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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0350173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17-09-15
책 소개
목차
1부 그대여 여기는 지금 어디쯤인가
그대여
별
당신
사랑
들풀
피는 물보다 진하다
눈물
비
파경
달에게 1
시목동矢木洞 생각
목련사 앞 잔디밭
술 깬 아침
어둠에게
동물농장
물새에게
2부 진달래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의인만 홀로 살아 남아
진달래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산성山城이 바라보이는 창가에서
중간점검
산에 언덕에
솔
불곡不哭
친구
시시한 싸움
Amore 주막
친구와 함께
자갈치 선창
산성山城 마루
원죄
3부 눈물을 흘리지 말자
밤의 소리
절규
조국
등굣길
봄눈
승리
4월 30일
5·18 아침의 기원
5월의 다짐
우산은 소용없다
끝없는 제물
눈물을 흘리지 말자
4부 산문, 유서
삶의 진실과 성실에 대하여
현실과 이상, 순수와 참여
로자와 레닌을 보며
『학교는 죽었다』를 읽고
유서
남기는말씀
발문
초판본 발문 | 장재인에 관한추억(신현수)
초판본 편집후기 | 한기호
개정판 발문 | 좋은 세상을 열기 위한 자기 점검과 다짐 - 장재인의 작품 세계(백우선)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대여
오늘도 가고 어제도 갔다
시간만 가고 마음은 남는 자리
내일을 캐면 토라지는
그대여 여기는 지금 어디쯤인가
보는 이 없어 아직은 수줍은
핼쓱해진 뜻 언저리
어이해서 무쇠 같던 몸
안개처럼 녹아내리고
오늘도 생가지 하나
거덜이 나지만 아픔을 잃어
저어하는 고목
그대여 나는 이제 누구인가
대답하라
지금 여긴
마른 바람이 종일 덜컹거린다
도시를 휘감은 산줄기
거대한 숯덩이로 꺼지며
죽는 연기를 뿜어대고
무덤 같은 살덩이들이
감히 나를
샛길 모르는 천치 바보라고
빈정대다 잠이 들었다
캄캄해질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어두움에 빛나며
나는 묻노니
그대여 대답하라
별
별을 알기 전
가득함을 알았지만
별을 알고 나서
빈 마음을 알았습니다
별을 알기 전
신념의 풍요를 알았지만
별을 알고 나서
풍요는 갈증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던가 별이 들어온 날
가슴은 별로 가득하였지만
그때부터 한구석 빈 마음임을
깨달았습니다
별을 알기 전
고요인 줄 알았던 것은
별을 알고 나서
그것이 소용돌이임을 알았습니다
마침내 가슴에는 별을 향하여
길이 생겼습니다
유서
세상을 붙잡으려다 처자를 버리고 이제는 처자를 부여안기 위하여 세상을 버리려 합니다. 불행한 사람의 삶에 뛰어들어 고생만 하던 고마운 아내, 아들의 뒤를 따라 다시 강으로 뛰어들어갔다는 아내처럼 저도 처자를 찾아 떠나려 합니다. 이것은 사고 현장에 도착한 이래 강물을 바라보며 제 마음에 살아오는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행여 살아남아 보람된 일을 해야 한다는 생의 의무감을 생각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지만 저희 세 식구가 지금 쓰라린 사랑의 메시지보다 더 생생한 경종이 어디에 있겠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일깨우고자 하는 생을 초월한 선택이 어찌 소극적인 결심일 수 있겠습니까?
처자의 삶의 자리를 차분히 정리하여 복받치는 설움으로 그들의 냄새를 흠뻑 마시며 남은 분들에게 짐을 덜어 드리고 싶었지만 저의 자리마저 그대로 남기게 되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처자를 실어간 섬강의 물결을 바라보며 제가 기원한 것은 처자를 다시 만나고자 하는 소망이 동요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러한 결심 이후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유대가 저를 괴롭힙니다.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 양가의 아우들, 친척 어른들, 부모 이상으로 저의 삶을 지탱하여 주시던 서울 인헌고둥학교 류길상 교감 선생님, 덕수상고 이종성 교무주임 선생님,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이 정든 벗들, 친지들, 사랑스런 제자들. 저희 학급 학생들을 이종성 교무주임 선생님께 부탁 드립니다. 그동안 저의 수업을 대신하여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부디 처자를 따라간 저의 죽음을 애통해 하지 말 것을 이분들에게 당부 드리며 오히려 세 식구의 하늘나라에서의 다시는 헤어짐 없는 만남과 행복을 기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신 분들은 제가 없어도 능히 견디실 수 있지만 저희 세 사람은 함께 있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략)
저의 죽음으로 인하여 야기될지도 모르는 책임문제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죽음은 저의 간곡한 소망이었으므로 어느 누구라도 이에 대하여 문책하는 것은 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며, 특히 여주군 관계자를 문책하는 일이 없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사랑스런 아내와 자랑스런 아들을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더 없이 평온하고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