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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68672628
· 쪽수 : 258쪽
· 출판일 : 2026-01-21
책 소개
목차
[대항 기억과의 대면, 제주 4·3]
후예(末裔) 10
보금자리를 떠나다(巣立ち) 36
[시국과 팔자에 갇힌, 제주 여성]
어느 여인의 일생(ある女の生涯) 106
이연실 씨(李蓮實さんのこと) 126
어느 재일조선인 어머니(ある在日朝鮮人のオモニ) 136
붉은 꽃(紅い花) 150
역자의 말 254
책속에서
형은 끝까지 그 종이의 입수 경로를 발설하지 않았어. 그리고 형은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 운동장에서 다섯 발의 총알을 가슴에 맞고 죽었어.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에 불려가 모두 형의 최후를 지켜보게 했어. 학교 운동장에 끌려온 형은 기둥에 묶이는 것도, 눈을 가리는 것도 거부했지. 두 다리를 빳빳이 펴고 똑바로 선 채 주먹을 쥐고 단 한마디 ‘인민공화국 만세!’라고 다부진 목소리로 외쳤을 뿐이야. 그 외침이 마치 ‘어서 쏴.’라는 신호라도 된 듯 순경의 다섯 발 총탄이 형의 얼굴과 가슴을 꿰뚫었어. 학교 운동장에 쓰러져 피투성이가 된 형의 시신을 앞에 두고 순경 지휘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외치게 했어. ‘대한민국 만세’ —하지만 나는 세 번 외쳤어. ‘형, 만세, 만세, 만세!’라고. (‘후예’ 중에서)
1948년 4월 3일부터 며칠 동안 성안에서 겪은 나의 소소한 체험은 나의 시선을 바깥세상으로 돌리게 한 최초의 계기였다. 그때까지 나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는 우리 마을이 전부였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부모가 있었고, 형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날개 아래에서 자기 세계 속에 편안히 틀어박혀 있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고 나를 둘러싼 세계의 중심은 여전히 나 자신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한가로이 따스함에 젖어 있던 내가 결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그저 아주 미미한 한 귀퉁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 밖에도 수많은 마을이 존재하듯 나는 부모와 형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까지 포함해 그들 모두의 고향이라고 생각했던 제주도의 바깥에는 ‘조선’이라는 더 큰 국토가 있고 그 조선을 둘러싼 훨씬 더 넓고 복잡한 구조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보금자리를 떠나다’ 중에서)
그러나 추월은 살아야만 했다. 게다가 아직 젊었다. 그러니까 시간은 그들의 편이었고 일만 하면 희망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희망이라고 해 봤자 그것은 장차 고향으로 돌아가 조그마한 밭과 비바람을 막아줄 집을 마련하고 몇 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었다. 일본에서의 삶은 임시이고, 진짜 삶은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다. 추월 부부가 개인이 운영하는 화장터를 찾아 들어간 것도 결국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무엇보다 그곳엔 일이 있었다. 좁아터진 판잣집이라도 집이 있었다.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나온 후 5년의 표류 끝에 겨우 오사카 이카이노의 마을 한구석에 이르러 그곳에 임시 거처하기 위해 닻을 내렸다. (‘어느 여인의 일생’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