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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사진/그림 에세이
· ISBN : 9791160407471
· 쪽수 : 312쪽
책 소개
목차
1라운드 어느 서늘한 연애담
: 지리산 같은 등짝에 반하다
그냥 살던 대로 살자
요즘 고민이 있어
노즈워크
이상한 나라의 반지하
천하제일 곰팡대전
오, 나의 곰팡이님
방해흐즈므르
흰 선만 밟으면
날 보고 있었다
신혼집으로 쓰긴 좀 그렇죠
산책하자 시바
도발인가
그냥 보였다, 너의 등이
2라운드 기묘한 동거 시절
: 너희, 결혼은 안 하니?
조물주 위에 건물주
그게 그러니까 그거였나
도대체 집에 언제 와
넌 정리해 난 수집할 테니
설거지는 이렇게 하는 거야
그리마의 운명
가서 물 좀 떠 와
이뻤는데 기분 탓인가
음식물 쓰레기를 수집하는 이유
강원도발 북서풍 싸대기
나와라 시바
이거 보고 마저 싸우자
아직 숙녀라구욧
애교 부리지 마라
너희 결혼은 안 하니
결혼하면 좋아요?
죽었냐 너
하수구에 뒤엉킨 머리카락
자가증식
청소에 진심이다
운동 시바
프린세스 메이커처럼
3라운드 결혼이라니, 결혼이라니!
: 나를 믿는 너를 믿어
간도 빼줄 수 있어
오줌도 귀여워
일단 오늘은 아니야
같이 눕자
있는 듯 없는 듯 늘 있어
어느 날은 부담, 어느 날은 사랑
주어 실종 사건
누가 내 머리 먹었냐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내가 점점 희미해진다
일하기 싫어병
눈 뜨면 돈 쓰고 싶어
너 좋다는 여자가 생긴다면
난 그게 좋아
잘해줘 봐야
길들여지는 건 나였다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
나를 믿는 너를 믿어
에필로그 오래오래 함께, 아낌없이 행복하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편히 쉴 생각으로 판다네 집을 방문했던 나는 내심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 갈 걸. 다 봐버린 이상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상황. 하는 수 없지. 뭐라도 하자. “판다야, 저거….” 곰팡이를 가르키며 판다를 쳐다보는데, 그의 눈가에서는 뚝 뚝, 후드드득.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가뜩이나 처진 둥근 어깨를 더 축 늘어뜨린 채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펑펑 흐르는 눈물을 곰 발바닥 같은 두꺼운 손으로 닦아 티셔츠에 비비적대며 넓은 등을 떨고 있는 모습이라니. 만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게 울기’ 콘테스트가 열린다면 1등은 바로 이 순간의 판다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지금 나, 용기가 막 솟아나는 것 같다. 곰팡이는 이제 무섭지 않다.
노루와 토끼가 뛰어다닐 것 같은 등짝을 가진 너는 대체로 조용했지만 늘 웃는 얼굴에 나긋나긋한 인상이었다. 출근하면 늘 아침 인사를 빼먹지 않고 팀원들 모두에게 하나하나 눈인사를 하던 그 모습. 언제부터였을까, 인사의 순서가 내게 돌아올 때를 기다리게 됐다. 그리고 네가 인사를 건네는 순간에 의식적으로 살짝 웃어 보였다. 지금 나 예쁘게 웃었을까? 약간 긴장한 채로. 일을 하느라 모니터를 쳐다보다 눈이 뽑힐 것처럼 피곤할 땐 너의 지리산 같은 등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편안해졌다. 작은 일에도 크게 기뻐하고 크게 놀라는 갈대 같은 심성의 나와는 다르게, 깊고 느린 물줄기가 흐르는 강처럼 온순하고 느린 표정과 말투를 가진 너. 그 잔잔함이 신기하고 부러워 관찰하곤 했다. 모든 평화가 다 저 등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비교적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에 다녔던 나. 그 화목한 청춘 솔로 집단에서 어느 날 기혼의 신호탄을 발사하는 첫 타자가 나왔다. 재직 3개월 차에 직원들 이름도 헷갈려 섞어 부르며 뻘쭘하게 과자와 청첩장을 돌리는 스물아홉의 나였다. 동료 직원들부터 팀장님과 대표님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같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결혼하면 좋아요?” 그래서 난 이렇게 답했다. “똑같아서 아직 모르겠어요.” 진짜다. 분명 결혼은 인생의 큰 분기점일 텐데, 나는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저녁 때까지 같은 사무실에서 복닥거린 4년, 같은 건물 위아래 층에서 각각 자취하던 1년, 함께 전세금을 모아 동거를 하며 각자의 회사를 출퇴근하던 2년. 긴 시간을 함께 팀처럼 움직였지만 돈 관리도, 아침을 챙겨먹는 일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각자 해와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