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건강/취미 > 무예/무술
· ISBN : 9788997580972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13-09-01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 07
머리말 12
Ⅰ본국의 검예
1. 본국검예 ............................................................................. 27
검예(劍藝) | 본국검의 예(本國劍의 “藝”) | 본국의 정신을 찾아서
2. 본국의 역사 ......................................................................... 43
단군 이전의 역사 | 단군왕검을 찾아서 | “검(劍)”과 왕검(王儉)님금 | “군(君)”의 상징
3. 단군임금과 진시황제 .............................................................. 59
단군신화와 음양사상 | 웅녀와 사모무정 | 우리의 하나님·하늘님 | “해”의 노래 아리랑
4. 본국의 상징 ......................................................................... 92
환국과 배달국 | 조선(朝鮮)의 의미 | 대한민국 “한(韓)”의 의미 | 부여(夫餘)와 예맥(濊貊)의 상징 | 고구려(高句麗)와 발해(渤解)의 상징 | 신라(新羅)와 계림, 백제(百濟)의 상징 | 본국 새의 상징
5. 동양문화의 근원 “仙” ........................................................... 113
한글·한자로 보는 신선 | 선과 중국의 도교 | 선비의 몰락
6. 풍유도와 풍유선(風流道와 風流仙) ........................................... 126
본국의 풍류선(本國의 風流仙) | 선무심중경(仙武心中經)
7. 동양문명 “음양”과 “기”의 시원 ................................................ 137
태극·음양오행·기·역(太極·陰陽五行·氣·易) | 음양오행 | 기의 원리와 시원을 찾아서 | 동이족과 “역” | 단군신화의 풍백우운, “” | 복희팔괘 순서의 원리 | 음양의 한글 “건·곤·감·리” | “”는 “龍”이고 “易”이다 | 해태와 해치
8. 이무기 그리고 용갈이 ........................................................... 175
중화의 용과 황제 | 용·이무기 그리고 용갈이 | 이무기의 이름 “理無” | 용·이무기·용갈이의 전설
Ⅱ조선세법의 여명
1. 조선세법 복원의 목적 ........................................................... 188
2. 무신 치우천왕 .................................................................... 191
치우천왕과 달마대사
3. 조선세법과 중국의 동향 ........................................................ 197
조선세법의 연구과제 | 조선세법의 시대적 배경 | 예도 속의 상징 | 세법의 정의 | 조선세법과 맨손 무예
4. 아! 조선세법의 위대함이여 ..................................................... 218
5. 조선세법의 비밀을 찾아서 ...................................................... 221
조선세법의 문장 구조 | 조선세법의 구성분석 | 조선세법의 해독과정 | 조선세법의 그림 원리 | 조선세법의 방향성 원리 | 조선세법의 배열순서의 구성
6. 무비지 그림의 비밀 .............................................................. 237
짝으로 이루어진 그림 | 머리매듭의 비밀 | 얼굴의 시선과 진행 방향 | 관모의 의미 | 사모머리의 의미 | 허리띠의 비밀
Ⅲ조선세법의 기법
1. 거정세 - 평대세 - 퇴보군란 ................................................... 250
거정세 | 평대세 | 퇴보군란 | 대한검도회의 거정세 비교 | 김광석의 거정세·평대세·퇴보군란
2. 점검세 - 발초심사세 - 어거세(각) .......................................... 263
점검세 | 발초심사세 | 어거세 | 김광석의 점검세·발초심사세·어거세
3. 좌익세 - 직부송서세 - 역린자 ................................................ 268
좌익세 | 직부송서세 | 역린자 | 김광석의 좌익세·직부송서세·역린세 | 김강석 예도의 좌익세 비교
4. 표두세 - 태산압정세 ............................................................ 274
표두세 | 태산압정세 | 김광석의 표두세·태산압정세 | 김광석 예도의 표두격(세) 비교
5. 탄복세 - 창룡출수세 ........................................................... 281
탄복세 | 창룡출수세 | 대한검도회의 탄복세·창룡출수세 비교 | 김광석의 탄복세·창룡출수세 | 김광석 예도의 탄복세 비교
6. 과우세 - 작의세 ................................................................. 288
과우세 | 작의세 | 대한검도회 과우세 비교 | 김광석의 과우세·작의세
7. 요략세 - 장교분수세 - 찬격세 ............................................... 293
요략세 | 장교분수세 | 찬격세 | 김광석의 요략세·장교분수세·찬격세 | 김광석 예도의 요략세 비교
8. 어거세 - 충봉세 - 봉두세 ..................................................... 300
어거세 | 충봉세 | 봉두세 | 김광석의 어거세·충봉세·봉두세
9. 전기세 - 탁탑세 - 점검세 ..................................................... 304
전기세 | 탁탑세 | 점검세 | 김광석의 전기세·탁탑세·점검세
10. 간수세 - 호준세 ............................................................... 312
간수세 | 호준세 | 김광석의 간수세·호준세
11. 은망세 ............................................................................ 318
대한검도회 은망세 비교 | 김광석의 은망세 비교 | 김광석 예도의 은망세 비교(2회)
12. 찬격세 - 백원출동세 - 요격세 ............................................. 328
찬격세 | 백원출동세 | 요격세 | 김광석의 찬격세·백원출동세·요격세 | 김광석 예도의 찬격세 비교
13. 요격세 - 참사세 - 역린세 ................................................... 334
요격세 | 참사세 | 역린세 | 대한검도회 요격세 비교 | 김광석의 요격세·참사세·역린세
14. 전시세 - 편섬세 - 거정세(각) .............................................. 340
전시세 | 편섬세 | 거정세 | 대한검도회 전시세 비교 | 김광석의 전시세·편섬세·거정세 | 김광석 예도의 전시세 비교
15. 우익세 - 안자세 - 요격 ...................................................... 346
우익세 | 안자세 | 요격세 | 김광석의 우익세·안자세·요격세 | 김광석 예도의 우익세
16. 게격세 - 호좌세 ................................................................ 351
게격세 | 호좌세 | 김광석의 게격세·호좌세·충세
17. 좌협세 - 수두세 - 요격세 ................................................... 354
좌협세 | 수두세 | 요격(腰擊) | 김광석의 좌협세·수두세·요격세 | 김광석 예도의 좌협세·수두세(4회) 비교
18. 과좌세 - 제수세 ............................................................... 360
과좌세 | 제수세 | 대한검도회 과좌세 비교 | 김광석의 과좌세·제수세 비교
19. 흔격세 - 조천세 - 탄복세 ................................................... 366
흔격세 | 조천세 | 탄복세 | 김광석의 흔격세·조천세·탄복세 | 김광석 예도의 흔격세 비교
20. 역린세 - 탐해세 - 좌익세 ................................................... 371
역린세 | 탐해세 | 좌익세 | 김광석의 역린세·탐해세·좌익세 | 김광석 예도의 역린세 비교
21. 염시세 - 발사세 - 요격세 ................................................... 376
염시세 | 발사세 | 요격세 | 김광석의 염시세·발사세·요격세
22. 우협세 - 분충세 - 거정세 ................................................... 380
우협세 | 분충세 | 거정세 | 대한검도회 우협세 비교 | 김광석의 우협세·분충세·거정세
23. 봉두세 - 백사롱풍세 - 게격세 ............................................. 385
봉두세 | 백사롱풍세 | 게격세 | 김광석의 봉두세·백사롱풍세·게격세 | 김광석 예도의 봉두세·백사롱풍세 비교
24. 횡충세 - 요략세 ............................................................... 391
횡충세 | 요략세 | 김광석의 횡충세·수세·요략세
25. 태아도타세 ....................................................................... 394
김광석의 태아도타세
26. 여선참사세 ....................................................................... 397
김광석의 여선참사세
27. 양각조천세 ....................................................................... 401
김광석의 양각조천세
28. 금강보운세 ....................................................................... 405
김광석의 금강보운세
Ⅳ 검결이 글자, 그림은 검결 413
Ⅴ 검결은 단편의 시, 장편의 서사시 445
Ⅵ 劍法의 技法分類(검법의 기법분류) 465
Ⅶ 결어 487
편집후기 ............................................................................. 492
부록 (예도, 예도총도, 무비지) ................................................. 495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머리말]
본국의 새로운 무예정신을 찾아서
우리 모두는 단군의 자손이며 본국의 후예들이다. 본국은 시조 단군이 세우신 고조선을 지칭하는 한민족 동이족의 나라이다. 최근 중국 요녕성에서 홍산문화의 발굴과 1세기 전 동이문자인 갑골문의 발굴로, 상고시대의 전설이 역사의 속의 실존했던 시대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것은 본국의 한민족에게 커다란 비전으로 큰 의미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말달리고 큰 활 쏘며 호령했던 영토가, 동북아시아에서부터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대제국의 역사였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전설이 아닌 실체적인 강역으로 복원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껏 수많은 중국의 사서를 기준으로 배워왔던 역사와 사학계에서 정리하여 학교에서 가르친 왜소하고 나약한 역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위대한 우리의 역사가 왜 사서에서 지워져 버렸단 말인가? 여기에는 필시 많은 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도 본국은 중국의 거대한 대륙에서 밀려나 반도의 땅덩어리 끝자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그 모습이 우리 한민족이 처한 현재의 지정학적 운명이다. 그럼에도 본국은 아직도 하나 되지 못하고 둘이 서로 대치하고 있다. 그리고 본국을 둘러싼 강대국들은 한반도의 상황을 호시탐탐 저울질하고 있다. 본국의 역사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는 중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대내외의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물질적 풍요에 빠져 있고, 정치권은 당리에 빠져 한민족이 처한 위험과 본국의 시대적 소명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본국의 영토가 축소되었다면, 다시 회복하여 확장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 해답은 상고의 아픈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본국인은 남북통일 이후 본국을 둘러싼 강대국의 틈에서 미래의 자주적 역사를 세우고, 선조들의 원대한 꿈과 대륙을 호령했던 호연지기를 계승해 나아갈 만반의 준비를 하여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해선 본국의 역사를 찾는 노력을 각 분야에서 모아야 한다. 그러나 재야와 사학계는 양분되어 아직도 갑론을박을 하면서,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정론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본국의 미래인 청소년의 역사교육은 오히려 선택과목으로 밀려, 상급학교에서는 아예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본국검예>는 현재의 교육여건에서 할 수 없는 본국의 역사와 철학을 본국인들에게 일깨워 줄 것이다.
본국은 수많은 외침에 의해 영토가 점차 좁혀졌다. 그리고 승자에 의해 역사는 왜곡 당해왔다. 북방과 중원에서 밀려난 본국은, 한반도에서 고구려·백제·신라·가야로 사국이 서로 대립하던 중 동남쪽에 위치한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통일을 이루었다. 그 결과 아쉽게도 고구려의 넓은 땅을 잃어버렸고, 한민족의 상고역사를 많은 부분 지워버렸으며, 불교를 국교로 삼아 불교적 시각에서 사서를 기록하였다. 그 후 고려는 불교의 융성과 함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으나 불교의 타락과 함께 막을 내렸다. 처음부터 중국에 사대하면서 출발한 조선은 고려왕실과 선조의 기록을 조작하고, 중화와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고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사대를 심화시켰다. 조선의 왕들은 유학을 국시로 하여 전국에 향교를 세워 본국의 신화와 북방의 역사를 등한시하고, 이미 토착화된 천 년 불교의 전통마저 철저히 배척한 결과, 본국의 신화와 역사가 말살되었다. 그 이후 역사는 또 어떠했는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에 이은 일제 침략 등 계속된 전란으로 본국의 역사는 분서당하고 마침내 일제에 와서 왜곡 조작된 교육이 강제되었으며, 마침내 우리의 머리에 식민의 뿌리를 심어 놓았다.
이러한 역사의 질곡 속에 과연 본국의 역사가 정사에서 온전히 살아남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나마 쓰러져 가는 본국의 역사는 민담과 노래와 소리로 민초들이 지키고 있었고, 숨겨야 했던 한민족의 찬란한 역사는 은유적으로 신화와 문학에 담겨 전해졌다. 다행히 정체성 있는 가문에 숨겨져 내려온 상고사의 기록들이 세상에 나오다 보니, 일제에 의해 영향을 받은 사학자는 자신이 배운 논리로 재야의 사서들과 연구를 위서와 픽션으로 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 사학계의 풍토이다. 이에 반해 중화와 일본은 야사일지라도 정체성과 관련성이 있으면 확대 재생산하여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것을 국가 정책으로 삼아 주변국의 비판을 무릅쓰고 지속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화와 일본이 영토를 확장시킨 교묘한 술책이자 원동력이고, 본국 한민족의 영토가 점차 작은 땅덩어리로 축소된 중요한 요인이 된 것이다. 신화와 역사가 없는 민족은 위대한 족적을 남길 수 없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도 없으며, 종국에는 승자의 역사에 굴종하면서 나라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국가는 영토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신화와 종교, 문화가 바로 그 나라 그 민족이며, 대외적으로 영향력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근본적 초석인 것이다. 돌이켜 보면 잃어버린 상고의 역사와 영토가 축소된 데에는 무인의 정신을 버린 문인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문인들은 중화사상을 숭상하고 계승하는 데 집착했을 뿐, 한민족의 홍익인간 정신에 입각한 본국의 철학과 배달문화를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아가지 못했다. 그나마 한민족의 삶 속에서 민초들이 지켜온 본국의 역사와 철학을 제대로 지켜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폐습이 과연 사라졌다고 보는가? 과연 한민족의 철학과 사상을 바탕으로 한 “선(仙)” 사상과 “풍류도”가 오늘날 토종철학으로 계승되고 있는가? 통일을 이루고 한민족을 이끌어 나갈 자생철학은 준비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런 철학과 사상이 없이 살아온 것인가? 혹시 지금도 서구를 향한 신사대주의 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도 지성을 대표한다는 철학과 과학은 서구철학과 서양과학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무인들과 문인들은 이 땅과 본국의 역사에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스스로 반성하고 과오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옥에도 흠결은 있다. 그러나 문인들은 옥의 가치보다, 흠을 들추어 종국에는 옥을 쪼개는 우를 범하곤 했다. 이로 인해 많은 사상가와 현인의 자질을 가진 인물들이 유성처럼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반대편에 있으면 옥석을 가리지 않고 인물과 그들의 사상을 무조건 말살시켜왔다. 이러한 풍토가 넓게 보면 한민족이 큰 인물을 길러내지 못한 원인이다. 상류층을 형성한 문인들이 사대를 추종한 결과, 자연히 그를 따르는 문도들도 사대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어렵게 민초들이 지켜온 본국의 문화를 미신과 하층문화로 취급하면서 민중에 남아있던 정체성도 점차 사라져 갔다. 이러한 풍조가 수백 년 뿌리 깊게 형성되었다. 선각자가 아무리 민족혼을 주장해도 기득권에 의해 반사회적 부류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 한민족에게는 천지인의 자생철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인물과 종교를 이 땅에서 배출하지 못하고, 그 빈자리를 외래 종교와 사상이 차지하여 본국의 주체성은 약화되었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민족의 심성이 정체성으로 형성될 수 있도록 문인 지성인들은 그 방향을 제시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것이 수천 년 굴종의 왜곡된 역사를 지우고 미래의 후손들이 중심을 잡아 이 땅에서 본국이 다시금 영광된 역사를 만들어 가는 바탕을 세울 것이다.
<조선세법>은 동양 삼국이 공히 무의 경전으로 받아들여 중국의 소림무술과 태극권, 무당무술 등에서도 수련하고 있다. 또한 <본국검법>은 일본의 격검술에 절대적 영향을 준 무예서이다. 무예의 한류는 이미 오랜 전통이 되어 있음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무술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중화는 본국의 선조들이 창제한 <조선세법>과 <본국검법>을 중화의 검법으로 왜곡시키기 위해서 또 다른 동북공정을 하고 있다. 이들 두 무예서는 단순히 검의 기술만을 기록한 단순한 무예서가 아니다. 그 검법의 동작 속에는 한민족의 잃어버린 위대한 신화와 상고시대 역사가 검결(劍訣)과 더불어 숨겨져 있다. 이들 무예서는 선조들의 원대한 기상과 상무호국정신을 느낄 수 있는 역사의 보고이다. 그러므로 두 무경은 그동안 한민족이 잃어버린 조상의 얼과 역사를 되찾는 본국인 모두의 나침판이다. 방향을 잃고 헤매는 본국인들에게 상고시대에 현재의 우리의 본 모습을 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있다. 우리 본국인은 <조선세법>과 <본국검법>을 배우고 익혀, 이 땅의 잃어버린 본국의 역사와 민족정기의 무예정신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본인이 편저한 <본국검예>는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다. 본국의 영토와 얼을 지키고자 목숨을 초개처럼 버렸던 선조들과, 전통무예를 찾기 위해 온갖 차별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무인들과, 하나 된 조국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지금도 각 분야에서 애쓰고 있는 진정한 본국인들 모두의 것이다.
<조선세법>과 <본국검법>을 연구한 것은 오로지 본국을 되찾고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시작했다. 국내의 대표적인 무예단체인 대한검도회와 십팔기 그리고 24반 무예, 경당 등에서도 <조선세법>과 <본국검법>을 부분적으로 해석하여 지도하고 있다. 하지만 각 무예단체별로 검법의 동작이 다르고, 그 동작들 또한 <무예도보통지>와 <무비지>의 내용과 그림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차이를 고증하기 위해 <무예도보통지>의 원문과 그림을 비교해가며 세세히 살펴본 결과 모든 단체가 검증받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원문에 가까운 해석을 통해 옥석을 가려보려는 취지에서 천학비재를 무릅쓰고 감히 연구를 시작하였다.
특히 <조선세법>은 동양 삼국이 해독하지 못한 무예계의 과제로서, 국내외 어느 단체도 정확히 그 기법을 해독하여 발표하지 못한 상태이다. 막상 처음 무경을 해독해보자고 도전했지만 사실 언제 완성이 될지, 과연 해낼 수는 있을지 무척 막막했다. 그러나 10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 <조선세법>과 <본국검법>의 숨겨진 비밀을 해독하여, 위대한 선조들의 무혼과 잃어버린 단군의 의미와 상고의 철학과 한민족의 종교와 사상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이를 통하여 민족의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본국검예>는 <조선세법>과 <본국검법>을 바탕으로 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그동안 사명감을 가지고 함께 도움을 준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음은 이 책이 발간하기까지 그동안 수고와 협조를 아끼지 않은 분들께 감사를 드리는 자리이다.
먼저 이운성 대한검법 부회장은 이 일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뜻깊은 일이라며 처음부터 함께하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원고구성 작업을 수없이 정리하였으며, 그림 복원을 위해 손수 밤새워 작업하였다. 그리고 늘 곁에서 함께하였다. 또한 단체의 단결과 화합을 위해 낮은 곳에서 수고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첫발을 함께한 이운성 부회장에게 이 자리를 빌려 제일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부끄러운 사대주의와 식민잔재의 뿌리를 뽑기 위한 바탕으로 정신문화를 기록하고자 많은 책을 저술하고 마침내, 이 땅에 토종철학인 ‘소리철학’을 세우고 계신 도농(道農) 박정진(朴正鎭) 교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필자는 “소리철학” 덕분에 이 책의 전반부를 쓸 수 있었다. 또한 박정진 교수는 ‘무맥(武脈)’이 신문 연재의 계기로 한국과 중국의 무예계의 최고수를 만나 그들의 무예를 직접 보고 확인한 안목을 통해 동양무술의 전반적인 흐름과 우리 무예의 근원을 찾아 그 비밀이 바로 <조선세법>의 “검결”에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필자는 박교수의 “비결을 숨긴 칼의 노래, 검결”이란 글을 통해 <조선세법>의 무경을 해석하는 데 큰 가르침을 얻었다.
또한 박정진 교수의 소개로 북경대학 출신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박사를 알게 되었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무경을 통해 원대한 본국인의 무예정신을 회복하여 세계만방에 전파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새로운 이름의 <본국검예>로 지어준 한편 이를 기념하여 <본국검예>라는 책 제호까지 지어 붓글씨로 기꺼이 써주신 깊은 뜻에 감사를 드린다. “지금은 창검을 들고 군웅할거하던 선천 상극시대를 지나 유리광명의 태평성대로 가는 ‘지천태’ 운의 상생시대로 검법과 검도 역시 무예의 일종인 ‘검예’로 방향을 바꾸어 시대조류에 맞게 혁신해야 한다”는 귀한 가르침을 주셨다. 마치 중국의 ‘서법’과 일본의 ‘서도’와 달리 1945년 해방공간으로부터 남북이 공통으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한국의 ‘서예’의 경우(‘서예’라는 새로운 명칭은 그의 서예 스승 소전 손재형 선생에 의해 1945년 주창되었다)와 같이, 방법에 치우친 중국의 ‘검법’이나 신도적 의미가 강한 일본의 ‘검도’와는 차별화한 ‘검의 예술’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브랜드로서 ‘검예’로 할 것을 사례를 들어 적극 권유하였으며, “본국은 모든 나라, 이 세계의 뿌리이다”라는 ‘본국’에 대한 개념정립과 전반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정성껏 채워주셨다.
특히 도농 선생과 라석 선생, 두 분의 학문에 얽힌 인연과 일화는 마치 신라 시대 불교계의 원효와 의상을 연상케 한다. 당나라 유학길에 함께 올랐던 것과 중도에 잠시 다른 길을 갔던 것과 같이, 두 분은 중년에 국교도 되지 않은 중공 대륙의 문을 두드려 북경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하기로 약속하고 1991년 함께 수속을 밟았으나, 도중에 도농 선생은 국내에 남아 많은 저술활동과 신문에 “무맥”과 “차맥”을 연재하고 “예술인류학”과 “소리철학”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한편 라석 선생은 중국 개방 후 제1호 유학생으로 ‘심물론철학’과 ‘위진미학’을 전공하고 <조론>과 <시중역>을 연구한 뒤 국내에 들어와 새로운 예술운동으로 ‘물파주의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공교롭게도 두 분이 각자 추구하는 기철학적 방향과 내용이 서로 공통됨을 확인하고, 지금은 원대한 철학적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 변함없는 지기로 함께 손잡고 나아가고 있다. 두 분 모두 시집을 여러 권 낸 중진 시인이기도 하여 아름다운 모습을 대할 때마다 만년의 ‘한산과 습득’의 면모를 연상케 한다. 이 책은 두 분의 격려와 채찍으로 이루어졌다. 편저자에게는 더없는 행운이자 장차 <본국검예>의 새로운 가능성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두 분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조길현 수석제자는 평생을 전통검도를 일으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한국검도를 수련하였다. 편저자가 무경을 연구하면서 미완성의 무예 동작임에도 수차례 수정해 익히고 도장의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따라와 준 모범적인 제자이다. 그 누구보다도 나의 <본국검예>의 기예를 가장 많이 이해하고 잘 구사한다. 향후 많은 지도자를 배출하는 데 크게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임수원 박사는 서울대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한 자로서 집필 시 문화의 중요성과 책의 가치를 제일 먼저 알아보았다. 무예의 정신과 이론이 부재한 한국의 무림과 체육사에 뿌리를 새로 세우는 일이라며, 앞장서서 수년간 직접 무예를 전수받고 첫 승당을 하여 승품을 받은 수제자이다. 책을 꼼꼼히 읽어가면서 문맥과 동작의 내용이 일치하는지 일일이 비교하면서 어려운 교정을 함께하였다. 누구보다도 큰 사명감과 정의감이 투철한 문무겸전의 무인이다. 무예서의 내용과 동작을 터득하고 조선세법이 공수로 구성된 것을 알게 되어, 편저자가 <조선세법>에서 수수세를 찾고 완성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나에게는 외우(畏友)같이 소중한 사람이다. 앞으로 <본국검예>를 세계에 알리고, 국내외에 학술적 학술활동에 있어서 큰 역할을 기대하며, 그간 노고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임정민 감사는 제3자의 시각에서 재현된 동작에 반론을 제기하여 <본국검예>를 꼼꼼히 정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청학동 김봉곤 훈장은 먼 길 마다 않고 문무겸전을 위해 전통검법수련에 열성과 열의를 보여준 데 감사를 드린다. 경당과 24반무예총연맹의 임종상 부총재는 전통무예계의 거물임에도 불구하고 <본국검예>의 기법을 보고 제일 먼저 수련을 청한 진정한 무인이다. 그리고 검법의 동작을 담기 위해 밤새 사진촬영을 해주셨다. 크게 감사한다.
전통무예의 이름 하나에 매료되어 평생 무인의 길을 함께 걷다가 여러 사정으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미래를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도장을 접어야 했던 김상호, 이양환, 김기훈, 이석숭, 목영자, 이상용, 박준성, 이자인, 박철성 등 제위의 관장과 디플로머시 임덕규 회장, 정진석 선배, 강준석 부총재, 정승원, 송영기, 임인홍, 이원식 협회 이사, 김수회, 김덕원, 박득승, 김주호, 서혜정, 임종덕, 임정표, 최훈, 심두환, 송암스님의 성원과 마무리 원고를 도와준 최승, 이호연께도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3년 전 미완의 책을 읽고도 선뜻 출판에 보태라며 도움을 준 ㈜상보의 김상근 대표께 감사의 마음과 출간이 늦어진 것에 송구함을 말씀 드린다. 또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이정률 대표와 이대복, 김완중 변호사 그리고 원고를 보고 선뜻 출판에 응해주신 행복출판사 권선복 사장을 비롯하여 그간 수고해준 최새롬 팀장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돌아가신 아버님과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주신 나의 사랑하는 어머님, 묵묵히 지켜봐주고 용기를 준 가족에게 이 책을 바친다. 비록 미비한 점이 많지만 앞으로 보완해 나갈 것을 약속하며, 강호의 무사는 물론 심신을 단련하는 사람이라면 국내외 누구나 이 책을 읽고 그중 한 명이라도 우리 전통 무예정신을 깨달아 실천하는 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편저자로서 더없는 보람과 기쁨이 될 것이다. 아울러 머지않아 조국통일을 이룰 그 날을 대비하여 ‘본국’의 새로운 ‘검예’가 21세기 민족문화중흥에 일조할 수 있기를 독자들과 더불어 간절히 기대하고 희망하고 기대한다.
2013. 8. 15
임 성 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