 보다 아이스크림을 더 궁금해했어. 봉지를 까고 아이스크림을 쪽쪽 빠는 네 입술이 얼마나 예쁜지……. 아마 그때부터였나, 술만 마시면 아이스크림 사 들고 송이수한테 가고 싶어지더라.”
“…….”
“그 다음부턴 길을 가다가도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만 보면 네 생각이 났어.”
두근두근. 가슴이 거칠게 뛰었다. 가끔씩 아이스크림을 한가득 안고 들이닥치던 은재가 그런 마음이었었는지 몰랐다. 미리 알았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대답은 뻔했다. 분명 외면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얽히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었으니까.
“앞으론 사 오지 마.”
“왜?”
“나 아이스크림 별로 안 좋아해.”
“……진짜?”
“응. 나는 네가 사 오는 거니까 좋아했던 것뿐이었어.”
이수의 말에 은재는 한참이나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진짜라고 믿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바보가 되어 버린 기분이다.
“나한테 ‘척’을 했던 거니?”
이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송이수. 널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어.”
“…….”
쓱쓱 움직이던 손이 멈추고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이수를 완벽하게 들여다보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은재가 손을 들어 이수의 뺨을 쓰다듬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알고 싶어. 확인하고 싶어.”
“…….”
“부드러운 머리카락, 달콤한 입술, 날 바라보는 네 시선. 어쩌면 전부 가짜는 아닐까.”
“…….”
“네가 진짜라고 확신이 드는 건 딱 한순간밖에 없는 것 같아. 온전히 날 받아들이는 그 순간.”
턱을 쥐고 들어 올리자 어둡게 가라앉은 시선이 부딪혀 왔다. 은재의 눈동자에 검붉은 욕망이 일렁였다. 차츰 달아오르는 눈빛에 꿀꺽 마른침이 삼켜졌다.
“황은재.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그 생각.”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섹스.”
“천, 천만에. 그런 생각 안 했어.”
이수의 부정에 은재는 나른하게 웃으며 눈을 빛냈다.
“좀 전엔 아니었을지 몰라도 벌써 하기 시작했잖아. 안 그래?”
“계속 허튼 소리 할 거면 비켜.”
이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은재는 오히려 조금씩 거리를 좁혀 왔다. 묘한 흥분감이 등허리를 타고 일렁였다. 이수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축였다.
“움직이지 마. 손에 칼 들었어.”
“네 손에서라면 기꺼이 죽어 줄 수 있어. 아주 기꺼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은재의 입술이 이수의 입술 위로 살포시 닿았을 때 그녀는 피하지 못하고 입술을 열어 주었다. 어르듯 입술을 간질이는 감촉에 눈이 감기고 양 손아귀가 꽉 쥐어졌다.
쟁그랑. 면도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재가 이수의 뒷덜미를 움켜쥐었고 키스는 깊어졌다. 은재의 턱에 묻어 있던 크림이 이수의 볼과 턱으로 옮겨지고 열린 입술 사이로 들어간 혀는 욕심껏 이수의 혀를 유린했다. 가볍게 물고 빨다가 어느 순간 뽑아 버릴 기세로 빨아 당기며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