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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라디오

아버지의 라디오

(국산 라디오 1호를 만든 엔지니어 이야기)

김해수 (지은이), 김진주 (엮은이)
  |  
느린걸음
2007-08-20
  |  
10,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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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라디오

책 정보

· 제목 : 아버지의 라디오 (국산 라디오 1호를 만든 엔지니어 이야기)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과학자의 생애
· ISBN : 9788991418035
· 쪽수 : 237쪽

책 소개

국산 라디오 1호 '금성 A-501호'를 만든 엔지니어 김해수(1923~2005)의 일대기.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에서 전기 기술을 배우고, 좌우가 대립하는 해방공간을 엔지니어로 통과하고, 산업화 제1세대로 살아간 아버지 김해수의 기록을, '민주투사'였던 딸 김진주가 논평을 더해 엮었다.

목차

엮은이 머리말
화보
지은이 머리말

제1부 도쿄에서 엔지니어가 되다
장난꾸러기 어린 시절
아버지가 물려준 낚시 취미
도쿄로 유학을 간 소년
숨어서 배운 라디오 기술
강원도 산골의 창도광산
일제 말기의 다덕광산

제2부 해방된 조국의 빛과 어둠 속에서
'우환동포'의 창전사
빛과 소리가 열리던 고향마을
하동군청 방화사건
내 친구 강대봉의 죽음
소안도 피난살이
화평전업사와 미군 PX 시절

제3부 국산 라디오 1호의 탄생, 그 이후
금성사의 기술 간부 채용시험
한국 전자공업의 선구자들
금성 A-501호 라디오가 탄생하기까지
전자공업 초기의 실패를 넘어서
박정희 대통령과 라디오
히다치와의 기술제휴로 TV 생산
금성사 동래 공장을 설계하다
서울 본사의 기획부장으로 승진
삼화콘덴서와 한일 합작 회사들
가와다케와 신기상역

제4부 바람 속의 등불처럼 일가를 이루다
수호천사 아내 자랑
우리 집의 세 기둥과 자라나는 나무들
유별난 딸과 사위 박노해

뒷이야기
김해수 연보

저자소개

김해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3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나 하동에서 자랐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가서 도쿄고등공업학교에 진학했다. 1943년 일본 군부에 의해 인천 조병창의 전기주임으로 발령 받았으나 탈출해 강원도 산골로 숨어들었다. 강원도 광산에서 전기 책임자로 일하던 중 해방을 맞이했고 1945년 고향 하동에서 ‘창전사’를 개업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첩첩산중 시골마을을 다니며 빛을 밝히는 스타 엔지니어로 활약했다. 해방 직후, 좌우익 분쟁에 휘말려 수감되었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폐결핵을 앓고 소안도에서 요양을 하던 차에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전란 중에 부산 국제시장에서 ‘화평전업사’를 열고 미군 PX의 라디오 수리점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1958년 공채 수석으로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국산 라디오 1호’(금성 A-501)의 설계와 생산을 책임졌다. 그때부터 1969년까지 ‘국산 TV 1호’ 설계 등 금성사의 신제품 개발을 주도했으며, 거듭되는 실패 속에 부품 국산화를 통한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큰 획을 그어나갔다. 1960~70년대 성장가도에 오른 한국 전자산업사의 중대한 고비마다 엔지니어 김해수의 발자취가 새겨졌다. 80년대 격동하는 민주화운동의 파고 속에 딸과 사위(박노해 시인), 아들이 구속되는 고난을 겪었으며, 1987년 일본인 사업가의 도움으로 (주)신기상역을 개업해 말년까지 전자산업의 현역으로 일했다. 2005년 8월, 83년의 생애를 마감하고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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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주 (엮은이)    정보 더보기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라디오 한번 듣기 위해 줄을 서던 시절, 엔지니어 아버지가 만든 국산 1호 라디오를 친구 삼아 자랐다. 고명딸로 부모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하며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초등학교 시절에 서울로 올라왔다. 1978년 이화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한 후, 백병원 약사로 근무하던 중 경동교회 청년부를 통해 민주화운동에 합류했다. 당시 노동운동을 이끌기 시작한 노동자 박기평(박노해 시인)을 만나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은 산업화의 주역인 아버지와 갈등을 겪으며 민주투사가 되어갔다. 5년간 구로공단 봉제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며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1982년 명동성당에서 박기평과 결혼하고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1989년부터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중앙위원으로서 월간 『노동해방문학』의 주요 필진으로 활동하다 군사정권에 의해 수배되었다. 1991년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4년 동안 양심수로 옥고를 치뤘다. 1998년 박노해 시인이 8.15 특사로 풀려날 때까지 석방운동에 주력했고 2000년부터 비영리사회단체 나눔문화(www.nanum.com)의 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 아버지 김해수가 노환과 지병으로 고통 받던 중, 아버지의 시대와 생애를 기억하기 위해 매주 육필원고를 받아 기록해왔으며 2007년 『아버지의 라듸오』를 펴냈다. 현재는 아버지의 위패를 모신 경상남도 거제에서 약사로 일하며 대체의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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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 또 한가지는 라디오가 판매되기 시작하자 절반 이상의 제품에서 전면에 붙여 놓은 투명 무자판이 앞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 사고는 라디오 가게를 통해서 전국의 가정에 이미 보급되었을 때에 발생한 것이어서 더욱 문제였고, 이 일로 인해 럭키화학 기술진과 나는 크게 다투기도 했다. 라디오 앞면의 투명 플라스틱 다이얼판을 붙일 때 캐비닛에 구멍을 내어 다이알판의 돌출부를 끼운 다음 그 끝을 전기인두로 지지면 어떻겠느냐고 내가 럭키 쪽의 의견을 물었을 때 전문가들은 "좋은 생각!"이라며 대찬성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프라스틱이 재료에 따라서는 부분적인 고온가공을 했을 때 그 경계면에 수축 크래킹이 생긴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당시는 미국에서 플라스틱 재료에 대한 기술이 매일같이 발전하며 그 정보가 유포되던 때였다. 럭키화학의 소위 전문가들이 전혀 아의 없이 한 조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와 기술력이 부족했던 탓으로 금성사의 전자 기술진들은 매번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일을 요즘 세상의 젊은 기술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는지. 다행히 이 사고는 라디오 수신기능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소비자들 중에서는 떨어진 문자판을 테이프로 캐비닛에 적당히 고정시켜 쓰는 사람들도 잇었다. 이후 다이얼판의 다리에 구멍을 뚫어 스프링을 끼우는 긴급조치를 해서 라디오 생산을 계속할 수 있었다.

- 본문 153~154쪽, '플라스틱 재료 사고의 연속'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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