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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국외 BL
· ISBN : 9791160858099
· 쪽수 : 184쪽
책 소개
목차
진짜 같은 망상 43
가족이라는 이름의 착각 50
사랑의 패러독스 131
후기 180
리뷰
책속에서
문득 정신이 들자 시계는 오후 11시를 훌쩍 넘어 버렸다.
이제 남은 건 영어 과제 프린트뿐.
‘먼저 목욕하고 올까.’
기지개를 쭉 켠 나오토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뭐든 빠르게 척척 정리해 버리는 편이지만, 목욕만은 언제나 오래 한다.
손발을 쭉 뻗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오늘 받은 스트레스가 모공을 통해 모두 배출되고 몸도 마음도 조금쯤 재충전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 해소가 너무 쉽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방에서 나온 나오토는 계단을 올라가 문득 유우타의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방에서 나갈 때에는 들리지 않았던 음악이 방문 너머로 흘러나온다.
‘유우타도 잠들었나 보네.’
잘 때는 음악을 들으며 잔다. 그게 유우타의 취침 의식이라고 알아차린 것은 그 도시락 사건 이후부터였다.
요즘 유우타는 그레고리안 찬트와 댄스 음악이 뒤섞인 것 같은 ‘이니그마’를 좋아한다.
아무렇게나 틀어 놓은 TV 소리조차 귀에 거슬리는 잡음으로 들리는 나오토의 입장에서는 ‘저걸 틀어놓고 용케도 잠드네…. 너무 기운차서 오히려 정신이 들어 버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유우타의 취미에 일일이 참견할 이유도 없다.
그리하여 자기 방문을 열고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그러다가 나오토는 놀라서 멈춰 섰다.
아무도 없을 방 안. 침대 한구석에 가볍게 앉은 마사키의 모습이 시야에 불쑥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 어, 어서… 와….”
완전히 상기되어 쉰 목소리. 설마 모레에 돌아올 예정이 갑자기 앞당겨질 줄은 몰랐기에, 동요를 숨기지 못했다.
그러자 마사키가 입 끝만 올려 어렴풋이 웃었다.
“내 촬영은 전부 끝나서. 급히 먼저 돌아왔어.”
마사키는 그렇게 가볍게 말하지만, 틀림없이 또 매니저인 이치카와에게 억지를 부렸으리라고 나오토는 생각했다.
이미 몇 번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는 이치카와가 언제인가 “아양을 떨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마사키 씨가 좀 더 욕심을 내주면 이쪽도 몹시 고마울 텐데요. 애프터 파이브도 업무의 일환이니까요”라고 볼멘소리를 하던 것을 들은 적 있었기 때문이다.
이치카와가 말하는 ‘애프터 파이브’가 뭘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그때 나오토는 암암리에 자신들의 존재가 마사키의 족쇄라는 말을 들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최근 창간된 남성 패션잡지의 ‘얼굴’이 되고 있는 마사키는 스케줄도 그럭저럭 빼곡하게 차 있어 꽤 자주 집을 비운다.
마사키의 소속사 ‘오피스 하라시마’는 그쪽 업계에선 작은 사무소라, 이걸 기회로 마사키를 더 밀고 싶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장의 생각대로 손바닥 위에서 놀아 줄 생각이 없는 마사키는 ‘사연이 있는 가정 사정’을 핑계 삼아 본업 이외의 솔깃한 제안에는 좀처럼 응하지 않는다.
그걸 ‘오만’으로 받아들일지 현명한 ‘선택’이라고 고개를 끄덕일지는 자기 마음이고, 마사키 자신은 아무런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나오. 언제까지 거기 서 있을 거지?”
“어…? 아… 응.”
나오토는 어색한 동작으로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러자 단숨에 방 안의 밀도가 높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 혼자 있을 때에는 그다지 좁게 느껴지지 않는 방이지만, 체구가 큰 마사키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평소와는 다른 질량이 느껴졌다.
무색투명한 대기가 마사키가 내뿜는 분위기에 촉발되어 서서히 열기를 띤다.
착각이 아니다.
막 목욕을 하고 나온 체온이 더 상승한 듯 느껴지는 것도.
공연히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도….
그것은,
“나오?”
듣기 좋은 마사키의 목소리가 재촉하듯 나오토의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최고조에 이르렀다. 어째서인지 움찔하고 다리가 움츠러들어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