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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세계의 종교 > 이슬람교
· ISBN : 9788997023271
· 쪽수 : 422쪽
· 출판일 : 2014-11-05
책 소개
목차
어떤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1 목마름
2 길의 시작
3 바람
4 목소리
5 영혼과 육신
6 꿈
7 길의 중간
8 지니
9 페르시아에서 온 편지
10 다잘
11 지하드
12 길의 끝
용어 해설
리뷰
책속에서
벌써 사흘째 물을 한 방울도 못 마셨다. 낙타는 닷새째다. 낙타는 하루 이틀 더 버틸 수도 있겠지만 나는 불가능하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공포가 뒤엉켜 서로를 점점 증폭시킨다. … 우리는 천천히 고통스럽게 서쪽으로 움직인다. 서쪽이라니 우습지 않은가! 이렇게 기만적인 모래언덕의 바다에서 ‘서쪽’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나는 살아야겠다. 그래서 계속 나아간다. …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눈을 감을 수도 없다. 눈꺼풀을 움직일 때마다 눈동자를 뜨거운 쇠로 지지는 것 같다. 갈증과 열기. 참담한 적막. 메마른 적막에 귓속 혈관을 따라 피가 흐르는 소리와 낙타 숨소리가 도드라진다. 이 세상 마지막 소리인 것 같다. 낙타와 나는 지구상에 남은 최후의 생명체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 사막의 침묵 속에서 부드럽고 미지근한 바람이 모래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동안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가 뒤엉켰다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나는 그 이미지를 따라 기억의 여행을 계속한다.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은 그 시절을 집어삼킨 어두운 기억이다. 이후로 다시 사랑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메카에 묻혀 있다. 아무런 비문도 새기지 않은 묘비 하나가 그녀의 여정이 끝났으며, 동시에 나의 여정이 시작됐음을 알려 준다. 끝과 시작, 부름과 응답이 메카의 바위투성이 계곡에 공존한다.
나는 처음부터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정착촌을 만든다는 구상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이는 별 탈 없는 나라에 유럽 사회의 풀리지 않는 난제들을 이식하는 꼴이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귀향이 아니다. 유럽식 사고, 유럽식 목표에 따라 이곳을 고향으로 변모시키려 한 것이다. 이 성문 안에서 그들은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랍인들의 결연한 저항에서 어떤 모순도 찾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 한복판에 유대인의 고향을 만든다는 구상과 맞설 뿐이었다. 부당한 상황에 맞서 정당하게 싸우고 있는 쪽은 아랍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