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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91167030054
· 쪽수 : 184쪽
책 소개
목차
도망치는 방법
누구에게나 있는 것
때 묻지 않은 하나
다시 만난 날
어제와 다른 오늘
김 대감 집
위험한 짓
백주
문밖으로부터
『시구문』 창작 노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 때문인지 한동안 지독한 열병을 앓았다.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는 무당이 되는 내림굿을 받고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또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방 잡아먹은 년.
사람들이 입을 가리고 내뱉는 말은 너무나도 험악하고 적나라했다.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나와 어머니에게 더 심한악담을 할 수 있을지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여편네 기가 세니 남자가 숨이 붙어 있을 수가 있나.
소문의 시작은 어머니에 대한 것들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어머니 탓으로 돌리려는 사람들의 가벼운 입놀림에 진절머리가 났다. 대꾸할 가치도 없다 싶다가도 하루에도 몇 번씩 부아가 치밀어 동네 사람들을 기어코 들이받는 일이 생긴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 그마저도 그만두게 된 이유는 소문과 악담이 방향을 바꾸어 나에게까지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신내림은 대를 통해 전해진다는데, 딸년도 제 어미 인생 따라갈 거 아냐.
사람들이 소문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퍼뜨리는 데는 아주 짧은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자네, 들었나? 오늘 관철동 근방에서 참수가 있었다네. 양반네를 참수하는 것도 실로 드문 일이 아닌가. 그 가문이 대대손손 어떤 집안인가. 삼대를 멸하게 생겼으니. 게다가 함께 직언했다는 이유로 몇 사람이나 더 시구문 밖으로 내쳐지게 생겼더군.”
그 남자는 술 한 사발을 한 번 더 들이키더니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임금이 쥐새끼처럼 도망을 갔다 결국 청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렸으니. 쯧쯧.”
(…)
“이보게. 목소리 좀 낮추지 그러나.”
“아니, 임금은 백성의 지아비 아닌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 몇 명이나 목숨을 잃었나. 그래놓고는 바른말 하는 신하를 기어코 역모로 몰다니. 허허.”
말을 마친 남자가 손으로 머릿고기를 집어 한입에 털어 넣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지난 정묘년 때도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쳐서 어떻게 되었나. 결국 후금한테 명분도 실리도 다 주지 않았는가. 이러니 선대왕이 백성들 입에 회자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 이 말이야.”
잠자코 듣고만 있던 맞은편 남자가 술 한 사발을 들이켜더니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큰소리를 쳤다.
“역모를 갖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모자라, 폐위된 선대왕을 옹호하는 말을 하다니. 이러다 자네가 시구문 밖으로 내쳐질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