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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

(그리스 / 터키)

허대영 (지은이)
도서출판예맥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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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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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 (그리스 / 터키)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91186066218
· 쪽수 : 417쪽
· 출판일 : 2016-03-15

책 소개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떠난 성지 순례 과정을 사진과 지도를 곁들여 기록한 성지 순례 지침서이자 신앙고백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지 순례의 길로 보내 주시는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면서 바울의 1, 2, 3차 전도여정지를 방문한다.

목차

추천의 글
축하의 글
머리말
01 들뜬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준비하며
02 이스탄불, 드디어 꿈의 도시에 첫발을 딛다
03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을 찾아서
04 바울의 고향 다소를 지나 데린쿠유의 뜨거운 믿음을 만나다
05 독특한 자연환경에서 신앙의 꽃을 피운 카파도키아
06 터키 최고의 자연+인문 = 파묵칼레+히에라폴리스
07-A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넘치는 일곱교회에 보낸 편지들
07-B 로마 문화의 흔적에서 바울의 강론을 듣는 에배소
08 거친 풍랑을 헤치며 수없이 오갔을 선교의 뱃길, 에게해
09 신들의 놀이터, 아크로폴리스에서 주님을 증거하다
10 고린도, 무너진 유적 더미에서 들려오는 바울의 음성
11 뜨거운 믿음을 만나는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 메테오라
12 비잔틴 고도古都를 바라보며, 영광 회복을 기원하며
13-A 성스런 지혜 아야 소피아 성당에게 명하노니, 기도하라
13-B 극동의 길손, 보스포러스 유람선에서 마음을 놓치다
14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믿음의 나라로 인도하소서
부록 : 바울의 생애와 선교활동

저자소개

허대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주님께서는 고등학교 때 개인 문집을 만든 문학 소년을 동시와 시와 시조, 그리고 성지순례기를 쓰는 작가로 문단에서 활동하게 하시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41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이자 미군정 교육정책에 대하여 다양한 분석을 한 교육학자로 성장시켜 주셨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신실한 믿음을 허락하시고 교회학교 교사, 샘장(속장, 구역장과 같은 직분)과 협동장로로 일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하여, 저자를 교육자, 시인, 학자, 기독교인 등 다양한 지성과 풍성한 상상력으로 폭넓은 작품 세계를 펼치는 중견 작가로 길러 주셨다. 문학 소년은 작가로 성장하고, 여기에 교육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익힌 교육 철학을 더하였으며, 교회에 출석하며 순종하는 믿음생활 등 삶의 궤적들을 잘 조화시킨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장로이자, 시인이며 교육자 및 학자가 동서고금을 수시로 넘나들며 자유로운 성지순례 일정에 따라 쓴 새로운 성지순례기의 틀을 보여 준 수작이다. ◈ 아동문학가이며 시조시인이 되도록 인도하셨다. 저자는 습작기를 거쳐 1978년에 교육자료에 동시 천료, 1992년에 아동문학에 동시 신인상, 그리고 1995년에 시조문학에 시조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지금은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아동문연구회 회원, 강원도문인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강원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강원도문인협회장을 지내는 등의 다양한 문단 활동을 하도록 인도하셨다. 그동안 작가는 문집《회상(1965년)》, 시조집《영월찬가(2009)》, 시집《사랑한다 함은(2010)》, 《다시 불어오는 바람(2011)》, 동시집《봄이면 배봉채는 진달래 바다(2011)》 그리고 이번에 두 권의 성지순례기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을 찾아서(2016)》,《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길(2016)》을 상재하였다. ◈ 초등학교 때 교회에 나가 작은 손을 모아 기도드린 것을 잊지 않으시고, 다시 불러 믿음을 굳게 다져 주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교회에 발을 디디고 하나님을 알게 된 이래 교회 문을 드나들다가 쉬었다가를 거듭하면서 50여 년 동안 믿음 생활을 하였다. 특히 고등학교에서부터 결혼하여 아내를 만나 다시 교회에 갈 때 까지 20여년은 긴 공백 기간이었다. 아내의 인도로 다시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오늘날까지 삶과 믿음을 지켜 주시고 계시다. 그의 문장 시선은 앞에서 말했듯이 세 곳으로 집중되고 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어떤 분인지’와 ‘그분은 나와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그분을 찾아 나서는 우리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하는지’가 그것이다. 세 곳 방향에서 뿜어내는 촉각이 곳곳을 예리하게 파헤쳤음을 가슴으로 읽으면 온 몸이 전율하게 된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에서 느끼는 단순한 풍경으로써 성지가 아닌, 현실로 되살아 현재의 의미가 부여되는 성지 소개를 하는 등 예리한 통찰력이 통하여 곳곳에서 눈부신 재발견의 빛을 더욱 발하고 있다. 현재 저자는 춘천중앙교회(기독교 대한감리회)에 출석하면서 협동장로로 일하고 있으며 춘천YMCA에서는 부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 초.중.고등학교 교사 및 교육전문직 그리고 교감.교장, 대학 출강 등 다양한 교직 세계를 경험하고, 연구 결과를 저서로 남길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다. 초.중.고등학교 교사 및 장학사, 연구사, 장학관, 연구관, 교육장과 일선학교의 교감.교장을 지내면서 초등학교 교사로서의 감수성과 중.고등학교 사회과 교사로서 일반사회와 역사와 종교에 대한 다양한 접근, 그리고 교육행정기관에서 겪은 수직.수평적 상황 등의 폭넓은 을 인간관계의 경험을 통하여, 그의 문장은 화려하고 수사적인 장식에 그치지 아니하고 순수하고 간결한 필치로 교육적 감성을 담담하게 물 흐르는 듯이 정리하도록 인도하셨다. 교육 및 학문적인 저서와 논문으로는《연구학교 운영의 실제(1994~1997)》,《수학과 수준별 이동수업(1996)》,《하나되는 통일교육(2003)》,《오천석과 미군정기 교육정책(2009)》,《학교분쟁 해결방안(2011)》,《학교자체 평가 정책과의 개선과 현장 착근 방안 모색(2012)》등이 있으며, 강원대학교, 강원대학교교육대학원, 한림성심대, 한국방송대 등에 출강하게 하셨다. ◈ 교육대학(2년제) 졸업 이후 야간과 계절제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여 주셔서 학문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저자는 춘천교육대학과 구원주대학(현상지대학교 전신)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강원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의 학력에는 중간 중간 빈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대학 졸업 후 교사를 하면서 야간 대학을 졸업하였고, 중등 교사로 옮겨 근무하면서 고려대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도교육연구원에서 연구관을 지내면서 강원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지속적인 향학열은 학문의 최고 경지에 이르기까지 하면서 강원도의 노벨상인 동곡상 (교육연구부문, 2015년)을 수상하게도 하셨다. ◈ 정년퇴임은 인생의 후반기를 주님의 세계로 접근할 수 있게 미리 계획하셨다가 성지순례를 계기로 새로운 믿음의 세계로 아름다운 전환이 이루어지도록 인도하셨다. 2011년 8월 말에 41년 3개월간 교직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하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직장 생활을 하던 때에는 꿈에서만 그리던 성지순례를 떠나게 된 것이다. 이집트와 요르단을 거치는 동안 출애굽의 고난 속에서도 40여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모세의 피와 땀을 보았고 이스라엘에서는 갈릴리 호수에서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압축하여 묘사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그리고 2013년에는 그리스 터키에도 보내 주셨다. 그리스는 고대문명의 발생지중의 하나이고 고대 민주주의가 꽃피웠던 곳이다. 찬란한 고대무명의 흔적이 넘치는 그리스와 바울의 전도 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터키에서 저자로 하여금 믿음의 본질을 깨닫게 하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다. 저자는 인사말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지순례 기회를 미리 예정해 놓으셨다가 공직에서 퇴직한 후에 용감하게 나설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신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더군다나 2012년 1차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성지순례기 “나를 사랑하신 그분을 찾아서”에 이어서 이번에 터키와 그리스 편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길”을 출판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우리 어머님 박옥순 여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나이가 들어도 철이 들지 않는 자식 때문에 늘 걱정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겸손하고 배려가 많으셨던 우리 어머님. 지금은 함께 하지 못하지만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또한 동행하여 함께 감동을 나누었던 아내와 늘 든든한 후원자인 세 딸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지난 2005년에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영국을 다녀온 바 있습니다. 그곳은 굳이 분류하자면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 이래 기독교가 융성했던 중세와 이후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지역입니다. 물론 성지만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지역을 순회하니 자연히 성지를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집트-요르단-이스라엘과 그리스-터키, 그리고 서유럽 여러 나라까지를 보았으니 출애굽에서 바울의 선교지, 그리고 로마의 기독교, 종교개혁까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셈입니다. 또 페루에서는 크리스트교가 중남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보았습니다. 주신 행운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동유럽 여러 나라와 러시아, 그리고 스페인을 다녀오고 싶고, 지금은 불가능하고 앞으로도 쉽지는 않겠지만 이란, 이라크, 시리아도 성지순례의 큰 그물망 속에 넣어 놓고 있습니다. 이런 곳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달려갈 것입니다. 이번 성지순례에서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회심을 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세계 선교 꿈을 성실하게 실천한 사도 바울의 뜨거운 열정을 눈과 가슴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세계 복음의 싹을 틔우는 3월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그리스 터키 성지순례기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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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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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6, 하란, 아브라함이 살던 곳에 도착하다.
----- 하란(Harran)-----
터키 고대도시. 현재 터키 명으로 알튼바삭(Altinbasak). 우르파(Ulfa)에서 시리아 국경 도시인 악차칼레(Akcakale)까지는 50Km거리인데 이 길로 국경으로 가다가 악차칼레 10Km전에 하란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10Km 더 들어가면 전통 흙집이 있는 하란마을이 나온다.
하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3대 종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터키 남동부, 샨느 우르파에서 남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 하란은 아브라함의 부친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머물렀던 곳으로 데라는 여기서 숨을 거두었고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과감히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다.
현재 하란은 아직도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로 오지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마을 곳곳에는 하란의 역사를 보여주는 성채와 집터, 그리고 통칭 에그 하우스라고 불리는 전통 원추형 흙집이 있어 특산물 판매장이나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하란은?-----
첫째,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체류한 중간 기착점이다(창11:31~32, 행7:2~4). 둘째, 하란 체류 중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가나안으로 가라는 소명을 재차 받은 곳이다(창12:4~5). 셋째,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고향이며(창24장), 훗날 야곱이 에서를 피하여 도망한 곳이다(창27:43). 넷째, 야곱이 하란에 거주하는 외숙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있으면서 4부인에게서 11남 1녀를 낳았다(창29:30:). 다섯째, 하란은 갈대아 우르와 함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한 도시로서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다(왕하19:12). 여섯째, 티그리스 강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고산'과 '갈그미스'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여 통상로의 교차점이 되었고 교역의 중계도시로 번영했다(겔27:23).
----- 아브라함 가문과 하란 -----
첫째, 아브라함(Abraham)이 우르를 떠난(BC 2000경) 뒤 처음 머문 장소가 하란이다. 이곳에서 아버지 데라 일행은 한동안 머물렀다. 둘째, 아브라함의 형제들 중 나홀의 집안만 이곳에 남고, 그는 가나안을 향해 떠났다. 셋째 나중에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아내를 고르기 위해 종을 하란에 보내어서 나홀의 손녀 리브가를 며느리로 맞이한다. 리브가가 곧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가 된다. 넷째, 또한 하란은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하자 야곱이 하란에 있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기도 한다. 야곱은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14년간 하란에서 데릴사위 노릇을 하였다. 다섯째 야곱은 이곳 하란에서 네 여인으로부터 장남 르우벤을 비롯하여 11남 1녀를 얻었다. 이렇듯 아브라함 가문 5대에 걸쳐 정신적 고향이 되었던 곳이 바로 이곳 하란이다.
----- 성경말씀 : 창세기 24:10~11; 27:43~45; 28:10~12; 29:3~6 -----
하란은 아브라함 가문의 5대 동안 고향이다.
□ 창세기 24장
10. 이에 그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11. 그 낙타를 성 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 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올 때였더라
□ 창세기 27장
43.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 창세기 28장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 창세기 29
03.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0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0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바로 이곳이 5,000년 동안 아나톨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사이를 연결하는 무역의 통로 역할을 맡았던 하란이며, 서쪽으로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있고, 동쪽으로는 티그리스 강이 흐르고 있어 광활한 농토를 볼 수 있다.
천문관측대를 방문하다. 천문관측대는 하란대학 터에 붙어 있었다. 당시 별들을 관측하던 천문 관측소는 지금도 옛 모습의 일부를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첨성대처럼 뚜렷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아 설명을 하니까 ‘그러려니’ 하지 처음 보는 사람의 눈에는 보통 유적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란대학 터를 방문하다. 하란의 성읍 북쪽에 있는데 주로 의학 그리고 수학과 천문학 등을 가르쳤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손자 홀라구가 1,259년, 시리아 원정길에 이곳을 진출하여 시민들이 저항했다하여 성을 함락한 후 전 시민들을 학살하고 모든 건물은 기둥뿌리 까지 뽑아버려 폐허가 되었다한다.
자연원통형 흙집을 방문하다. 하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건축양식이 특히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즉 집의 지붕을 진흙으로 구운 벽돌을 사용 4~5m 높이의 원뿔 모양으로 높게 만들었는데, 이것은 천장에 공간을 많이 둠으로 해서 한 여름의 태양열을 감소시킨 것이 특징인 흙집이다.
이 흙집은 지붕이 몇 개가 겹쳐져 있는데 부엌, 거실, 응접실, 창고 등으로 사용하도록 연결되어 있다. 집 구조는 매우 단순하지만 흙으로 지어져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아랍인들이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일종의 전통가옥 민속촌과 같은 곳이었다. 마당에는 천막을 치고 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음료수와 그곳 특유의 차도 팔고 있었으며 가옥 안으로 들어가니 각종 판매용 토속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도 거리에 개들이 거리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다니는 관광객을 슬슬 쫒아 다니고 있었다. 이런 풍경은 이후 터키나 그리스를 여행되는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가끔 달려와 무엇을 사라고 하거나 돈이나 가지고 있는 물건을 달라고 요구하거나 한다. 우리가 저들보다 좀 더 풍족하게 산다고 저들을 불쌍히 여기고 안타까워해도 되는 것인지…..
6.25 직후 우리 모습이 이랬으리라. 실제로 우리 고향 홍천 동면에 있던 옛 면사무소 터에 미군이 주둔해 있었다. 나는 어린 나이(다섯 살 정도 되었을 꺼다)에 ‘기브 미’ 하면서 미군을 쫒아 다녔고 껌이나 초콜릿 등을 얻어먹었다.
16:49, 야곱의 우물을 방문하다
하란 마을에서 1km 떨어진 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다. 비잔틴시대에 융성하던 기독교유적은 오스만제국의 등장으로 지금까지 관심에서 멀어진 유적으로 남아있다. 야곱의 우물은 손을 보기는 했으나 초라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이 모든 유적들은 성경적 사실을 증명하는 상징적 모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성경말씀 : 창세기 24 : 13~15 -----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삼다
13.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서 있다가
14.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15.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야곱이 오랜 기간 걸어서 밤으로는 노숙하며 라반의 집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첫 번째로 만난 소녀가 라헬이었을 것이다. 첫 눈에 반한 야곱은 7년간을 머슴을 사는 대신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하였다. 결혼식 날 밤 라헬인줄 알고 잠을 잤는데 그 여인은 라헬이 아니라 라헬의 언니 레아였다. 외삼촌에게 속은 것이다.
야곱은 칠일을 채우고, 7년을 더 섬기기로 하고 라헬도 아내로 맞았다. 결국 야곱은 두 자매를 아내로 맞이하였으며, 나중에는 그녀들의 시녀들까지 네 명의 아내를 두고 살았다. 야곱의 자손들이 많아졌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12지파의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 성경말씀 : 창세기 29 : 26~30 -----
야곱이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다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위하여 칠 년동안 섬길지니라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 라반이 또 그 여종 빌하를 그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15:20, 야곱의 우물에서 출발하다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버스를 타야 했다. 이때 목사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순종의 믿음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설교 말씀이 있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아들 이삭을 드리려고 했던 것 한번이고 나머지는 순종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말씀하신다. 피곤이 겹쳐 자면서 들으니 얼마나 알아들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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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알바츠(Yalobatch), 우리가 아는 성경 상의 지명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하다.
----- 비시디아 안디옥(Pisidia Antiokheia) ------
콘야에서 알바츠까지 거리는 180km이고, 알바츠에서 파묵칼레까지는 콘야에서 알바츠 보다 2배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비시디아 지역의 안디옥(안티오키아 Antiochia)으로서 수리아의 안디옥(안티오키아)과는 다른 곳이다. BC 25년경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재정비되고 티베리우스 황제 하에서 꾸준한 발전을 이룩한 비시디아 안디옥은 사도바울 당시 비시디아 지방의 수도로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헬라인, 이방인들도 대거 거주하는 대도시였다.
사도 바울은 제 1차 선교여행시 베르게에서 험준한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의 안티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에서 선교하였다. 바울은 안디옥에서 두 안식일을 걸쳐 먼저 유대인에게 선교했으나 배척당하고, 이방인들이 사는 도시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는 갈라디아 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 성경말씀 : 사도행전 13 : 13~16 -----
바울,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도하다.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 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바울기념교회는 타원형 부분(아마도 강단 쪽인 듯)만 남았다. 미국의 미시간대학 고고학 팀에서 발굴했다는 안내판이 있다.
아직도 수많은 유적 파편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황량한 벌판으로 남아 있는 모습이 많이 아프다. 예수의 생명력이 멈춘 이곳에 다시 복음이 일어나기를 소리쳐 봤다. 언젠가는 에스겔 37장처럼 일어나리라.
----- 성경말씀 : 에스겔 37 : 9~10 -----
마른 뼈들이 살아나다
0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 데 극히 큰 군대더라
오랜 세월과 지진과 화재 등으로 무너진 안디옥 교회터. 찬란했던 당시 모습은 간데없고 깨어진 로마식 건물 돌조각과 무너진 기둥만 남아있다. 중앙 진입로인 로만대로는 돌로 바닥을 포장한 흔적이 남아 있고 거대한 공연장은 일부 무너지기도 했으나 원형에 가깝게 남아있다. 복원을 위해 관중석은 물론 중요한 돌마다 번호를 새겨놓고 있었다. 지속적인 물음을 계속되고 있다. 이슬람의 영향 하에 있는 예수님의 역사현장이 언제 복원되어 예배드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게 될 것인가. 함께 통성기도를 하다.
----- 잠깐! 안디옥 이라는 지명에 관하여 -----
참고로, 비잔틴제국 시대 당시에 ‘안타키아(안디옥)’ 라는 지명(地名)은, 아나톨리아 지역에만 무려 10여 곳이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다음 대왕의 부하 중에 왕이 된 부하가 넷이 있는데, 이 네 명 중에서 시리아.소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고 왕이 된 셀레우코스 1세가 지역 요지에다가 도시들을 건설할 때, 그의 아버지 이름인 ‘안티오코스(Antiochos, 안디옥)’의 이름 따서 건설했다. 바로 그런 도시들이 안디옥이다. 그래서 도시의 이름을 앞에 붙여서 '비시디아 안디옥', '수리아 안디옥'으로 구분해서 불러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방문하지는 못해 안타깝지만, 수리아 안디옥을 정리하고 넘어가자.
----- 수리아 안디옥(현재이름 Antakiya) -----
시리아와의 접경지에 있다. 현재명은 안타키아이다. 행정 구역상 지중해에서 약 32Km 내륙 오론테스강가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80Km의 거리에 있다. 안디옥이라는 지명은 여러 곳이 있었으나 성경에서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수리아 안디옥 두 곳이 언급되어 있다.
초기 이방 지역 선교를 위한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던 수리아 안디옥 교회는 초기에 바나바와 바울, 베드로에 의해 지도되었다. 산기슭에 있는 성 베드로 동굴은 초대 안디옥 성도들이 모였던 장소로 여겨진다. 동굴 안에는 비잔틴 시대 것으로 보이는 모자이크가 있다
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시작된 핍박으로 예루살렘 중심이었던 초대교회가 지경을 넓히기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 기지가 된 곳이 수리아 안디옥이다. 유대인에게만 전하던 복음을 유대가 아닌 곳에서 이방인(헬라인)에게 전한 첫 도시이기도 하다. 수리아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접한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은 착하고 성령 충만한 바나바를 지도자로 파송했고 바나바는 회심하여 고향에 돌아가 있던 바울을 데리고 와서 안디옥 교회를 성장시키는 일에 동역하게 된다. 그렇게 성장한 안디옥 교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최초로 얻었고 바울의 선교여행의 출발점이자 든든한 후원자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 성경말씀 : 사도행전 11:22~26 -----
바울, 안디옥교회에서 전도하다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이처럼 수리아 안디옥은 복음의 역사에 있어서 예루살렘 만큼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초대교회 당시 수리아 안디옥은 로마,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자유민만 30만 명 이상이 거주한 로마제국의 세 번째 도시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 사족 : 지명.인명에 대한 생각 -----
이 글을 쓰다 보니 원어로 된 지명.인명을 미리 표시해 두거나 방문하는 곳의 안내판을 찍어 두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개신교와 가톨릭은 용어가 통일되지 않아서 어려울 때가 많았다. 인명, 지명은 논의를 통하여 어떤 교회 교파에서든지 통일하여 써야 한다.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고 연구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고대 지명과 오늘날의 지명이 완전히 다른 곳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도 성경 번역할 때에는 ( )속에 부기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혼란을 방지하기도 하거니와 쓸데없는 일에 힘의 낭비를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글 성경에 있어서도 구브로는 키프로스로, 애굽은 이집트로, 바사는 페르시아로 현대에 쓰이는 것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1:19, 알바츠, 비시디아 안디옥교회에서 출발하다.
11:50, 식당에 도착하다. 뷔페식당인데 김과 김치를 제공해 주신 분이 있어서 밥을 많이 먹었다. 오이와 풋고추를 고추장을 듬뿍 찍어 우적우적 먹으니 기운이 난다.
12:24, 식당에서 출발하다.
알바츠에서 파묵칼레로 가는 길, 터키에서 처음 보는 첩첩산중의 길이다. 차량 통행이 전무한 높은 고지대를 가는데 한쪽은 산비탈이고 그 반대쪽은 낭떠러지 길인데도 안전장치라고는 거의 없다.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가고 있다.
----- 사족 : 국기 게양에 대하여 -----
이 나라에는 국기를 많이 내걸고 있다. 관공서는 물론이고 가정에도 가는 곳 마다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터키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 투르크가 있다고 한다. 그의 위대함이 새삼 떠오른다.
우리의 국부는 누구인가. 이승만대통령은 한때 국부였다. 이승만 박사는 기독교 신앙을 지닌 분으로 우리 독립 역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민주적 기본 질서만 잘 정착시켰어도 오늘날 이렇게 애증愛憎의 위치에 있지는 않을 터인데……. 안타깝다.
14:12, 휴게소에 도착하다. 넓은 초원에 이 휴게소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다. 휴게소 옆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다. 그곳에서는 아이스크림 비슷한 것을 먹었다. 넓은 주차장에 쾌적한 환경을 갖춘 휴게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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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버스에 승차하다. 밤사이에 비가 와서 다소 쌀쌀하다. 이즈미르를 향한다. 쿠사다시에는 비행장이 없어 비행기를 타고 아테네로 가기 위해서는 이즈미르로 이동해야 한다. 밧모 섬에 못간 대신 비행기를 한 번 더 타게 된 것이다.
가이드가 그리스의 고통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첫째, 인구가 적다. 둘째, 유적 때문에 살고 유적 때문에 죽는다(아무 곳이나 파면 유적이 나온다. 하여 개발하기가 어렵다). 셋째, 산악지대이다. 넷째, 약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살았다(국가가 개인을 위하여 해 준 것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개인을 중시하고 애국심은 약하다). 참고하리라.
09:30, 이즈미르 공항에 도착하다.
공항에서 천진난만한 시리아 두 어린이와 그 어머니를 보면서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더 다짐해 본다. 사상이나 가치관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지 않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기다리는 시간에 글을 몇 편 쓰다.
----- 생각조각 ----
아시아의 7대교회를 보며
2013.4.8.08:22.
바울의 서신을 따라
곳곳에 피어 있는 꽃들을 보았습니다.
화려한 장식과 거대한 자태로
피었더랬습니다.
바울의 사랑과 열정이
곳곳마다 넘쳐흘렀습니다.
그 넘침이 헬라로 로마로
쉼 없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흘러가더라도
뿌리는 이곳에 남겨 자라게 하고
씨앗이 되고 열매 맺게 해야 하는데
아주 작은 흔적마저 모두 휩쓸어 가
지금은 모스크의 첨탑이
도시를 뒤덮고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소리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로마에서, 서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아시아로 흘러간
당신의 크신 사랑이
이제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이곳에 회복의 역사로 복귀되기를 원합니다.
아라랏산의 방주가 다시 움직이고
하란에서 아브라함의 기도소리가 울려 퍼지며
소아시아 일곱교회 터의 잡풀도 거두어주시고
다시 누워 있는 돌들이 일어나게 하소서
우렁찬 찬송이 울려 퍼지게 하옵소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새 땅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이 다시 열리고
강물과 바다가 다시 만나며
바람이 벌판을 내달리게 하옵시고
하나님을 닮은 형상들이
함께 꿈꾸며,
함께 사랑하며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짧은 글을 하나를 또 쓰다.
----생각조각 -----
바울에게 항의한다.
2013.4.8.08:29
어떻게 하셨기에
2,000년도 안된 지금,
이렇게 처참하게 될 수밖에 없도록
허술하게 하셨나이까?
속히 돌아오셔서
그때 철저하지 못했던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의 사명을
다시 감당하여 주옵소서.
10:58, 비행기에 오르다. 50분 간다고 하니 잠깐이다. 비행기회사는 PAGANS AIRLINE 이다. 좌우로 3열식이다. 창가여서 다행이다. 에게 해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 옛날, 고대 그리스의 앞마당 에게 해. 그 장엄한 풍경을 하늘에서 보는 것도 밧모섬 성지순례에 버금가는 기쁨이며 경험이 될 것이다.
11:05,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화면에는 11:53분에 도착 예정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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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0, 식사를 하다.
08:25, 승차하다. 오늘은 고린도로 갔다가 중부 그리스로 이동한다. 장시간 버스를 타기 때문에 약간 걱정이 되기는 하나 어쩌랴!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83km쯤 내려가면 펠로폰네소스 반도 초입에 현대 고린도가 있고 거기서 서남쪽으로 6km 더 내려가면 옛 고린도 유적이 있다.
10:28, 고린도 운하가 시작되는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가게에는 우리의 땅콩엿과 비슷한 것이 ‘맛보기’로 내놓고 있어서 오가며 주워 먹었다. 이곳에서는 가이드로부터 아테네, 고린도, 펠로폰네소스반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5$ 주고 그리스 지도를 한 장 샀다. 누군가 제공하는 커피도 한잔 마셨다.
10:45, 승차하고 고린도 운하를 지나간다. 장관이다. 깊다. 버스도 천천히 가면서 사진 찍을 기회를 주었다. 사방에서 감탄이 터진다.
----- 고린도(Corinth)운하 -----
운하가 건설되기 전에는 에게해 쪽에는 겐그레아 항이 있었고 이오니아해에는 레가이온 항이 있었다. 겐그레아 항에서 레가이온 항까지 해로는 무려 320Km가 되나 육로는 6Km 남짓한 거리이다. 해상을 통해 가면 320Km를 항해를 하여야만 되기에 소형 선박들은 고린도의 제일 좁은 부분 지협에 통나무를 깔고 그 위에 배를 올려놓은 채 통나무를 굴려 육지를 건넜다고 한다. 통나무 롤러로 만든 운송수단으로 배들을 통과시켜 주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
옛날 통나무 롤러로 배를 운송하던 곳에 지금은 운하가 건설되었다. 이 운하건설은 BC 600경에 폭군 페리안더(Periander)가 1차 시도, AD 65경에 네로(Nero)가 재시도 했으나 실패하고 약 1800년 후인 1881년에 프랑스 건설자들이 3차 시도하여 1893년에 완공을 했다.
고린도운하는 파나마운하, 수에즈운하와 함께 세계 3대 운하 중 하나다. 수직으로 깎아 내린 절벽이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섬으로 만들었다. 두부를 반듯하게 자른 듯이 바위를 잘라 만든 고린도 운하. 마치 마추피추의 석조물을 보는 것 같다. 다리에서부터 해면까지는 86m, 수심 깊이는 10m, 해면의 폭 22m, 길이는 6.3km. 위로 올라오면서 점점 더 넓게 파여서 큰 크루즈도 다닐 수가 있게 건설되었다.
11:05, 고대 고린도에 도착하다.
고린도. 얼마나 많이 들어 온 곳인가. 역사적으로는 도시국가로 펠로폰네소스반도에서는 큰 역할을 담당하였었고 종교적으로는 바울이 선교하고 서신서 썼던 곳이며 ‘고린도 전서(에베소에서 저술).후서(마케도냐에서 저술)’ 라는 이름으로 오랜 전 부터 기억에 남아 있는 도시였다. 그곳에 지금 와 있으니 감격을 무엇으로 전하랴.
----- 바울에 고린도에서 쓴 서신서들 -----
총 4권을 쓴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① 데살로니가 전서 ② 데살로니가 후서 : 제2차 사역여행 때 고린도에서 기록(행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③ 갈라디아서 : 제2차 사역여행 때 고린도에서 기록(행 18:11, 일년 육개월을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니라)
④ 로마서 : 제3차 사역여행 때 고린도에서 기록(행 20: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하고)
----- 고린도(Corinth) -----
옛 고린도 자체는 항구도시가 아니지만 북쪽과 동쪽에 항구들을 끼고 있어 상업이 번창했다. 북쪽 고린도 만에는 레가이온 항구가 있어 아드리아 해로 통했고, 동쪽 샤론 만에는 겐그레아 항구가 있어 에게 해로 통했다.
BC 44년 카이사르는 고린도를 로마인들이 사는 식민 읍으로 재건했다. 마침내 BC 27년 아가야(지금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일대)속주를 총독부로 승격하였다. 당시 고린도는 그리스인, 로마인, 유대인, 동방인 등 여러 인종이 어울려 사는 인종 박람회장 같은 도시였다. 시민수는 13만 명을 넘는 것 같다. 자연히 종교도 매우 다양해서 마치 종교 전시장 같았다.
이와 같이 바울이 전도한 고린도는 종교 다원사회였고 교통과 상업이 발달해서 경제적으로 윤택했으나, 흔히 항구 도시가 그렇듯이 문화적으로는 천박하고 윤리적으로 퇴패했다. BC 46년 이전의 전설이기는 하나, 고린도 뒷산 꼭대기에 있던 아프로디테 여 신전에는 신창神娼 1천명이 득실거렸다고 한다.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때 아테네에서의 전도는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고린도로 내려가 18개월 동안 머물면서 활발히 전도하여 큰 교회를 세웠다.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고린도에 내려와서 데살로나가 교우들의 충실한 신앙생활을 전하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곧 데살로니가 전서이다. 이 전서는 바울 서간집 중에서 뿐 아니라 신약성서 중에서 가장 먼저 쓴 서신서이다.
고린도 유적은 아폴로 신전, 고린도 시장, 연단 축대(베마 : 아가야의 갈리오 총독이 사도 바울 심문한 곳)등이 있으며, 고린도박물관에는 고린도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고린도는 1,458년 사라센*에게 점령되었고 1,858년 대지진으로 지상에서 사라진 폐허의 도시가 되었다.
*사라센 제국(Saracens) : 이슬람교를 믿는 자들이 서남아시아 일대에 세운 대제국의 총칭.
----- 성경말씀 : 사도행전 18:1~8 -----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하다
01. 이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0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03.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0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0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0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0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0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여기서 바울의 고린도 전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는데, 고린도에 가기 전에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 전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크게 실망한 그는 베뢰아에서 아덴으로 오기를 기다리던 실라와 디모데도 만나지 못한 채 서둘러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갔다.
바울은 이미 아덴에서도 실패의 경험이 있어 마음이 무척 약해졌었는데 고린도에 와보니 너무 도시가 타락하여 있었기에, 두려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동역자인 실라와 디모데도 아직 만나지 못하였기에, 염려도 되고,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해주셨다. 이들 부부는 로마에서 살다가 총독 글라우디오의 유대인 추방령 때문에 고린도로 쫓겨 나온 부부였다.
시기적으로 보면 그들 부부가 바울보다는 조금 일찍 고린도에 왔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위해 황제의 마음을 움직여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부부를 미리 고린도에 보내 놓으신 것이다. 이들은 ‘실패자와 추방자’였고 게다가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친할 수 있었을 것이며, 바울은 큰 도움을 받았다.
----- 성경말씀 : 고린도전서 6:9~10 ; 2:3 -----
바울은 처음에는 고린도의 죄악을 열거하며 두려워하다
- 고린도 전서 5장
0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0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 고린도 전서 6장
0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 고린도전서 2장
0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고대 고린도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위산(시시포스의 산, 아크로 코린트, 570m)이다. 바위산 위에 아크로 고린도성은 몇 중으로 성문을 만들어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기에 적이 들어 갈 수 없는 탄탄한 요새였다. 오디세우스의 아버지인 시시포스는 잔머리 쓰는 것으로 생각해 볼 때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단연 돋보였던 인물로, 그는 잔머리로 신을 기만하게 되고, 결국 죽어서 가혹한 형별을 받게 된다. 바위를 산꼭대기에 올려놓아야 하는데, 이 바위가 정상에 다다르면 '돌 굴러가네' 소리와 함께 아래로 굴러 떨어져서 그는 쇠똥구리처럼 영원히 바위를 굴려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늘 반복되는 인간의 죄된 삶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 가슴이 저리다.
----- 시시포스(Sisyphus)의 신화 ----- 시시포스 또는 시지푸스라고도 한다. 시시포스는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그리스인 시조인 헬렌 사이에서 태어났다. 호머에 의하면 시시포스는 '인간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시포스는 신과 대립하다가 어려움을 겪는다. 헤르메스가 이복형인 아폴론의 소를 훔친 것을 알려주기,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것을 알려주기, 저승사자 타나토스를 쇠사슬로 꽁꽁 묶어 감옥에 가두기 등으로 하데스의 노여움을 사 결국 하데스는 명계에 있는 높은 바위산을 가리키며 그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라는 형벌을 주었다. 시시포스는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바위는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시시포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하데스가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시시포스는 지금도 바위를 밀어 올리고 있다 한다.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영겁의 형벌은 끔찍하다. 언제 끝나리라는 보장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시시포스의 노동 앞엔 오직 영겁의 되풀이 되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도 그냥 매일 의미없이 그냥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생각조각 -----
시시포스여!
2013.4.9. 11:30
시시포스여!
지금 그대는
산등성이 어디쯤에서
바위를 밀어 올리고 있는가
아니면 다시 굴러 내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내려다보고 있는가?
영겁의 세월 동안 계속되는
그대의 무거운 땀의 행진에
하늘에 닿을 경의를 표하며
지금도 그대를 따르는 자들이
수십억이 넘을 수 있음을
즐기며 기뻐하기를
원하노라.
바람은 불고
안개는 흐르고
태양은 돌비늘에 이글거리는,
그리하여 인간 욕망의 거대한 바위를
날마다 끌어 올리는
그대의 후배들이 많이 있노니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고 있는 그대의
계속되는 사투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노라
시시포스여! 수고하라.
우리는
바울을 따라
주님의 따뜻한 품속에
푹 안기리니…….
11:20, 레가이온 길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고대 고린도 시를 돌아보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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