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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8364509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2-08-23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장 | 어린 시절, 우리는 이렇게 놀았다
소꿉놀이 | 아카시아 줄기 파마 | 우리 친구 진달래 | 인간 줄다리기 | 책 보따리 | 꼬리잡기 | 멀리뛰기 | 딱지치기 | 비석치기 | 구슬치기 | 동네 술래잡기
2장 | 울퉁불퉁 나의 유년기
아부지 | 너, 괜찮니? | 나는 바보 | 잃어버릴 뻔한 동생 | 개와 뜀박질 | 돈 벌기 | 자전거 배우기 | 잊을 수 없는 그 맛 | 감 | 처음 본 영화 | 요술쟁이 미역 | 라디오, 마루치 아라치 | 처음 알게 된 영어 | 1호 보물 하모니카
3장 | 그리운 그때 우리 가족은
그리운 할머니 | 감나무 감은 누구꺼? | 한 집안 | 천황 할머니께 팔린 내 동생 | 물고기 튀김 | 호빵 | 개떡 | 풀빵 | 배추전 | 손칼국수의 꼬랑지 | 망에 걸린 꿩 | 달걀 속 달걀밥 | 키 큰 이유 | 모구 | 알코올 유전자 | 아버지의 준비성 | 귀를 깨문 동생 | 옷 잘 입는 동생 | 막둥이 | 송아지 태어나다
4장 | 내 고향에서는
시골 예찬 127 | 나 어릴 적 내 고향은 | 소환된 고향 | 매섭던 겨울 | 콩쿨대회 | 김치 도둑 | 살구의 신맛 | 연애 결혼 | 세 명의 동창과 나 | 어떤 인생
5장 | 아! 옛날이여(1969~1974)
까만 팬츠 157 | 현미경의 다른 이름 | 콧물 손수건 | 담임 선생님 | 개다리춤 | 몽실 언니 닮은꼴 | 사이다와 삶은 계란 | 식물채집 곤충채집 | 무료급식 | 나머지 공부 | 운동회 달리기 | 고구마와 기생충 | 고소 공포증 | 꽁치
6장 | 1970년대 초 농촌 풍경
모내기 | 누에치기 | 목화 | 소꼴 뜯기 | 구루마 | 밀사리 | 디딜방아 | 콩 타작 | 벼 타작 | 깨쪼바리 뽑기 | 새끼 꼬기 | 가을 묘사 | 메주 만들기 | 두부 만들기 | 무 저장고
7장 | 그때는 있었고 지금은 없는
검정 고무신 | 갈비와 삭다기 | 참빗 사려 | 객구와 양밥 | 물 긷기 | 참새 사냥 | 호롱불 | 메뚜기 | 방 안 할아버지 빈소 | 초가집 지붕갈이 | 튀밥과 강정 | 썰매타기 | 때늦은 단풍 | 방앗간 할머니와 가래떡 | 전통 혼례 | 꽃상여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저녁때가 되었는데 할머니도 엄마도 집에 돌아오시지 않는다. 저녁밥을 지어야 하는데…
찬장을 열어보니 미역이 있다. 물에 담갔다. 엄마가 하는 것을 봤으니 그대로 하면 되겠지! 쌀도 한 됫박 퍼 와서 북북 문질러 씻었다. 쌀뜨물을 바가지에 담았다. 씻은 쌀을 솥에 붓고 엄지손가락이 푹 잠길 정도로 물을 부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이제 미역국을 끓일 차례다. 마늘 한 통을 까서 도마 위에 놓고 콩콩 찧었다. 국간장도 장독대에서 퍼 왔다. 어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아까 물에 담가 놓은 미역이 어찌된 영문인지 방탱이에 가득하다. 이렇게 많이 담그지 않았는데…
잔치를 벌여도 될 만큼 양이 엄청 많아졌다.
‘귀신이 왔다 갔나?’
이런 경우를 두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하나 보다.
미역을 씻어 손안에 넣고 두 손으로 물기를 꼬옥 짰다. 손가락 사이로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솥에 기름 붓고 미역 넣고 국간장 넣고 마늘 넣고 손으로 조물조물 버무렸다. 쌀뜨물을 붓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미역국이 한 솥 가득하다. 그날 저녁 우리 식구들은 미역국을 배 터지게 먹었다.
- 요술쟁이 미역
아버지는 식사량이 밥공기 반도 되지 않았다. 소식하다 보니 간식을 자주 드셨다. 당신 자식들보다 간식을 더 자주 더 많이 드셨다. 주로 밀가루로 만든 빵이었다. 개떡, 부꾸미, 풀빵 등이었다. 풀빵틀은 직접 사 오셨다.
왜 풀빵이라고 이름 지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국화꽃 모양의 빵이다. 이 빵틀은 가로 4개, 세로 3개로 한 판에 12개가 구워진다. 엄마가 밀가루에 물을 많이 부어 아주 묽게 반죽한다. 줄줄 흘러내릴 수 있도록. 완성된 반죽을 노란 양은 주전자로 옮겨 붓는다. 팥은 진즉에 푹 삶아서 사카린을 넣고 달달하게 으깨어놓았다. 사기그릇에 식용유를 따르고 막대기에 헝겊을 꽁꽁 싸매놨다. 기름 바르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풀빵 구울 준비가 끝났다. 큰 시멘트 벽돌 2개를 마주 보게 놓고 그 위에 빵틀을 걸쳤다. 불을 때서 빵틀을 달군다. 헝겊을 싸맨 막대기를 식용유 그릇에 살짝 담가 빵틀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닦아낸다. 국화 모양 안에 반죽을 붓고 팥앙꼬(당시에는 팥소를 이렇게 불렀다)를 숟가락으로 똑 떠 넣고 그 위에 다시 반죽을 부어 앙꼬를 덮어버린다. 색이 노릇노릇해지면 송곳처럼 생긴 것으로 풀빵 가장자리를 콕 찍어 올려 뒤집는다. 잠시 후 몽글몽글하게 익은 풀빵을 꺼낸다.
- 풀빵
소꼴 뜯으러 친구들과 같이 가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 가기도 했다. 어렸을 땐 겁이 없었는지 혼자서도 들과 산으로 잘 다녔다. 집 가까이에 있는 논두렁 밭두렁에도 소가 먹을 수 있는 풀이 있었지만, 농약을 정기적으로 치기에 무턱대고 뜯기엔 위험했다. 그래서, 주로 산으로 많이 다녔다. 소가 먹으면 설사한다는 쇠뜨기 풀 외에는 소는 못 먹는 풀이 거의 없었다. 소풀 뜯다가 억센 풀에 손이 베이기도 했었다. 아릿한 아픔이 느껴져 손을 보면 피가 나오고 있었다. 베인 곳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피가 못 나오게 막았다. 때로 모래나 흙을 뿌리기도 했는데 이렇게 하면 피가 덜 나왔다. 그때는 모래와 흙이 치료제 역할을 하는 줄로 알았다.
소꼴을 뜯기 싫은 날에는 망태에 풀을 살살 펴서 담았다. 그러면 적은 풀로 망태를 빨리 채울 수 있었다. 망태 위까지 풀이 차면 키가 큰 풀을 베어 위에 세웠다. 머리카락 묶을 때 머리 한복판(중간)에 묶으면 머리카락들이 하늘을 향해 쫙 펴지는 것과 같이 망태 끝부분을 풍성하게 채웠다. 그렇게 하면 풀을 엄청 많이 뜯은 것처럼 보였다. 낫을 풀 위에 꽂고 망태를 머리에 이고 빠르게 걸었다. 걸을 때마다 망태가 출렁거려서 살살 편 풀들이 발로 누른 것처럼 쑥쑥 아래로 내려갔다. 하늘을 향해 풍성하게 서 있던 풀들이 망태 끝부분까지 내려와서 군대 간 지 한 달 정도 된 군인 아저씨의 깍두기 머리처럼 볼품없어 보였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시 풀들을 살살 손으로 들어 올려서 풍성하게 보이도록 눈속임을 하기도 했다. 집에 오면 누가 보기 전에 얼른 풀을 꺼내서 마당 한 켠에 살살 널어놓았다. 명자가 놀자고 내 이름을 크게 부른다. 살살 펴던 소꼴을 던져놓고 명자를 향해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