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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뇌의 무도

오뇌의 무도

김억 (지은이)
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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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뇌의 무도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오뇌의 무도 
· 분류 : 전자책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35600111
· 출판일 : 2018-11-26

목차

판권
오뇌의 무도
서문
『오뇌의 무도』의 머리에
서(序)
『오뇌의 무도』를 위하여
『오뇌의 무도』의 머리에-변영로
역자의 인사 한마디
베를렌의 시
고요히도, 애닯게
가을의 노래
흰 달
피아노
나무 그림자
하늘은 지붕에
검고 끝없는 잠은
작시론(作詩論) (Art poetique)
도시(都市)에 내리는 비
바람
끝없는 권태의
늘 꾸는 꿈
각성(角聲)
L'heure de Berger
Gaspard hauser Sings
아아 설어라
쇠퇴(衰頹)
지나간 옛날
아낙네에게
갈망(渴望)
권태(倦怠)
녹색(綠色)
구르몽의 시
가을의 따님
황혼(黃昏)
전원사계(田園四季)
메테르링크의 연극(演劇)
가을의 노래2
폭풍우(暴風雨)의 장미꽃
흰 눈
낙엽(落葉)
과수원(果樹園)
물방아
싸멘의 시
반주(伴奏)
수상음악(水上音樂)
나는 꿈꾸노라
희미하게 밝음은 떠돌며
가을
지반소요(池畔逍遙)
황혼(黃昏) 첫째
황혼(黃昏) 둘째
황혼(黃昏) 셋째
소시(小市)의 야경(夜景)
보를레르의 시
죽음의 즐거움
파종(破鐘)
달의 비애(悲哀)
구적(仇敵)
유령(幽靈)
가을의 노래3
비통(悲痛)의 연금술(煉金術)
예이츠의 시

늙은이
버들동산
낙엽(落葉)2
실연(失戀)
구우(舊友)를 잊지 말아라
술 노래
포르의 시
결혼식(結婚式) 전(前)
이별(離別)
인생(人生)
저마다
두 맘
고운 노래
오뇌(懊惱)의 무도(舞蹈)
그나마 있는가 없는가
길가에서
해탈(解脫)
십일월(十一月)의 전율(戰慄)
오후(午後)의 달
가을은 또다시 와서
내 몸을 비(比)하려노라
가을2
황색(黃色)의 월광(月光)
소송가(小頌歌)
앓는 장미(薔薇)꽃
파리의 노래
여승(女僧)과 같이 희멀금하여
월하(月下)의 표박(漂泊)
오늘 밤도
가을의 애달픈 적성(笛聲)
그저롭지 아니한 설움
적막(寂寞)

가을 저녁의 여명(黎明)
심원(心願)
가을의 노래4
유랑(流浪) 미녀(美女)의 예언(豫言)
소곡(小曲)

저자소개

김억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6년 11월 30일 평안북도 곽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희권(金熙權)이고 호는 안서(岸曙)다. 필명으로 ‘안서(岸曙)’, ‘안서생(岸曙生)’, 안서의 머리글자를 딴 ‘A. S.’, 에스페란토 이름인 ‘Verda E. Kim’ 등이 있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문 수업을 받았으며 1907년 정주 오산학교에서 신학문을 수학했다. 오산학교를 졸업한 후, 1913년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문과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1914년 부친의 사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으며 1916년 모교인 오산학교에 부임했다. 1924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학예부 기자, 문예부장으로 활동했으며 1930년대 ≪매일신보≫ 기자를 거쳐 1930년대 후반부터 해방 직후까지 경성 중앙방송국에 근무했다. 1941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문화위원, 조선문인협회 간사,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 등을 지내며 친일 활동을 했다. 해방 후, 출판사인 수선사(首善社)의 주간을 맡았고 1946년부터 한국 전쟁 때까지 육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강의했다. 한국 전쟁 당시 서울에서 납북되어 북한 국영출판사의 교정원으로 배치되었다. 1956년 납북 인사들로 구성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으로 임명되었다가 평안북도 철산의 협동농장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김억은 1914년 일본 유학생들이 발간한 잡지인 ≪학지광≫에 <이별>을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 작품으로 <야반>, <나의 적은 새야>, <내의 가슴>, <밤과 나> 등이 있다. 이후 개인적 감정을 중시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개성적 리듬을 강조한 시를 통해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한편, 1916년 9월 ≪학지광≫에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베를렌의 시를 번역한 <내 가?에 내리는 비>를 발표한 이래, 꾸준히 서구의 시와 시론을 번역·발표했다. 특히, 1918년 9월 창간된 ≪태서문예신보≫에 주로 프랑스 상징주의 시와 시론을 번역해 소개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에 상징주의 시풍을 정착시켰다. 1920년 ≪폐허≫ 동인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해 ≪개벽≫, ≪동광≫, ≪영대≫, ≪조선문단≫, ≪학생계≫ 등에 참여했다. 1925년 이후, 민요시 운동의 중심에 서서 한국적 정서와 가락을 담은 민요시 창작에 주력했으며 한시 번역에도 힘을 쏟았다. 김억은 한국 현대시 최초의 창작 시집 ≪해파리의 노래≫(1923)를 위시해 ≪봄의 노래≫(1925), ≪금모래≫(1925), ≪안서 시집≫(1929), ≪지새는 밤≫(1930), ≪안서 시초≫(1941), ≪먼동이 틀 제≫(1947), ≪민요 시집≫(1948) 등을 상재했다. 그리고 베를렌, 구르몽, 보들레르, 예이츠 등의 시가 수록된 최초의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1921)를 필두로, 타고르의 시를 번역한 ≪기탄자리≫(1923), ≪원정≫(1924), ≪신월≫(1924), 아서 시먼스(Arthur Symons)의 시를 번역한 ≪잃어진 진주≫(1924), 한시를 번역한 ≪망양초≫(1934), ≪동심초≫(1943), ≪꽃다발≫(1944), ≪야광주≫(1944), ≪지나 명시선≫(1944) 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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