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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96607700
· 쪽수 : 261쪽
· 출판일 : 2011-04-01
책 소개
목차
007 악마
253 아가야
저자소개
책속에서
“훈아. 아버지가 치즈케이크 사왔다.”
지수는 베이커리 종이 가방을 열어 보지 않아도, 심지어 받아들지 않아도, 안에 있는 것이 치즈케이크인지 알 수 있다. 하기야 아니면 또 어떤가? 그런 것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 집이다. 보통은 엄마가“아빠 오셨다. 나와서 인사해야지!”라고 하지만, 이 집은“아버지가 치즈케이크를 사왔다.”라고 하지 않는가? 무언가가 지나간 집이고, 무언가가 빈 집이고, 무언가가 꽉 찬 집이다.
역시 훈은 이 집에 어울리게 아빠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먹고 싶지 않아.”
초등학교 4학년짜리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저렇다. “나중에 먹을 게.”도 아니고, “지금 바빠.”도 아니고, “먹기 싫어.”도 아니다.
“먹고 싶지 않아.”다. 먹고 싶지 않아. 이 말은 시간의 조건이나 공간의 수용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영원히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네가 사온 것은 절대 먹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그랬다. 이기지 못하더라도 한 번은 눈을 부라리고 싶었다. 난 아버지가 없다. 누구에게나 있는 아버지가 없다.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난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없는 것이 맞다. 한 번도 나에게 그런 기운이 전달된 적이 없다. 누추한 어머
니만 있었고, 그 어머닌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친척들도, 친구들도, 학교 선생님도 그랬다.
나도 동정녀의 자식이다. 하지만 당신이 아버지라고 말하는 사람을 아버지로 두기 싫었다. 당신은 처음부터 좋았는가? 그것은 참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의 아들이 되는 것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눈물을 흘려야 할 만큼 힘겨운 책임이다. 나는 그 대신 혼자이길 원했다. 투항하기 싫었다. 당신은 총애 받는 장자이지만 나는 언제나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둘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