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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교회 > 교회일반
· ISBN : 9791187254614
· 쪽수 : 96쪽
· 출판일 : 2025-03-31
책 소개
목차
교재를 펴내면서 | 6
파트너십 1. 플로렌스 루트와 광주 사람들
플로렌스 루트 선교사를 중심으로 본 동반자 선교(1893~1995년) | 12
1904 광주에서 첫 예배를 드리다 | 14
1905 의료 선교지 광주 제중원이 세워지다 | 15
1908 선교사와 한국인이 서로 도와 여성교육을 시작하다 | 16
1909 기억해야할 이름 윌리 포사이드, 한센환자 돌봄사역을 시작하다 | 16
1920년대 광주 선교구내 모습 | 17
1922 광주여성운동사에 기억해야 할 일들이 일어나다 | 18
1927 플로렌스 루트 선교사가 한국에 도착하다 | 20
1924 플로렌스 루트가 출석한 양림교회 초기역사 | 21
선교사역 동반자 ‘양림정의 전도부인 선신애’ | 23
1929 메리와 플로렌스가 함께 사역하다 | 23
선교사역 동반자 김필례(1891-1983) | 24
선교사역 동반자 조아라(1912-2003) | 26
1933 한센인 행진은 동반선교사역의 역사이다 | 27
1933 광주농업실습학교를 설립하고 함께 사역하다 | 28
1937 신사참배를 거부한 기독학교가 폐교되다 | 29
1941 일제치하 남장로교 최후 4인의 선교사역은 한센인 병원사역이었다 | 31
1950 서로 사랑하고 존경한 플로렌스와 한국인 성도들이 목숨을 건 피난여정을 함께하다 | 32
1952 선교 25주년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감사였다 | 33
1957 한국인에게 선교사역의 지도력을 이양하다 | 34
1959 성경학교를 지역 선교지도력 형성의 터전으로 삼다 | 36
1964 정년퇴직 후에도 사랑의 사역은 계속되다 | 37
1995 한국성도와 플로렌스 루트, 서로를 향한 사랑과 감사가 표현된 마지막 장면은 플로렌스의 장례식이었다 | 39
질문 | 40
인물 : 소심당 조아라(1912-2003) | 41
파트너십 2. 기독청년면려회와 안동 사람들
기독청년면려회를 통해 본 선교사와 한국 청년의 만남 | 48
선교역사에서 본 파트너십: 일제강점기 기독청년면려회 | 50
1909 안동에 선교지부를 설립하다 | 52
김병우와 김영옥| 53
안동 개척 선교사의 부인 새디 이야기 | 53
질문 | 58
1910 안동 선교부의 역사 크로더스 부부 | 59
1917 안동에 온 앤더슨 부부 | 60
1919 기독교를 보는 시각이 바뀐 이유 | 61
1920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인노절기념성경학교 | 62
1921 안동기독청년면려회 종교활동 그 너머 | 63
1921 경북지역 면려회를 조직하다 | 65
안동 청년 권중윤(1900-1927) | 66
1922 면려회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다 | 68
1923 여자 청년계에 새날이 밝아오다 | 69
1920년대 이대위와 기독청년면려회 | 70
경안지역 청년들의 지도자 강병주(1882-1955) | 71
1924 성장하는 기독청년면려회 | 73
1925 월간 「진생」을 발행하다 | 74
유소년 교육을 위한 활동 | 75
1930 세계기독면려회 가입하다 | 76
기독교 농촌운동 | 77
1933 가난한 농촌과 건강한 기독교 신앙 | 79
1932 면려부, 장로교 총회 상설부서가 되다 | 80
1933 지침서 『면려회지남』 발행하다 | 80
1934 전국면려회 날개달다 | 72
1937 청년면려회지도부 탄압받다 | 73
1938 면려회 활동 위축되다 | 85
장로교의 보수화와 일제하 기독청년운동의 결말 | 85
인물 : 이대위(1896~1982) | 88
질문 | 92
더 읽을 거리 | 93
격려사 | 94
책속에서
이 교재는 역사를 알리는 것과 더불어 세대, 국적, 피부색, 성별, 나이, 신체 능력, 성적 지향 등등의 차이를 넘어서서 서로 간의 대화를 촉진하고 우리의 현재를 성찰하기 위해 만들었다.
(프롤렌스 루트 선교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에 끝까지 선교 현장에서 ‘버티는’ 선교사였다. 102세에 소천하기까지 태극기와 애국가 가사를 벽에 걸어두고 매일 한국을 위해 기도했다.
광주민주항쟁 과정에서 조아라가 일하는 광주 YWCA 건물은 시민들의 피난처로 제공되었고, 조아라는 광주 시민사회를 품는 지도자 역할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