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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의 철학

문법의 철학

오토 예스퍼슨 (지은이), 전상범 (옮긴이)
한국문화사
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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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의 철학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문법의 철학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언어학
· ISBN : 9788968171604
· 쪽수 : 632쪽
· 출판일 : 2014-09-20

목차

책머리에 / v
서문 / viii
참고문헌 / xii
약자 / xvi
음성기호 / xvii

제1장 살아있는 문법 3
제2장 체계적 문법-I 23
제3장 체계적 문법-II 44
제4장 품사 64
제5장 실사와 형용사 85
제6장 그 밖의 품사 100
제7장 세 개의 등급 126
제8장 연접과 넥서스 151
제9장 여러 종류의 넥서스 168
제10장 넥서스 실사 (넥서스에 관해 맺는 말) 201
제11장 주어와 술어 221
제12장 목적어. 능동과 수동 243
제13장 격 276
제14장 수-I 300
제15장 수-II 327
제16장 인칭 346
제17장 자연성sex과 문법성gender 371
제18장 비교 403
제19장 시간과 시제-I 422
제20장 시간과 시제-II 449
제21장 직접화법과 간접화법 490
제22장 발화의 분류 509
제23장 서법 531
제24장 부정 546
제25장 결론 578

보충 593

색인 (한영) / 602
색인 (영한) / 609

저자소개

오토 예스퍼슨 (지은이)    정보 더보기
덴마크 태생의 언어학자·영어학자. 어릴 때부터 언어에 흥미를 느껴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여러 언어에 통달했다. 대학에서의 처음 몇 해 동안은 가업을 잇기 위해 법률 공부를 했지만 뒤에 언어학으로 전향했다. 31세에 코펜하겐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모교의 영어영문학과의 초대 정교수로 임명되어 65세에 퇴직할 때까지 30여 년간 강의와 연구에 종사했다. 1930년에는 그의 70회 생일을 축하하여 14개국의 학자들이 글을 모아 기념논문집을 헌정했다. 1943년,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언어학과 영어학 전반에 걸쳐 주옥같은 저서와 논문들을 남겼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어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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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범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수료 미국 Columbia대학교 영어교육과에서 수학 (MA) 미국 Indiana대학교 언어학과에서 수학 (Ph.D.)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과 교수 역임 (1963-1997) 한국언어학회 회장 역임 한국영어영문학회 회장 역임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2020년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주요 저서] Phonological Aspects of Late Middle Korean, 1974 生成音韻論, 1977 英語音聲學, 1985 生成形態論(역), 1987 영어의 음성체계(역), 1993 영어음성학개론, 1995 형태론, 1995 최적성이론(공저), 1997 영어학개론, 1998 음운론, 2004 고대영어, 2006 형태론개론, 2006 중세영어, 2007 라틴어입문, 2008 단편소설의 분석과 기교(공역), 2010 영미명시선(공역), 2012 문법의 철학(역), 2014 주석과 함께 읽는 햄릿,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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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제1장살아있는 문법
화자와 청자

언어의 본질은 인간 활동이다―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려는 활동이며, 상대방 편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이해하려는 활동이다. 이들 두 개인, 즉 언어의 생산자와 수용자, 혹은 더 쉬운 말로 화자와 청자, 그리고 이들 상호 간의 관계는 우리가 언어의 본질과, 언어 가운데서 문법이 다루고 있는 언어의 측면을 이해하려고 할 때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에는 흔히 이 같은 사실을 간과하고, 단어나 형태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이나 자연물인 것처럼 취급된 일이 많았다―이런 생각의 대부분은 쓰거나 인쇄된 단어만을 소중하게 여기는 편견 속에서 자라났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듯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두 사람의 개인, 언어의 생산자와 수용자를 여기서 각기 화자와 청자라고 부르는 것은 말하고 들리는 단어가 언어의 1차적인 형태이며, 쓰고 (인쇄하고) 읽는 데 사용되는 2차적인 형태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한 때문이다.
이것은 인류가 아직 글을 쓰는 기술을 발명하지 못했거나, 쓰는 기술을 어쩌다 사용한 무수히 오랜 세월에 대해서는 분명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신문의 지배를 받는 오늘날 현대사회에서조차 우리들 대다수는 쓰는 것보다 훨씬 더 말을 많이 한다.
여하튼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말하고 듣는 활동을 끊임없이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잠시라도 글은 말의 대용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는다면, 우리는 언어가 무엇이며, 또 그것이 어떻게 발달하는가에 대해 절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문자란 누군가가 그것을 마음속에서 그것에 대응하는 말로 바꿔서 생명을 불어넣기까지는 한 낱 미라일 뿐이다.
문법학자는 통상적인 철자에 의해 현혹되기 쉬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극히 초보적인 예를 몇 개 들겠다. 실사substantive의 복수어미와 동사의 3인칭 단수 현재시제의 어미는 ends, locks, rises등에서 볼 수 있듯이 모두 -s이지만, 이들을 [endz, l?ks, raiziz]라는 발음기호로 바꿔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실제에 있어 세 개의 상이한 어미이다.
마찬가지로 글로 쓴 -ed는 [seild, l?kt, endid]라고 발음되는 sailed, locked, ended의 세 단어에서 세 개의 상이한 어미를 나타낸다. 문자로 된 언어에서는 paid와 said가 동일하게 형성되어 stayed의 형성과는 다르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paid와 stayed는 [peid, steid]처럼 규칙적으로 형성된 것임에 비해, said는 [sed]처럼 모음이 축약되어 불규칙하게 형성된 것이다.
문자 상으로는 there가 하나의 글자로 인정되는 것에 비해, 말할 때에는 There[ð?] were many people there[ð:?] 원문에서는 제1강세를 위해서는 해당 음절 앞에 [ ? ]표시를, 그리고 제2강세를 위해서는 [ ? ]표시를 하고, 또한 장모음을 위해서는 해당 음절 뒤에 [ ˙ ]표시를 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표기를 사용하였다. (역자 주)
에서 볼 수 있듯이 음과 뜻(그리고 문법내용)에 있어 둘을 구별하고 있다. 통상적인 철자로는 설사 나타내려고 해도 충분히 나타낼 수 없는 음량, 강세, 억양은 구어체 언어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리하여 우리는 문법은 1차적으로 소리를 다루어야 하고, 문자는 2차적으로만 다루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여러 가지 면에서 깨닫게 된다.


관용표현formula과 자유표현free expression

이와 같은 예비적인 언급에 이어, 언어활동의 심리적인 면에 우리의 관심을 돌린다면, 지체 없이 관용표현 혹은 관용적 단위와 자유 표현을 구별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언어에는―어떤 언어이건 간에―관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부분이 있다. 다시 말해 아무도 그 가운데 어떤 부분도 바꿀 수 없는 표현이다.

How do you do? (안녕하십니까?)

와 같은 문장은

I gave the boy a lump of sugar. (나는 그 소년에게 설탕 한 덩어리를 주었다)

와는 전혀 다르다. 전자의 경우에는 모든 것이 정해져 있어, 심지어는 강세를 바꿔 How do you do?라고 하거나, 혹은 단어들 사이에 휴지pause를 두어도 안 되며, 요즘은 옛날처럼 How does your father do?라든가 How did you do?라는 표현도 잘 쓰지 않는다.
가령 우리가 출석자 가운데 어느 한 사람에게 늘 하듯이, How do you do?라고 말한 다음에 강세를 바꿔서 And how do you do, little Mary?(그리고 메리 양, 잘 있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이 문장은 사실상 변하지 않은, 변할 수 없는 하나의 관용구인 것이다. 이것은

Good morning! (안녕하세요?)
Thank you. (감사합니다)
Beg your pardon. (뭐라고 말씀하셨지요??미안합니다)

이나 그 밖의 유사표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들 관용적 표현을 분석하고, 그것들이 몇 개의 단어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역시 하나의 단위로 느껴지고 취급되고 있어, 그것들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를 따로 떼어 놓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뜻을 갖는다. 예를 들어

Beg your pardon?

은 종종 “지금 하신 말씀을 반복해 주세요,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의 뜻이 되며, How do you do?는 이미 해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사실 등이다.
I gave the boy a lump of sugar는 이들과는 전혀 별종의 것이라는 사실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중요한 단어 어느 것에도 강세를 둘 수 있으며, 또는 예를 들어 boy 뒤에 휴지를 둘 수도, I 대신 he나 she를 쓸 수도, gave 대신 lent를, the boy 대신 Tom을 쓰는 것 등이 가능하다. never라는 말을 삽입하거나, 그 밖의 다른 변경도 가능하다.
관용표현을 다룰 때에는 기억, 혹은 한번 들었던 것을 반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자유표현에서는 다른 종류의 정신활동이 요구된다. 자유표현은 그때마다 화자가 새롭게 창조하며, 주어진 상황에 알맞은 단어를 삽입해야 한다. 이처럼 그가 만들어내는 문장은 그가 전에 들었거나 말했던 문장과 한두 군데 다를 수도 있고,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의 연구에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문장을 발음할 때 화자가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는 점이다. 어떤 단어를 삽입하는 경우에도 화자는 동일한 패턴에 따라 문장을 만들게 되며, 심지어는 특별한 문법적 훈련이 없더라도 다음 두 문장이 유사하다는 것, 다시 말해 동일한 패턴에 맞춰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John gave Mary the apple. (존은 메리에게 그 사과를 주었다)
My uncle lent the joiner five shillings. (삼촌은 그 목수에게 5실링을 빌려주었다)

두 문장 모두 동일한 패턴을 따르고 있다.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는 서로 다르지만 패턴은 고정돼 있다.
그런데 이런 패턴은 어떻게 해서 화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일까. 어린이는 주어가 문장 첫머리에 놓인다든가, 간접목적어는 늘 직접목적어 앞에 온다는 따위의 문법규칙을 배우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전혀 문법교육 없이도 어린이는 자기가 듣고 이해한 무수한 문장에서 그 구조에 대해 어떤 개념을 추출하게 된다. 그 개념은 어린이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문장을 만드는 데 길잡이가 될 만큼 충분히 분명하지만, 그 개념이 어떤 것인가를 주어, 동사 따위의 전문적 술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말하기 힘들거나 불가능하다.
어린이가 일정한 유형에 맞춰 정확하게 만들어진 문장을 말할 때, 어린이 자신도, 듣는 사람도 그것이 과연 어린이가 스스로 만들어낸 새로운 문장인지, 아니면 단순히 전에 들었던 꼭 같은 형태의 문장인지 알 수가 없다. 오로지 중요한 사실은, 그 어린이의 말을 다른 사람이 알아들었다는 점이며, 그 문장은 어린이가 어쩌다 살게 된 사회의 언어습관에 부합하는 한 그 어린이가 하는 말은 이해될 것이라는 점이다. 어린이가 만약 프랑스 애였다면

Pierre donne une pomme a Jean. (피엘이 쟌에게 사과를 하나 준다)
Louise a donne sa poupee a sa sœur. (루이즈가 누이동생에게 인형을 주었다)

등등의 문장들을 수없이 들었을 것이며, 또 기회가 되면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준비도 돼있을 것이다.

Il va donner un sou a ce pauvre enfant.
(그는 이 불쌍한 어린이에게 1수를 주려고 한다)

그리고 만약 그가 독일 소년이라면, 프랑스어의 a 대신 dem이나 der를 사용하는 다른 유형에 맞춰 상응하는 문장을 만들었을 것이다(Jespersen, 1922 ??언어??Language의 제7장을 참조하라.).
그렇다면 가령 자유표현을 어떤 하나의, 혹은 그 이상의 특징을 공유하는 많은 문장들을 들은 결과, 화자의 잠재의식 속에 생겨난 어떤 양식에 따라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는 표현이라고 정의한다면, 당연히 자유표현과 관용표현의 구별은 상당히 면밀한 분석 없이 늘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과가 된다. 청자에게 이 둘은 처음엔 동일한 관계에 놓여있으며, 따라서 관용표현은 청자의 마음속에 유형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다할 가능이 크며, 또 실제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관용표현의 많은 것들은 매우 자주 나타남으로, 더욱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 몇몇 예를 더 들어보자.

Long live the King! (국왕 만세!)

이것은 관용표현인가, 아니면 자유표현인가? 이 패턴에 맞춰 무수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Late die the King! (국왕이이여 더디 붕어崩御하소서!)

이라든가

Soon come the train! (기차가 빨리 오기를!)

따위는 오늘날 소원을 빌기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 이것에 비해

Long live the Queen/the President/Mr. Johnson! (여왕/대통령/존슨 씨 만세!)

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바꿔 말해 부사를 문두에 놓고, 다음에 가상법 동사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어를 놓고, 그 전체로 소망을 나타내는 유형은 영어에서 그 살아있는 힘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러나 아직 사용되는 위의 문장은 이 같은 유형의 생존자이며, 따라서

Long live the King!

이라는 문장은 Long live라는 ?유형은 사라졌으나 아직 살아있는 관용표현+가변적 주어?로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옛날 영어보다 훨씬 그 쓰임이 제한된 문장의 유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윤리학에 관한 J. 로이스Royce의 논문 가운데

Loyal is that loyally does. (행동이 성실한 사람이 성실하다)

라는 원리 규정이 있다. 이것은 대번에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주는데, 까닭은 필자가 이 문장에

Handsome is that handsome does.
(행동이 훌륭한 사람이 훌륭하다, 즉, 겉보다 마음이라는 뜻)

라는 속담의 패턴을 가져다 썼기 때문인데, 이 문장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어찌되었건 선행사 없이 that를 사용하는 것이나, 그 어순으로 보아 알 수 있듯이, 지금은 아무리 보아도 관용표현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용표현과 자유표현의 구별은 문법의 모든 부분에 스며있다. 형태론이나 어형변화를 예로 들어보자. 여기서도 굴절형에 대해 동일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복수형 eyen(=eyes)은 16세기에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 이 단어는 폐어이지만, 한 때는 이 단어뿐만 아니라 이 단어가 만들어진 유형도 영어의 살아있는 요소였다.
단수형에 -en을 첨가해서 복수형을 만드는 현존하는 유일한 예는 oxen(암소)이며, 그 유형은 사라졌으나 단어는 관용표현으로 남아있다. 한편 shoen(구두), fone(적), eyen(눈), kine(암소)은 shoes, foes, eyes, cows로 대체되었다. 다시 말해 이 단어들의 복수형은 kings(국왕), lines(선), stones(돌) 등에서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유형에 맞춰 다시 만들어졌다. 오늘날 이 유형은 아주 보편적이어서, bicycles(자전거), photos(사진), kodaks(코닥 카메라), aeroplanes(비행기), hooligans(깡패), ions(이온), stunts(곡예) 등의 모든 새로운 단어들은 이 유형을 따라야 한다.
eyen 대신 eyes라고 처음 말했을 때, 그것은 이미 복수형에 -s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단어들에 대해 유추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 어린이가 eyes라는 말을 처음으로 했을 때, 그것이 그 어린이가 이미 들었던 말을 단순히 재생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eye라는 단수형 단어를 배우고, 그가 전에 들었던 수많은 유사한 단어들에서 추정한 유형에 따라 -s(발음상으로는 [z])를 첨가한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어느 쪽이든 결과는 동일할 것이다.
어느 한 개인이 기존요소들을 자유롭게 조합한 결과가 대부분의 경우 전통적인 형식과 동일하지 않다면, 어떤 언어도 그 생명이 저지되고 말 것이다. 또한 화자가 세세한 항목들 하나하나를 따로 기억해야 할 책임을 떠안게 된다면, 그 언어는 심히 다루기 어려운 것이 될 것이다.
차차 알게 되겠지만, 형태론에서는 앞서 ?유형?이라고 한 것은 일반적으로 규칙 형이라고 부르는 것의 원리와 같은 것이며, 한편 불규칙형은 ?관용표현?이다.
단어형성이론에서는 생산적인 접미사와 비생산적인 접미사를 구별하는 것이 관례이다. 생산적 접미사의 한 예가 -ness인데, 이것을 사용해서 weariness(피로), closeness (친밀함), perverseness(외고집) 등의 단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반해 wedlock(혼인)의 -lock는 비생산적이며, width(가로), breadth(폭), health(건강)의 -th도 비생산적이다. 왜냐하면 러스킨Ruskin이 wealth(부)에서 유추해서 illth(병)라는 단어를 만들려고 했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으며, 이 어미를 첨가한 다른 단어도 과거 수백 년간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우리가 앞서 한 말, 즉 [형용사+-ness]라는 유형은 아직 살아있지만, wedlock나 -th로 끝나는 단어들은 지금은 소멸한 유형의 관용표현이라는 주장의 또 다른 예이다. 그러나 width라는 단어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 유형은 살아있었다. 먼 옛날 -iþu라는 모양을 가졌던 이 어미는 어떤 형용사에도 첨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어미는 þ(=th)라는 단음으로 퇴화하고, 한편 단어의 첫 번째 음절의 모음이 변화한 결과 이 어미는 마침내 생산성을 잃고 말았다. 왜냐하면 역사문법의 교양이 없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짝들이 동일한 하나의 유형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long (긴) : length (길이)
broad (폭이 넓은) : breadth (폭)
wide (넓은) : width (넓이)
deep (깊은) : depth (깊이)
whole (건강한) : health (건강)
dear (비싼) : dearth (귀함)

따라서 이들 단어들은 여러 세대를 거쳐 오는 동안 전통적으로 하나의 단위로, 다시 말해 관용표현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들이며, 새로운 ?추상명사?(여기서는 잠정적으로 이 같은 단어들에게 사용되는 통상적인 용어를 사용하겠다)의 필요를 느끼게 될 때 사용된 것은 이미 어미 -th가 아닌 -ness인데, 까닭은 결합과정에서 형용사가 변형되지 않아 결합에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합성어의 경우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볼 수 있다. h?s(=house)가 들어가는 h?sb?nde (가장), h?sþing(집회), h?sw?f(주부)라는 세 개의 합성어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들은 무수한 엣 합성어들에서 발견되는 일반적 유형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단어들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통상적인 규칙을 따랐으므로, 처음 이들 단어는 자유표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 세대를 걸쳐 분할할 수 없는 하나의 개체로 전해져 왔으며, 그 결과 통상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장모음 [?]는 짧아졌으며, [s]는 유성음 앞에서 [z]로 유성음화했고, [þ](=[θ])는 [s], [w], [f]가 사라진 뒤에 [t]가 되었으며, 제2요소의 모음들은 약화되어 그 결과 오늘날의 husband(남편), husting(s)(하급법원), hussy(말괄량이)라는 모양이 되었는데, 이들을 음성적으로 나타내면 [h?zb?nd, h?stiŋz, h?zi]가 된다.
이들 단어와 h?s와의 처음 단단했던 유대도 잠차 느슨해졌으며, 장모음 u가 house에서처럼 이중모음이 되면서 그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그리하여 모양 못지않게 뜻도 달라져, 그 결과 어원연구자 이외의 누구도 husband나 hustings, hussy를 house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게 되었다. 오늘날의 살아있는 문법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 세 단어는 합성서가 아니며, 우리가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술어를 빌려 말하자면 관용표현이 되어, sofa(소파)나 cousin(사촌)과 같은 어원이 불확실하거나 불분명한 2음절 단어와 진배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huswif의 경우는 house와 wife로부터의 이탈의 정도가 다르다. ‘말괄량이’라는 뜻의 hussy [h?zi]에서는 house와 wife와의 관계를 전혀 찾아볼 수 없으나, ‘바늘 통’이라는 폐어에 대해 옛날 사전에는 huswife [h?zwaif], hussif [h?zif], hussive 따위의 상충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여러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집안 살림을 하는 여인’이라는 뜻으로는 두 요소가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housewife가 있는데, 이것은 비교적 최근에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서, 예를 들어 1765년의 엘핀스턴Elphinston1721-1809. 스코틀랜드의 교육자, 음성학자로서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책은 The Principles of the English Language Digested for the Use of Schools (1765). (역자 주)
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오래된 합성어를 관용표현으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은, 실제적인 언어본능에 의해 다소간에 저항을 받게 되어, 경우에 따라서는 관용표현을 자유표현으로 취급하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소리나 뜻에서 다소간 화석화한 관용표현적인 합성어의 존재를 무시하고, 두 요소를 자유롭게 결합해 나갔다. 이 같은 현상은 결코 드문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관용적 표현으로서의 grindstone(숫돌)은 두 요소의 모음이 관례대로 짧아져서 [grinst?n]이 되었는데, 두 요소가 자유롭게 결합한 결과 [graindstoun]이라는 현재의 발음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waistcoat(조끼)는 [wesk?t]라는 관용적 발음대신 [weistcout]라는 새로운 발음이 쓰이기 시작하고 있다. fearful(무서운)에 대해 18세기 정음학자들은 ‘ferful’ 비슷한 발음을 부여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항상 [fi?f(u)l]이라고 발음된다. 그 밖의 예들에 대해서는 Jespersen, MEG I, 4. 34 이후를 참조하기 바란다.
비슷한 현상을 합성어가 아닌 단어들에서도 볼 수 있다. 중세영어에서 우리는 많은 비교급에서 단모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deep, great(greet)에 대한 비교급은 deppre, grettre이다. 이들 가운데 몇몇 비교급은 관용적 표현이 되어 새로운 세대에 전해지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서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latter와 utter 뿐이다. 이들이 단모음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late와 out라는 원급에서 떨어져 나가 뜻이 약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비교급들은 예를 들어 deeper, greater처럼 자유표현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later(뒤의)와 outer(밖의)가 있는데, 이들은 latter(후자의)나 utter(전적인)보다 late나 out와 보다 밀접한 관계에 있다.
강세에서도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은 물론 단어 각각의 발음과 함께 악센트도 배운다. 그렇게 배우는 단어의 발음 전체는 하나의 관용표현이다. 그러나 단어에 따라서는 두 가지 악센트 사이에서 충돌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화자가 어떤 단어를 필요로 하는 순간 자유표현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able이나 -ible로 끝나는 형용사들은 대개 끝에서 네 번째 음절에 강세가 오는데, 이것은 어떤 모음이 본래 강세를 가지고 있던 음절과 하나의 (약)음절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되면, 스스로가 강세를 갖게 된다는 리듬법칙의 결과이다.
그리하여 despicable(야비한)(본래는 프랑스어 식으로 despicable이었다), comparable (필적하는), lamentable(가엾은), preferable(바람직한) 등의 강세 형이 생겼다. 이들 가운데는 considerable이나 violable처럼 리듬법칙에 의해 상응하는 동사와 동일한 음절에 강세를 받는 것도 있다.
그러나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화자가 동사를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 -able을 첨가한 자유표현의 경우에는 상이한 강세 형이 생기게 된다. accept에 대한 형용사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와 그 밖의 몇몇 시인의 경우 acceptable(받아들일 수 있는)이었고, 이 같은 관용표현은 아직도 ??기도서??Prayer book를 낭송하는 경우에 남아있지만, 그 밖의 경우 지금은 acceptable로 다시 만들어졌다. refutable은 [refjut?bl]이었으나 지금은 [rifjyuːt?bl]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보편적이다. respectable(존경할 만한)은 respectable에 자리를 양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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