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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요리/살림 > 술/음료/차 > 술
· ISBN : 9788986320305
· 쪽수 : 320쪽
· 출판일 : 1997-12-05
책 소개
목차
1. 술의 역사
2. 술의 정원에 핀 꽃들
와인의 세계/ 세계인의 음료 맥주/ 생명의 물 위스키/ 브랜디의 세계/ 다양한 증류주/ 칵테일 이야기/ 한국의 술/ 중국의 8대 명주/ 세계의 토속주
3. 바람과 물을 벗삼아
술의 하늘에 뜬 별들/ 문학과 영화 속의 술/ 한국의 음주 문화 변쳔사
4. 야누스의 두 얼굴
백약의 으뜸 술/ 마약과 독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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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한방울의 위스키는 누군가에 의해 적어도 수년간 다듬어져야 한다. 발효조에서 효모가 알코올을 만들 때 여러 가지 미량 성분들이 부산물로 나오는데 이들이 향의 원천이 된다. 증류시 증류솥의 모양에 따라 이 성분들의 농도가 달라지는데 여기서 향의 특성이 변한다.
또한 위스키는 수년간 오크 통에서 저장되는 동안 호박색이 되며 목토에서 여러 성분이 우러난다. 이들은 서로 반응하여 점차 부드럽게 숙성이 된다. 위스키의 향미가 익어 가는 과정은 복잡하여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사람들이 아는 것은 숙성 도중 술이 날아간다는 사실이다. 술꾼들은 숙성 중에 날아가는 부분을 `천사의 몫`이라 하며 하늘에다 나누어주는 체 짐짓 생색을 낸다.
술은 먼 옛날부터 인간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음료로 여겨졌다. 그러나 음주 문화는 그 시대의 가치관에 따라 많은 변천을 해왔다. 우리나라의 음주 문화는 어떻게 변화 해 왔을까?
시선이며 주선인 이태백의 시에 흥겹게 술잔을 기울이던 벗에게 `내 취하여 쉬려니 그대 그만 돌아가게나`라고 권유하는 구절이 있다. 우리의 옛 선비들은 술에 흥취하되 탈선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신언서판을 바로 한다는 유교적 덕목에 어긋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승불교의 법화경에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좀 지나면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불교도들은 자신의 본래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면 술 마시는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생각인 것 같다. 전통적인 음주 문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간추린다면 `음주를 마음껏 즐기되 자신을 올바로 제어 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비하여 근래의 음주 문화에서는 마치 몸과 마음을 허물어트리는 것이 술을 마시는 목적인 양, 술 마신 후의 삿된 행동을 술의 탓으로 돌리는 일이 적지않은 것 같다. 나도 대학 생활과 사회의 초년 시절에 그릇된 음주 습관으로 많은 시간을 헛되게 보냈다. 바른 음주에 대하여 배우거나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권하는 것을 오기로 다 받아 마시는 것이 주도인 줄 일고 만용을 부리곤 했다.
술은 현대인들의 일상에 깊이 스며 있다. 토요일 저녁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부부끼리 한 잔 나누기도 하며, 사업 상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 같이 마시기도 한다. 한 잔의 의미는 때와 장소에 따라 매우 다르다. 술은 사람 사이의 서먹함을 누그러트려 가깝게 만들며, 지친 심신을 편히 해주며, 시인과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다.
그러나 술을 남용하여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해치게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선택이다. 술이 사회의 윤활제가 되든 독소가 되든 마시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항공 여행을 즐기고 있다. 비행기 사고로 인명이 살상된다 해서 어찌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으랴.
술과 함께 지내며 언제부터인가 술에 대하여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화두처럼 지니고 다녔다. 7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된 술과의 인연은 직업에까지 이어졌다. 술은 나에게 넓은 세상으로 시야를 넓히는 데 다리가 되어 주었다. 술 덕분에 이태백과 두보, 도연명 등의 주선들과 통음하며 교류하였다.
또한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하여 세계의 여러 나라를 다니며 배웠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술 속에서 사는 필자에게는 술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점점 늘어 났으며, 따라서 술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이 깊어만 갔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시는가, 어떻게 마셔야 하는가, 술의 향기와 맛은 과연 무엇인가?
십여년 동안 맥주와 위스키, 브랜디, 진 등을 제조하면서 이것 저것 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러던 중 스코틀랜드 유학 시절에 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알코올 문제에 대한 에방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술의 사회적 역할과 의학적인 상식을 많이 배우게 되었고, 개인과 가정, 사회에 술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하여 자세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술에 대한 정리와 함께 건전한 음주 문화 형성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한겨레 21에 `술 이야기`를 연재하게 되었고, 몇몇 사람들이 단행본 출간을 권유하였다. 특히 한송 출판사의 조용경 사장님은 필자의 직장이 있는 이천까지 방문하여 `건전한 음주 문화를 위하여 책을 내야 한다`고 수 차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필자 스스로는 책을 내기에 아직 연구가 부족하다고 느꼈으나 친구들이 `가치 있는 내용이므로 잘 정리하면 좋은 책이 될 것`이라며 용기를 주어 책을 내기로 결심하였다.
이 책은 술에 대한 바른 상식을 알리고 우리의 음주 문화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세계 각지의 술에 얽힌 비밀과 일화를 골고루 소개하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음주 문화도 새롭게 조명해 보았다.
운동 경기를 관람할 때 그 경기의 룰과 스타 선수들을 모르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술도 알고 마시면 색깔과 감촉, 향기와 맛이 새로워질 것이다. 또한 술자리의 은은한 취기와 부드러운 분위기로 사람들의 사이가 한층 가까워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즐겁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