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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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대학원에서 조형 예술을 공부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그린 책으로 『어린이를 위한 역사의 쓸모』, 『밤의 끝을 알리는』, 『우리는 벚꽃이야』,
『여름맛』, 『퓨마의 오랜 밤』, 『그냥 베티』 등이 있다.
홈페이지 grafolio.com/shinjino, instagram.com/sunnysh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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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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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에서 나고 자랐다. 오랫동안 꿈꿔 온 가톨릭 사제의 길을 포기하고 시인의 길을 선택, 스물여섯 살에 「권진규의 장례식」 외 7편의 시가 《현대시세계》 신인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다.『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미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등 다섯 권의 시집을 냈다.
문청들의 교과서이자 청춘의 경전으로 불리는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에서부터 성과 속의 세계를 동시에 살아내는 실존주의자의 허무를 노래하는 근작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광기와 심리적 허기가 불협하며 만들어 낸 시적 착란은 매번 새롭게 아름다운 폐허의 한복판을 만들어 내며 허연의 시가 지닌 독자적 리듬과 독보적 색채의 근간이 되었다.
시집 외에도 『고전여행자의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 『시의 미소』 등 고전을 탐닉하며 쌓아올린 지성과 취향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명작의 세계를 안내하는 저서를 다수 출간했다. 현대문학상, 시작작품상, 김종철문학상, 한국출판학술상 등을 받았다. 일본 게이오대 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을 지냈으며 매일경제신문 문화선임기자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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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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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년 모스크바에서 의사였던 아버지와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슬하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공병학교를 졸업하였다. 1842년 소위로 임관하여 공병 부대에서 근무하다 1844년 문학에 생을 바치기로 하고 중위로 퇴역한다. 도스토옙스키는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같은 작가들과는 달리, 유산으로 받은 재산이 거의 없었기에 유일한 생계 수단이 작품을 쓰는 일이었다. 1849년 4월 23일 페트라솁스키 금요모임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집행 직전 황제의 사면으로 죽음을 면하고 시베리아에서 강제노역한다. 1854년 1월 강제노역형을 마치고 시베리아에서 병사로 복무한다. 1858년 1월 소위로 퇴역하고 트베리에서 거주하다 1859년 12월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한다. 1857년부터 불행한 결혼생활을 함께했던 아내 마리야 이사예바가 1864년 4월 폐병으로 사망한다. 그해 6월 친형이자 동업자였던 미하일이 갑자기 사망한다. 1866년 잘못된 계약으로 급히 소설을 완성해야 했던 작가는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를 고용하여 《도박사》와 《죄와 벌》을 완성하고 이듬해 1867년 2월 속기사와 두 번째로 결혼한다. 1867년 아내와 함께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럽의 여러 도시를 떠돌며 《백치》, 《영원한 남편》, 《악령》 등을 쓴다. 해외에서 거주하는 동안 세 아이가 태어난다. 작가가 46세일 때 태어난 첫 달 소피야는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사망한다. 작가에게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안나 스니트키나는 작가의 마지막 날까지 든든한 옆지기로 남는다. 1881년 1월 28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를 구상하고 있던 도스토옙스키는 앓던 폐기종이 악화되어 숨을 거둔다. 1881년 2월 1일 장례식을 찾은 6만여명의 인파가 떠나는 작가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도스토옙스키는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티흐빈 묘지에서 안식하고 있다. 대표작은 《가난한 사람들》, 《백야》, 《분신》,《죽음의 집의 기록》, 《지하에서 쓴 회상록》, 《도박사》,《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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