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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히말라야 : 카트만두 편

네팔 히말라야 : 카트만두 편

(히말라야의 맹주)

임현담 (지은이)
  |  
종이거울
2016-03-03
  |  
2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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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히말라야 : 카트만두 편

책 정보

· 제목 : 네팔 히말라야 : 카트만두 편 (히말라야의 맹주)
· 분류 : 국내도서 > 여행 > 인도/티베트/네팔여행 > 인도/티베트/네팔여행 에세이
· ISBN : 9788990562500
· 쪽수 : 528쪽

책 소개

이 책에서는 먼저 네팔의 역사가 시작되고 문화의 중심지인 카트만두 분지의 신화와 전설, 역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신전과 문화재를 중심으로 상세하게 살펴보고 있다.

목차

■ 서문 _ 006
지난 스무 몇 해 동안 모셔온 귀한 스승 _ 006
천대 받았던 카트만두의 복권 _ 008
대지진 이후 _ 010

1. 카트만두 분지의 기본 골격 _ 019
만나면 외관을 먼저 살피다 _ 021
얼음 나라의 물의 수도 _ 027

2. 카트만두 분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_ 029
『스왐부 뿌라나』, 시초를 이야기하다 _ 031
붓다 일행이 히말라야 호숫가에 나타나고 _ 034
붓다들의 계보 _ 040

3. 개국의 시원, 나가르준 _ 045
위빳시 붓다를 뒤따라 오르는 나가르준 _ 047
안식일 없는 네팔 _ 051
연꽃의 깊고 깊은 의미 _ 053
히말라야의 수행자, 나가르주나 _ 058

4. 두 번째 붓다의 축복, 다이나쵸 _ 067
두 번째 시키 붓다가 등장하시다 _ 069
시키 붓다의 향기가 스민 봉우리 _ 080
달이 쉬어가는 봉우리 _ 088

5. 꽃이 만발하는 최고봉 풀초키 _ 091
웻사부 붓다 다녀가다 _ 093
만주스리, 히말라야를 넘다 _ 097
활인검을 뽑다 _ 104

6. 카트만두 어머니 강의 발원지 쉬바푸리 _ 109
원시림의 진면목, 쉬바푸리 국립공원 _ 111
까꾸산다 붓다, 강을 만들다 _ 118
카타를 알고 가자 _ 123
빠니와 잘, 물의 카스트 _ 124

7. 카트만두에서의 만주스리 행적 _ 129
제자가 찾아오다 _ 131
스승, 제자를 찾아나서다 _ 139

8. 본래 주인이었던 뱀들의 반란 _ 147
쿨리카 나가의 거친 반항 _ 149
타우다하에 숨겨진 천상의 보물 _ 155

9. 빛을 가슴에 머금은 주탑 보광사(保光寺) _ 157
빛은 소멸되어 버렸을까 _ 159
불가사의한 유가 _ 161
합심하여 빛을 숨기다 _ 168

10. 불교의 모든 것, 스왐부나트 _ 171
카트만두 분지의 결정체 _ 173
대승의 어머니가 함께 계시다 _ 179
샨티푸르에서 귀 기울이다 _ 185
만주스리가 오가던 자리를 걷다 _ 188
바수반두의 그림자가 이 자리까지 _ 191
킴돌 비하르, 병자들의 쉼터 _ 193

11. 경이로운 천연사원 나가르코트 _ 197
마음으로 읽는 경전 _ 199
밤하늘 보기를 빼놓을 수 있을까 _ 208

12. 산쿠, 이런저런 신화의 고향 _ 211
히말라야 걷기란 황홀한 행위 _ 213
쇼스타니를 알면 네팔사람 _ 221

13. 네팔이라는 말의 의미 _ 235
네팔이라는 이름의 의미 _ 237
오래된 나라의 시시콜콜한 역사 _ 245

14. 분지 안의 가장 오래된 도시 파탄(랄릿푸르) _ 257
아쇼까, 카트만두 분지를 찾아오다 _ 259
카트만두로 이동한 석가족들 _ 265
아름다움이 도시를 일으키다 _ 268
더바르 북쪽에서 시작된 이야기 _ 270
자신의 그릇만큼 빗물을 받다 _ 278
비하르가 숲을 이루는 파탄(랄릿푸르) _ 285
더바르 광장은 보물 중의 보물 _ 289
빔센 사원은 상인들의 치성소 _ 289
1,400년 역사의 우물 _ 300
카트만두의 몇몇 연못 _ 304
귀한 비스바까르만 사원 _ 305
라또 마첸드라 사원, 뜻 깊다 _ 306

15. 선근을 심어라, 보다나트 _ 311
내 마음의 이정표 보다나트 _ 313
가뭄이 만든 죄인 _ 317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으니 _ 325
티베트사람들의 탑 이야기 _ 327
보다나트에서 잠들다 _ 337

16. 비슈누 종합박물관, 창구나라얀 _ 347
목이 잘려나간 비슈누 _ 349
가루다는 비슈누의 날개 _ 358
한곳에 모인 석재문화의 정수 _ 367
은하수를 만든 난쟁이 바마나 _ 375
순례자의 길 _ 381
죄를 지으면 악마의 역할을 맡을 뿐 _ 384
아르쥬나가 바라보는 우주 _ 397
왜 붓다가 비슈누 화신인가 _ 398

17. 파슈파티나트, 중생의 해방구 _ 403
쉬바 신에게 헌정된 성지 파슈파티나트 _ 405
링가가 생긴 이유 _ 414
파슈파티나트의 종교철학적 관점 _ 418
화장터는 역시 도량 _ 424
시타 시신 일부가 떨어진 구헤스와리 _ 429

18. 중세의 향기가 넘치는 박타푸르 _ 435
예사롭지 않은 도시 이름 _ 437
후세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말라리아 _ 443
광장을 중심으로 골목을 걷다 _ 447
더바르 광장은 유명 관광지 _ 451
정겨운 또마디 광장 _ 455
도자기 광장의 교훈 _ 458
마음 따뜻한 닷따트레야 광장 _ 460
박타푸르에서 마시는 독주 _ 467

19. 이제는 카트만두의 중심, 하누만도카 _ 471
카트만두는 사원의 이름 _ 473
고라크나트와 고르카 왕국 _ 482
바이라바, 분노하는 쉬바 신 _ 488
네팔의 여신 쿠마리 _ 491
하누만을 기리는 하누만도카 _ 501
인간에게 붙잡힌 인드라 _ 508
흘러간다, 꽃이 핀다 _ 515

■ 후기 _ 519
안식처, 쉼터 혹은 대피소 _ 519
벼루를 씻다 _ 521

■ 참고서적 _ 526

저자소개

임현담 (지은이)    정보 더보기
소년시절 관악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을 거쳐 히말라야에 이르렀고, 더불어 한강을 지나 갠지스의 근원을 넘어 티베트 고원 마팜윰초(마나사로바) 호수까지 나아갔다. 서울에서 태어나 동성고등학교, 중앙대학교, 가톨릭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현재 영상의학과(진단방사선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으나 지인들은 그를 ‘의료계에 위장취업한 산악인’이라 부른다. 해마다 히말라야 일대에서 한 철 동안 걷고, 오르며, 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높이와는 무관하게 히말라야 일대의 자연과 종교에 관한 깊이를 추구하는 산행을 한다. 몇몇 히말라야 구루들은 ‘전생의 이곳 수행자가 길을 잃어 먼 곳에서 태어났다’ 이야기한다. 다음 삶에서는 제 자리로 돌아가는 귀향을 꿈꾸는 그는 전생의 무대였다는 히말라야 각 지역을 부문별로 나누어 집중적으로 산행을 한 다음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작업으로는 이번의 『네팔 히말라야』를 포함하여 『강 린포체(카일라스)』(1.2),『히말라야 있거나 혹은 없거나』, 『시킴 히말라야』, 『가르왈 히말라야』(1.2)가 있고, 앞으로 『펀잡 히말라야』, 『아쌈 히말라야』, 『부탄 히말라야』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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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저자서문

지난 스무 몇 해 동안 모셔온 귀한 스승


36살, 붓다가 정각에 이르렀다는 나이에, 나는 그제야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한밤중에 인도 뭄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그 후 강과 산이 여러 차례 변하는 제법 긴 세월 동안의 행적이 몸과 마음에 이런저런 흔적을 남겨 왔다.
배낭을 메고 집을 나가던 순간부터, 오늘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돌아보면, 단지 스무 몇 해가 아니라 몇 생(生)을 너끈히 살아낸 것 같다. 종교 이야기만 하더라도 천주교에서 힌두교로 그리고 티베트 불교로 이어나가며, 마치 나이테처럼 확연히 뛰어넘고 구별되는 삶들이 세월 따라 여러 겹 생겨났다. 안거를 지내 법랍(法臘)이 늘어나면 세수(歲首)만한 가치를 지니거늘 집을 나선 날부터 스스로 납(臘)을 삼았으니 삶이 제법 흘러온 셈이다.
이런 소중한 시간대가 없었다면 여전히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세속적인 가치로 무장한 채 영원히 죽지 않을 사람처럼 질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거스를 수 없는 노화나 회복이 어려운 큰 병이 다가와, 이제 가까워진 죽음을 어루만질 무렵에서야 ‘삶이란 겨우 이런 것인가?’ 물었을 것이고, 회복되기 어려운 상태에서 ‘나라는 존재는 겨우 잠시 깜박였다가 사라지는 불꽃이었던가?’ 삶을 통째로 회의했을 것이다.
혹 치명적인 병이라도 찾아왔다면 쉬이 내려놓지 못하고 ‘인궁즉호천(人窮則呼天) 통극즉호부모(痛極則呼父母)’라 했던가, 하늘을 향해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집요하게 매달렸으리라.
삶이 왕성했던 스무 몇 해 동안의 지대한 스승은 서남쪽 인도라고 부르는 땅덩어리를 중심으로 북쪽의 티베트, 서쪽의 파키스탄 그리고 북쪽 중앙부에 위치한 네팔이라는 나라들이었다. 이들을 연결하는 하나의 공통점이자 구심점은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달리는 길고 하얀 대간, 높고 거친 백산룡(白山龍) 줄기, 즉 히말라야.
히말라야는 동서 길이가 무려 2,500km 남북 300km 이르러 지구 둘레를 도는 인공위성에서 별다른 노력 없이 선명하게 보이는 드넓은 지역으로, 이 거대한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강줄기에 의지 의탁하는 여러 나라가, 지난 세월 동안의 삶의 방향을 바꿔준 열혈공부방이었다.
산수(山水)는 물론, 자생하는 동식물들, 더불어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사원과 히말라야에서 수행하는 구루들, 그들이 믿고 따르는 종교의 가르침, 종교 문화적 유산들, 이 모두가 꿀과 젖 같은 가르침을 주며 상응(相應)하여 오늘의 나를 키워냈다.
인연법에 따라 힌두교와 티베트불교의 이야기들이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되고, 이야기가 펼쳐진 힌두교 성지를 찾아 인도에서 북쪽 가르왈 히말라야로 들어가는 것을 시작으로, 히말라야 줄기 이곳저곳, 결국 불교와 힌두교의 최고 성지인 티베트의 강 링포체(카일라스)를 돌아보는 순간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새로운 지역을 들어갈 때마다 떨리는 가슴, 묘한 흥분은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새로운 책을 이제 막 펼치는 기분이랄까.
쓸데없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발바닥 닳도록 돌아다닌[踏?脚板?] 일은 아니었는지 이제 과거 목숨 걸고 얻고자 노력한 귀중했던 가치는 호수의 잔물결, 아지랑이나 구름처럼 모두 덧없음을 알게 되었다. 삶의 중요 관점이 뒤바뀌고 변화하였으니 본래 종자들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기 시작하며, 계절을 겪어가며 해가 바뀌어, 때마다 나이테가 하나씩 더해졌다. 이제 달과 손가락 사이에서 다시는 현혹되지 않는[指月無復眩] 입구에 서 있다.
모두 히말라야 덕분이다.

천대 받았던 카트만두의 복권

그렇게 히말라야를 여행하던 1996년, 당시 시절 인연에 따라 카트만두에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 후, 꽤나 여러 차례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시선이 놓인 자리 풍경, 건물 등등이 가지고 있는 신화와 종교적 깊은 이야기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카트만두는 다만 산으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로 간주했다.
네팔에 대한 관심은 깊되 카트만두의 참맛은 간과하여 이 매력적인 도시 속살은 감히 살펴보지 못했다. 그 당시 만약 누군가 오로지 카트만두만 보기 위해 네팔을 갔다고 말했다면 ‘왜지?’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세월의 힘으로 차차 눈이 뜨이면서 힌두교 코드와 불교 코드가 미묘하게 적절한 비율로 버무려지고 뒤섞인 모습들에 적이 감탄하는 시간대가 찾아왔다. 풍경은 풍경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바로 남쪽에 인접한 인도와는 거의 같으면서 완연히 다른 색깔이었다. 북쪽 티베트와도 많이 달랐다.
살펴보니 카트만두는 고대 인도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유장한 흐름 안에 있었다. 인도에서 발생한 힌두교와 불교가 히말라야와 연관을 가지며 웅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카트만두 분지에서 꽃을 피어냈다. 더불어 히말라야 너머 티베트까지 가세하여 색다른 모습을 직조해왔다. 두 종교는 태생적으로 사막이 아닌 나무, 숲 그리고 산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일어났기에 공유하는 부분이 많으며, 아말감처럼 융합하여 카트만두 분지에 자리 잡았다.
두 종교의 수많은 신과 붓다와 보디삿뜨바는 너와 나라는 구별점이 아닌 우리라는 개념 안에서 주석하고, 아주 먼 과거로부터 흘러온 세월 속에 용과 뱀이 뒤섞이고 범부와 성인이 함께[龍蛇混雜 凡聖同居] 분지 안에서 어울려왔다. 하나의 문화재 안에는 이런 복잡계 세상이 엿보였다. 두 개의 실이 하나의 노끈을 엮어나가듯이 힌두교와 티베트불교가 하나로 재탄생하여 성장해왔다.
종교의 다양함에 더해 부족들의 다양성은 또 어떤가. 획일(劃一)을 멀리한 여러 가지 꽃이 함께 어울려 피어난 화려한 꽃밭. 거기에 더해 기후변화에 따른 인간의 대응이 조절이 아니라 도리어 카트만두 분지 문화를 키워냈다.
속살을 보고 나니 카트만두라는 도시가 원래 가치로 복권되었고, 더불어 카트만두 분지의 종교와 문화들이 카트만두를 벗어나 네팔 히말라야 곳곳에 포진하고 있기에, 네팔 변방까지 선연하게 파악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카트만두를 진하게 이해하자, 그 다음 네팔 히말라야 코드는 거저먹기였다. 그동안 카트만두를 너무 몰랐다.
1996년 발을 내딛는 순간, 카트만두는 하나의 고향으로 자리매김을 시작했으며 아직 유효하다. 고향이 된다는 일은 내 조국과 구별이 상실되고 국경의 벽이 무너진다는 사건. 자신의 고정적 관념을 망각하고 녹아든다는 일로 천향만리 고향을 늘려가며 자신의 영토가 확장된다는 의미이며, 모두가 여행이라는 행위의 인연이 만들어준 선물이다. 더구나 여기는 백색고불 히말라야의 심장으로, 마음으로나마 고향으로 선포할 수 있었다니 북으로 꽉 막힌 반도의 남쪽 출신으로는 크나큰 행운이 아닌가.
나를 바꾸어 놓은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동물성보다는 식물성 아우라를 가진, 금속성보다는 목조의 아우라를 가진 카트만두를 빼면 참으로 심심해진다. 천주교도에서 힌두교도로 넘어가는 길에 인도가 있었다면, 힌두교에서 티베트 불교로 넘어오는 길에 소중한 촉매제, 카트만두에 있었다. 나는 세월이 지나면 서 카트만두 덕분에 더 새로워졌다.
네팔 카트만두에 무엇인가 보답하고 싶은 감정을 가지고 이 글을 쓴다. 해박함까지 겹쳐지면 좋겠지만 내 모자란 능력의 한계를 알기에 고대도시 문화유산을 시선이 가는 곳까지만 소개하는 일이 섭섭할 따름이다. 지면 역시 충분히 넓지 않아 내용을 줄이는 일도 안타깝다.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 실핏줄 같은 카트만두 골목들이 더욱 정겨워졌으며, 어디선가 풍겨나는 오래된 나무 냄새에 킁킁 거렸고, 고향에 가까워져 익숙한 물 냄새를 맡은 연어처럼 가슴이 내내 뛰었다. 애향심이라 표현해도 될까.
내일, 이른 아침, 눈을 뜨는 순간 카트만두의 삐걱거리는 침대 위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니면 말년의 삶을 카트만두 사원 골목과 능선들을 오가고 어슬렁거리며 마감할 수 있다면 그런 호강이 세상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항상 집에 있되 조금도 길 걷기를 쉬지 않는다[常在家舍 不離途中]던가, 비록 반도에 머물러도 지금 카트만두 골목을 걷고 있으니 눈 감으면 발아래가 즐겁고 환하다.

대지진 이후

원고를 만들고 출판을 기다리는 동안 큰일이 생겼다. 네팔 히말라야, 특히 중부 고르카를 중심으로 네팔 전역에 대형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카트만두의 많은 건물들, 특히 유서 깊은 문화재들이 타격을 받아 무너지고 인명 피해가 컸기에. 네팔을 아는 사람들은 남의 일 같지 않아 발을 동동, 그리고 촉각을 곤두세워 사태의 추이를 바라보았으리라.
어땠을까?
소위 선진국이라 자처하는 국가에서 재난 발생시에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사재기, 난동, 방화 등등의 현상은 추호도 없었다.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어디 재해뿐이랴,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인재라며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며 돌을 던지고 뭇매질하는 일은 네팔에서 티끌만큼도 찾지 못했다. 요즘 세태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자신을 탓하지 않고 땅 주인을 고소하는 세상으로 변했으나 네팔인들의 마음은 역시 달랐다.
그동안의 네팔을 바라보았던 시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으니 지진 이후 네팔을 관심 있게 바라보았던 많은 세계인들 시선 역시 나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출판을 이런저런 이유로 지연시키는 바람에 책 내용 일부, 특히 사진들은 지진 이후 옛것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문화유산이 파괴되었다 해서 그 자리에 스며 있던 이야기들의 생명력이 변하겠는가. 네팔 사람들은 다시 복구해서 올릴 것이고 신화와 함께 구전되어 온 이야기들은 다시 이어져 나가리라.
테세우스가 괴물을 죽이고 돌아온 후, 사람들은 영웅의 위대한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테세우스의 배를 기념물로 보전하기로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널빤지가 떨어지면 새것으로 교체하고 일부가 썩으면 새 나무로 바꾸어갔다. 언젠가 본래의 재료가 모두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재료로 교체되었다고 테세우스의 영웅담이 사라졌을까.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불리며 정체성을 품는다. 카트만두를 기록한 이야기는 일부 문화재들이 무너지고 사라진 오늘이라고 버릴 수 없으며, 더 큰 재난을 겪는다 해도 쉬이 버려지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진 사원들은 테세우스 배처럼, 마치 우리들의 몸처럼, 다시금 새로운 널빤지로 대체될 것이고, 지난 모습을 되찾아 가리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새로운 작업 현장에 앉아 현상의 무상한 배후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함께 벽돌이라도 져 나르고 싶다.

툽텐랍쎌 임현담


이에 더해 카트만두를 풀어내는 숨겨진 코드는 바로 이런 프라이팬에 담겨 있었던 물이다. 혹자는 네팔이라는 나라를 특성상 산의 나라라고 부르지만 산의 높은 부분은 물의 변형인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고, 조금 낮은 곳에는 산과 산 사이를 빙하가 이어준다. 보다 저지대에는 많은 빙하호수와 일반 호수, 그곳에서 발생하여 낮은 곳을 찾아 떠나는 지류, 더불어 곳곳에 포진한 다양한 크기의 물웅덩이와 샘이 수없이 산재하기에 네팔을 물의 나라라 이야기해도 크게 그르지 않은 시선이다. 훗날 물이 빠지면서 사람들이 정착했고, 역사가 흐르면서 중세에 이르러 카트만두 분지에 고구려?신라?백제처럼 파탄(랄릿푸르), 박타푸르 그리고 칸티푸르(카트만두), 세 나라가 자리 잡는다.
카트만두 분지는 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빼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때로는 홍수 또 그 정도의 가뭄이 번갈아 찾아들어 물이 넘치고 부족함으로 도시를 시련으로 몰아넣으면서 성장통으로 작용했으며, 사람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단합하여 제사를 지내고 사원을 일으켰다. 신화가 서린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고 그 후 풍상설월(風霜雪月) 세월 속에 일어난 문화가 물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주의 깊게 바라보면 이해가 쉽다. 훗날 분지 안에서 일어난 세 나라 중에, 파탄(랄릿푸르)은 주로 대부분 불교 색을 가지고 있으며, 박타푸르는 힌두교가 주 세력, 그리고 칸티푸르(카트만두)는 힌두교가 우세하지만 모든 것이 혼융된 상태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
티베트에는 현재 인도 힌두교의 향이 스며든 티베트불교와 기존 토착종교 뵌교가 어울려져 있다. 인도에서 불교는 이미 거의 숨이 끊어진 종교로 다만 유적지 혹은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가, 요즘은 티베트 불교도에 의해 유적지와 관광지가 성지(聖地)로 바뀌며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는 형상. 그러나 불교의 힘은 미미하여 굳건하게 자리 잡은 힌두교 기득세를 깨가며 따라잡기는 너무 벅차다. 반면 카트만두는 불교와 힌두교가 서로 어울려 있어, 숨겨진 아이콘을 읽다보면 두 종교 사이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카트만두에서 종교는 각각 다른 하나의 실[絲]이 애초부터 서서히 간섭과 조화가 이루어져 직조된 아름다운 양탄자이기에 서로 어떻게 존재감을 드러내는지 살펴보는 일도 흥미롭다.


케사리와 우케사리, 두 부인은 각자 봉우리에 앉아 선정에 든다.
『뿌라나』에서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리고 참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머리를 끄덕였다. 비록 의인화했으나, 만주스리가 거처에서 나올 때 부귀영화(케사리)와 학문 지식(우케사리)에 관한 마음을 품고 떠났다고 풀어내도 좋다. 그리고 풀초키 정상에서는 앞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부귀영화가 서서히 일어나도록 뿌자를 올렸으며, 챤드라기리에서는 학문 지식이 함께 일어나기를 기원했다고 풀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부귀영화를 원한다면 풀초키에서 간절히 만주스리의 감응을 받을 것이며, 학문 지식이 필요하다면 챤드라기리에서 감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두 봉우리는 부귀영화, 학문 지식이라는 세속 욕망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올라야 할 자리다.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그 돈을 자손에게 물려줄 요량이면 풀초키, 자신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결과를 얻고 싶거나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한다면 챤드라기리를 찾아가 간절히 뿌자할 일이다. 둘 다 원한다? 무리해서라도 두 봉우리를 오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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