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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숨은 보석, 연변

중국의 숨은 보석, 연변

조현국, 추이헝룽 (지은이)
직지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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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숨은 보석, 연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중국의 숨은 보석, 연변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중국여행 > 중국여행 에세이
· ISBN : 9788989011910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15-04-30

책 소개

연변의 역사와 문화를 쉽게 살펴보고자, 조현국 충북대 초빙교수와 최형룡(추이헝룽, 崔亨龍) 연변대 교수가 함께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서 책으로 펴냈다. 연변에 대한 선입견을 바로잡고, 멀지 않은 관계로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004__책머리에
009__프롤로그│‘연변’을 만난 시간들

015__동북아 명주를 가다 : 연변, 혹은 북간도
023__부르하통하 강가를 거닐다 : 연길의 역사
029__된장국과 훈툰이 공존하는 도시 : 연길의 ‘라오바이싱’
037__고량주 한 잔, 인생 한 장면 : 연길에서 만난 중국 동포
041__일송정, 서고성, 그리고 윤동주 시비 : 연변의 역사인문 문화유산을 찾아서
051__곳곳마다 열사비 : 한·중 공통의 역사 체험 공간으로서 연변
057__겨울 백두산, 여름 백두산 : 관광 도시 연길과 백두산
071__연변의 조선족 마을 : 홍기촌과 정암촌
077__중국으로 건너 간 냉면과 명태 : 연변의 음식 문화
087__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 한반도와 만주를 연결한 도문
095__삼국의 국경 마을 ‘방천’ : 토자패와 장고봉 단상
105__‘꼬리’에서 동북아의 ‘머리’로! : 개방 도시 혼춘
111__주덕해와 연변 : 한중·남북 교류의 매개 연변대학교
119__장춘 ‘위만황궁’을 찾다 : 마지막 황제 부의의 열망과 완용의 절망
131__추워야만 피는 꽃 : 송화강 길림무송

138__에필로그│21세기 연변
140__찾아보기

저자소개

조현국 (옮긴이)    정보 더보기
충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비영리 마을 공동체 신문 <두꺼비마을신문>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구추백 관련 논문으로 <구추백 문학사상 형성에 있어서 ‘보살행’의 영향>, <구추백의 ‘한자 라틴화’론에 대한 재고찰>, <근대 중국에서 지식인과 공산주의 운동: 구추백의 『부질없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두 시각의 종합: 노신과 구추백의 ‘공동잡문’에 대한 일고찰> 등이 있다. 저서로는 『중국의 숨은 보석, 연변』(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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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이헝룽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국 연변대학교 한어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연변대학교 한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충북대학교 공자학원 중국 측 원장을 맡고 있다. 전공은 ‘한중 통역’이고, 논문으로는 「중국어 친족 간의 호칭 번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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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프롤로그│
‘연변’을 만난 시간들

나는 할아버지 얼굴을 모른다. 아버지가 일곱 살 되던 해 여름, 만주(간도)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아버지 기억에, 할아버지는 이웃 초상집에 갔다 오신 후 돌아가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1930년대 어느 해인가 만주 일대에는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아마도 할아버지께서는 그 일로 잘못되신 것 같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살 길이 막막해진 할머니는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외가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셨다. 할머니와 어린 두 아들은 압록강에다 할아버지 유골을 뿌린 후, 압록강 철교를 건너 남쪽으로 사나흘 기차 타고 외가댁에 당도했다.
다소 뜬금없이 케케묵은 가족사를 꺼낸 이유는 격동의 동아시아 근현대사에서 누구든 ‘이산離散’의 운명에 놓일 수 있었음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타계가 우리 가족사를 결정했듯이 말이다. 만약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할머니와 계속 만주에서 생활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광복’과 함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산’의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 중국 연변 등지에 많이 남아 있는 수많은 동포들은 할아버지와 유사하게 한반도에서 만주로 건너 간 사람들이다. 그들 중 ‘광복’ 후에도 만주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조선족’이 되어 ‘연변’이라는 민족 자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해 왔던 것이다.
한국인들과 연변 등지에 사는 중국 동포들은 한·중 수교 이후에 본격적으로 만났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가로막혀 있던 이데올로기 장벽으로 인해 상대방에 대한 편견과 오해, 그리고 불신이 생겨났다. 서로에게 비친 모습은 낙후하고 야만스러운 사람들이거나 돈만 밝히는 천박한 사람들에 불과했다. 지금은 이런 인식들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게 되었다. 연변 다녀 온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구성하여 먼저 연변에 다가서는 것은 어떨까, 소소한 이야기타래라도 풀어 오랫동안 막혀 있던 한국과 연변을 잇는 길을 놓으면 어떨까, 그렇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과 중국, 한국과 동북아를 잇는 새로운 길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변에 대한 나의 무지가 집필의 동력이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을 떠들고 다닌 지도 꽤 오래됐지만 막상 ‘연변은 어떤 곳이냐’ 하는 자문에 속 시원하게 답할 길이 없었다. 도서관에 가서 연변 자료를 검색해 봐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렇듯이 연변에 대한 무지를 깨닫고 이제라도 연변을 하나하나 알아나가고자 했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충북대 공자학원 추이헝룽(崔亨龍) 원장의 도움이 매우 컸다. 이야기와 사진이 있는 연변 책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에 추이(崔) 원장은 흔쾌히 의기투합해주었거니와 그와 술잔을 기울이면서 주고받은 연변 이야기가 이 책의 활자로 되살아났다. 추이 원장과는 8년 전쯤 최병덕 교수의 소개로 처음 만났으니 이번 작업은 ‘라오펑유(老朋友)’ 간의 우정의 산물인 셈이다.
직지출판사의 이성우 사장과 권기윤 부장 덕분에 소소한 이야기가 예쁜 ‘책’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흔쾌히 출판을 허락해준 것도 고맙거니와 이들을 통해 책 한 권이 태어나는데도 엄청난 장인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은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하루 일과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밤 늦게까지 교정을 도와준 아내와 딸 서연, 그리고 삽화를 그려준 아들 정강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한다.

이 책이 중국과 연변, 그리고 백두산을 여행하는 사람들 배낭에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2015년 4월
조현국


│책머리에│

어릴 때부터 청명과 추석이 되면 부모님과 함께 선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곤 하였다. 1900년대 초반에 증조부가 두만강을 건너 와서 일군 터전에 모셔진 증조부님, 조부님, 그리고 십여 년 전에 돌아가신 부친의 묘소까지 가토하고 풀 뽑고 제를 지내고, 가족끼리 모여 앉아서 술 한 잔 하면서 백여 년 전에 돌아가신 증조부가 지금 살아 계신다면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라고 하면서 지나온 이야기들을 나누곤 한다. 아마 증조부가 살아계셨더라면 해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연변의 모습에 놀라셨을 것이다.
이렇듯 상전벽해하고 있는 연변의 이모저모를 알기 쉽게 엮어 연변에 접근하기가 쉬운 책을 펴내자는 마음으로 중국 전문가인 조현국 교수와 기획하게 되었다.

연변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 온 나에게는 누가 뭐라 해도 연변은 우리의 땅이고 고향이다. 연변의 역사를 좀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속의 ‘서울’이라 불리는 연변은 우리 민족의 문화와 중국 여러 민족의 문화가 어울려 있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새로운 관광지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연변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나오는 화젯거리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매체에 오르는 화젯거리는 부정적인 것이 많아, 연변을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연변은 매력이 없다. 또한 백두산 가는 길에 스치듯 지나는 여행으로 연변을 깊이 알기에는 너무도 적은 시간이기에 연변의 조선족들의 삶과 정신세계에 대하여 꼭 짚어 말할 수가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 책이 연변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5년 4월
추이헝룽(崔亨龍)


동북아의 ‘명주明珠’를 가다 : 연변, 혹은 북간도

1월인데도 청주공항에서 연길로 가는 비행기는 만원이었다. 8월 중순에 인천공항에서 연길로 갈 때는 더 붐볐다. 한국말, 중국말, 연변 말투가 뒤섞여 있는 비행기 안에 있노라니 한국과 연변 사이에 활발하게 이뤄지는 인적·물적 교류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중국 내에서 연길은 연변의 주도로서 다른 도시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연길의 조양천 공항에서는 북경, 대련, 청도, 심양 등 중국 북방의 도시들뿐만 아니라 상해, 광주 등 남방 도시들로 가는 국내선도 있다. 게다가 여름이면 북한의 평양이나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날아가는 국제선 항공기도 마련되어 있다.
이처럼 연길이 동북아의 주요 도시들과 하늘길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21세기 동북아 시대에 연변이 그만큼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사실 연길로 통하는 하늘길이 열린 것은 2000년 이후의 일이다. 이전에 연길은 대련이나 장춘 등지를 경유하여 기차로 환승해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한중 수교 및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장길도(창지투) 프로젝트’ 등으로 인해 연변은 주목받는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연변을 동북아 시대의 거점 지역으로 선점하려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는 연변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고속철도 공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연변 끝자락 혼춘과 장춘을 연결하는 고속철도가 완공되면 하얼빈, 대련, 북경까지도 고속철도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북)간도라 불렸던 연변
연길로 가는 하늘길이 열린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역시 아쉬운 점은 기찻길로 갈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연변’은 우리 한민족에게는 ‘간도’ 혹은 ‘북간도’로 더 일찍 알려진 곳이다. ‘간도’는 원래 두만강 속에 있는 ‘사이 섬()’을 뜻했다. 이곳은 17세기 무렵 만주족의 청나라가 백두산 일대를 ‘조상들의 발상지’라며 신성시함에 따라 다른 민족의 출입을 금지하는 봉금지역이 되었고, 조선에서도 ‘월강죄’를 만들어 백성들이 두만강을 건너 간도에 가는 것을 엄하게 다스렸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부터 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간도로 건너 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후에 이 지역에 대한 봉금령이 해제되고 개간 구역으로 선포되자 간도 일대로 조선인들이 대거 이주하게 되었다. 조선인들의 이민이 ‘사이섬 간도’에만 머물지 않고 해란강과 부르하통하 유역 등지로 확산됨에 따라 ‘간도’는 더 이상 ‘섬 이름’이 아니라 두만강 이북 지역을 일컫는 ‘지명’이 되었다. 20세기 초, 조선의 이주자들이 압록강 일대까지 퍼지자 두만강 북쪽 화룡, 연길, 왕청, 혼춘 등 현재의 연변 일대는 ‘북간도’로, 압록강 이북 지역은 ‘서간도’로 불리게 되었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연변은 중국의 ‘조선족자치주’로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간도 내지 북간도라는 이름은 점차 잊혀져갔다. 그러면서 북간도였던 연변은 배나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으로 한국인들에게 각인되어 왔다. 그러나 20세기 초만 해도 ‘북간도’로 불리던 연변에 우리 조상들은 비행기를 타고 간 것이 아니라 기차를 타고 육로로 오고갔다. 예컨대 북간도 용정이 고향이었던 윤동주(1917~1945) 시인의 여정이 그러했다. 서울에 있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서 문학수업을 받던 시절, 그는 방학 때면 고향 용정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먼저 서울에서 의정부, 철원을 거쳐 동해안의 항구 도시 함경남도 원산에 이르는 경원선 열차를 탄 후에 원산에서 다시 함경선으로 갈아탔다. 함경선은 원산에서 출발하여 고원, 함흥, 길주, 청진, 회령을 지나 함북의 끄트머리 두만강변의 상삼봉에 이르는 단선 철도이다. 윤동주 시인은 서울에서 도합 이천 리가 넘는 기찻길을 달려 두만강변의 상삼봉역에 내려 고향 용정으로 갔던 것이다.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명주로 떠오르는 곳, 예전 (북)간도라 불렸던 연변! 중국에 관심이 있고 우리 민족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안 가 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연변행 비행기에 주저 없이 몸을 실었다. 윤동주 시인처럼 기차를 타고 육로로 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뒤로 달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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