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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인문계열 > 철학
· ISBN : 9788972188704
· 쪽수 : 916쪽
· 출판일 : 2026-03-30
책 소개
현대 기술문명은 우리에게 전례 없는 능력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실존적 방향감각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는 더 많이 알지만 덜 이해하며, 더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더 깊이 고립되어 있고, 더 효율적으로 살지만 덜 의미 있게 산다. 이러한 현대성의 아포리아(ἀπορία) 앞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던진 질문들은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위기를 진단하고 치유할 수 있는 철학적 파르마콘(φάρμακον)으로 기능할 것이다. 그들의 질문은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도달하며, 우리로 하여금 기술적 진보의 현혹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도록 촉구한다.
이 책의 제목인 ‘호모 인테로간스’(Homo Interrogans)는 철학적 인간학의 오랜 전통이 형성해 온 개념적 지형 위에 고유한 의미론적 위상을 정립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서양 사상사에서 인간 본질에 대한 규정은 다양한 개념적 표지들을 통해 시도되어 왔다.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가 인간 종(種)에 부여한 분류학적 명칭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라틴어로 ‘이해하고 분별할 줄 아는 인간’, 곧 ‘지혜로운 인간’을 뜻하는바—인간을 인식과 자기반성의 능력을 지닌 존재로 특징짓는다. 그러나 이 명명을 엄밀한 의미에서 이성적 인식 능력을 인간의 종차(differentia specifica)로 규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에 반해,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인간 지성을 도구 제작과 사용에 특화된 기능으로 규정함으로써 인간의 기술적 성격을 강조했으며, 이후 막스 셸러(Max Scheler)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는 고전적 개념을 각기 비판적·분석적으로 정교화하였다. 이 개념은 인간을 도구의 창안과 사용을 통해 세계를 형성·변형하는 존재로 이해하게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이해의 한계 또한 드러낸다. 나아가,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 곧 ‘유희하는 인간’은 놀이를 문화 창조의 원천으로 파악함으로써 인간학적 지평을 확장했다.
그러나 발터 부르케르트(Walter Burkert)가 그의 기념비적 저작 『호모 네칸스』(Homo Necans, 1972)에서 제시한 규정은 이러한 전통적 인간학의 낙관적 전제들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함축한다. 부르케르트에 따르면, 인간 존재는,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네칸스인 동시에 호모 세펠리엔스이다”(Der homo sapiens ist ebenso homo necans wie homo sepeliens)라는 이중적 규정으로 파악될 수 있다. 여기서 ‘호모 네칸스’(homo necans), 곧 ‘죽이는(살해하는) 인간’이라는 개념은 희생제의(犧牲祭儀)를 통해 공동체를 구성하고 문화를 창출하는 인간의 원초적 폭력성을 지시하며, ‘호모 세펠리엔스’(homo sepeliens), 곧 ‘매장하는 인간’이라는 규정은 죽음을 의식하고 그에 의례적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리킨다. 부르케르트 자신도 후기 논문에서 이러한 인간학적 규정의 방법론적 토대를 재검토하면서, 종교 연구가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의 “경이”(θαυμάζειν)에서 출발해야 하며, 플라톤이 『제7서간』 344b에서 제시한 “상호 비판을 수반하는 논변의 제시와 수용”(λόγον δοῦναί τε καὶ λαβεῖν ἐν εὐμενέσιν ἐλέγχοις)이 학문적 탐구의 본령(本領)임을 역설한 바 있다.
그에 반해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이중적 규정이 제3의 본질적 계기를 전제하고 있다고 본다. 인간이 죽이고 매장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먼저 ‘물음’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의식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희생제의를 통해 신성(神聖)과 교섭하려는 시도, 이 모든 것은 존재의 근거와 의미에 대한 근원적 물음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호모 인테로간스’(homo interrogans), 즉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라는 규정은 인간 존재의 다른 모든 규정들을 가능케 하는 선험적 조건으로 기능한다. 우리는 묻기 때문에 죽임의 의미를 알고, 묻기 때문에 매장의 의례를 수행하며, 묻기 때문에 앎을 추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물음은 인간 존재의 존재론적 근본 구조이며, 철학은 바로 이 물음의 체계적 전개에 다름 아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경이’로부터 철학이 시작된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이미 인간을 호모 인테로간스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물음의 계보학적 탐구이자, 물음을 던지는 존재로서의 인간 본질에 대한 해석학적 성찰이다.
목차
일러두기
저자 서문 - 물음의 불멸: 인공지능 시대, 고대 그리스 철학이 다시 묻다
제1부 철학적 삶의 형식과 관조의 이상
- 죽음과 삶, 지혜와 역사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유
1. 소크라테스가 부른 백조의 노래는 죽음 앞에서 어떠한 지혜를 드러내는가?
2. 관조적 생활 이상은 어디에서 기원하며, 그것은 어떤 철학적 의미를 지니는가?
3.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수학과 로고스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
4. 고대 그리스인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5. 플라톤은 역사를 어떻게 이해했으며, 그의 사상은 역사철학에 어떤 의의를 지니는가?
6. 플라톤에게 우연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그의 철학 체계에서 어떤 위상을 점하는가?
7. 고대 그리스 여성철학자들은 어떤 철학적 목소리를 냈는가?
제2부 헬레니즘 사상의 실천적 지혜와 내면성
- 나를 다스리는 삶의 기술과 관계의 거리
1. 고대인에게 자기 자신 안으로 물러남은 무엇을 말하며, 그것은 헬레니즘 정신사에서 어떤 철학적·종교적 지평을 여는가?
2. 노예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폭정의 시대에 어떻게 내적 자유를 쟁취했는가?
3.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관계적 딜레마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헬레니즘적 기원을 지니는가?
제3부 고대 그리스 사상의 현대적 적용과 재해석
- 이상 국가에서 인공지능 시대까지
1. 플라톤과 제퍼슨은 정치철학에서 어떻게 조우하는가?
2.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어떠한 철학적 전제 위에 성립하며, 그것은 오늘날에도 유의미한가?
3. 고대 그리스인과 현대인에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4. 부르케르트는 고대 희생 제의에서 종교의 생물학적 기원을 어떻게 설명하며, 그것은 희생 제의 현상의 해석학적 이해에 어떤 통찰을 제공하는가?
5. 인공지능 시대에 자동화된 낙원은 어떤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가?
<맺는 말>에 앞서
맺는 말: 인간이라는 이름의 여정에 부쳐
저자 후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연대표
고대 그리스어 알파벳 읽기표
고대 그리스어 알파벳 읽기 유의 사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