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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역사
· ISBN : 9788987977713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25-05-23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머리말
01 영국 땅에 전해진 그리스도의 복음
-캔터베리에서, 브리타니아와 앵글로색슨 왕국
역사에 등장한 브리타니 | 로마 브리타니아에 전해진 그리스도교 | 브리타니아 시대 그리스도교의 확산 | 앵글로색슨족의 브리타니아 점령 | 켄트 왕국의 복음화, 베르다 왕비와 에델베르트 왕 | 앵글로색슨족을 위한 첫 교회, 세인트 마틴 | 앵글로색슨족 선교의 기지, 성 어거스틴 수도원 | 영국교회 모교회인 캔터베리 대성당 | 중세 순례자의 삶, 제프리 초서와 이스트브리지 병원 | 캔터베리 수도사의 삶, 그레이프라이어스에서
02 켈트교회의 형성과 발전
-아이오나와 린디스판 수도원에서
켈트교회 이해를 위한 출발점 | 아이오나 수도원을 향하여 | 아이오나 수도원 공동체 예배 | 콜룸바 상륙 해안가를 거닐며 | 아이오나 수도원과 십자가 | 백사장의 눈물과 붉은 피, 순교자 해변 | 성스러운 섬 린디스판을 향하여 | 세인트 에이단 동상과 메리교회 | 린디스판 수도원 유적을 둘러보며 | 커스버트 주교의 은둔지 | 켈트교회와 로마교회의 융합, 휘트비 수도원 | 휘트비 수도원 유적을 둘러보며
03 종교개혁의 새벽별 위클리프와 롤라드
- 옥스퍼드와 라터워스, 런던에서
노르만 정복과 잉글랜드 왕국 | 위클리프의 근거지 옥스퍼드 | 위클리프의 고장 라터워스에서 | 레스터에서 만난 리처드 3세, 그리고 헨리 7세 | 롤라드의 흔적을 쫓아, 다시 런던으로
04 헨리 8세와 크랜머, 튜터 왕가의 종교개혁
-케임브리지와 런던, 옥스퍼드에
종교개혁의 모태 케임브리지 | 헨리 8세와 튜터 왕가 종교개혁, 런던에서 | 토마스 크랜머의 순교 현장, 옥스퍼드
05 존 낙스와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세인트 앤드류스, 스털링, 퍼스,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역사와 교회, 왕립박물관에서 | 인문주의 확산과 종교개혁, 세인트 앤드류스에서 | 독립과 종교 자유를 품은 스털링 | 종교개혁을 향한 회중의 투쟁, 스콘과 퍼스 | 존 낙스의 종교개혁, 에든버러에서
06 개혁된 영국교회를 꿈꾼 청교도(1)
- 런던, 중부 잉글랜드, 플리머스
중도적 잉글랜드 개혁의 정착, 그리고 반발 | ‘순응’을 강요한 교회, 비순응을 택한 청교도 | 종교자유를 향한 여정, 필그림 선조들 | 미국을 세운 청교도들의 고향, 보스턴 | 필그림이 머문 땅 끝 항구, 플리머스
07 개혁된 영국교회를 꿈꾼 청교도(2)
- 일리, 케임브리지, 베드퍼드, 런던
청교도 혁명과 올리버 크롬웰, 일리와 케임브리지 | 존 번연과 ‘천로역정’, 그의 고장 베드퍼드와 엘스토우 | 런던의 청교도 흔적을 찾아
08 국가언약으로 장로교회를 지킨 언약도
- 글래스고, 에든버러를 다시 찾아
앤드류 멜빌과 장로교회, 글래스고에서 | 언약도의 헌신과 고통, 다시 에든버러로
09 존 웨슬리와 메도디스트 운동
- 엡워스, 옥스퍼드, 브리스톨, 런던에서
웨슬리의 고향 엡워스 | 웨슬리와 신성클럽, 옥스퍼드에서 | 야외설교자로 선 웨슬리, 브리스톨 | 웨슬리 사역의 근거지, 런던
저자소개
책속에서
브리튼 섬에 그리스도가 전해진 것은 2세기 후반이다. 초대교회 저술가들은 ‘제자 몇몇이 바다를 건너 영국 땅에 도착’했고 ‘교회를 건설하고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언급한다. 그렇게 시작된 영국교회는 314년 기독교 역사에 처음 등장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서로마 황제가 된 후 밀라노 칙령(313년)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한다. 이어 그는 서로마 지역 교회 주교들을 소집하여 아를에서 교회회의, 즉 아를공의회를 소집했다. 이 때 브리튼 섬에서 3명의 주교가 사제 몇몇이 회의에 참석했다.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다시 로마를 근간 삼아 지중해를 무대로 유럽과 동방으로 확산된 그리스도교는 브리튼 섬에 이르러 켈트족을 복음화 했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의 주인으로 떠오른 게르만족에 의해 도전에 직면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그들을 어떻게 복음화 할 것인가? 로마교회(가톨릭교회)는 로마를 복음화한 방식, 즉 황제를 비롯해 왕실의 주요 구성원을 개종시켜 나라 전체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했다. 로마교회가 고민하는 동안 게르만족 또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규모 민족 이동으로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유럽의 강자가 됐지만 넓은 영토와 원주민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 새 과제를 떠안은 것이다. 게르만족은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수용하여 자신의 전통을 바꿔야(파괴해야)하는지 고민했다. 결국 게르만족은 시대에 맞춰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