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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사/불교철학
· ISBN : 9791189269319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19-05-05
책 소개
목차
•이 책을 쓰게 된 인연 •—•005
제1장 부처[佛·부처님·Buddha]
진리란 무엇인가 —•017
불교라는 방편(方便) —•017
불교(佛敎)라는 말의 의미 —•022
종교(宗敎)라는 말의 의미 —•027
붓다(Buddha)가 계시는 곳 —•034
불전(佛典)에 나타나 있는 고따마 붓다 —•034
고따마 붓다의 성불(成佛) —•039
고따마 붓다의 관조(觀照) 수행[觀修行 vipaśynā] —•043
부처[佛・부처님・uddha] —•047
부처[佛・부처님・uddha]를 찾는 선수행(禪修行) —•047
법안(法眼) 선사의 ‘그대는 혜초니라’ —•051
(1) 법안종을 창시한 법안 선사 —•051
(2) 법안 선사의 병정동자래구화(丙丁童子來求火) —•054
(3) 본칙에 대한 설두 선사의 송(頌) —•059
동산(洞山) 화상의 ‘삼 껍질 세 근[麻三斤]’ —•064
(1) 운문 선사의 법제자 동산수초 화상 —•064
(2) 본칙에 관한 원오 선사의 비평과 해설[評唱] —•065
(3) 본칙에 대한 설두 선사의 송(頌) —•068
운문(雲門) 선사의 ‘똥 젖는 막대기[乾屎橛]’ —•074
(1) 운문종을 창시한 운문 선사 —•074
(2) 똥 젖는 막대기[乾屎橛] —•075
(3)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 —•079
(4) 본칙에 대한 무문(無門) 선사의 송(頌) —•082
(5)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의 자정기의(自淨其意) —•084
(6) 인간무죄(人間無罪)의 선언 —•090
마조(馬祖) 선사의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卽心卽佛]’ —•092
(1) 조사선을 확립한 마조 선사 —•092
(2) 대매법상(大梅法常) 선사의 깨달음 —•096
(3) 『마조록』 「시중(示衆)」의 첫 법문[Ⅰ] —•100
(4) 무문 선사의 평과 송 —•102
마조(馬祖) 선사의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109
(1) 즉심즉불(卽心卽佛)과 비심비불(非心非佛) —•109
(2) 『마조록』 「시중(示衆)」의 첫 법문[Ⅱ] —•112
(3) 고따마 붓다의 중도 대 선언(中道大宣言) —•114
(4) 공사상(空思想)과 중도 —•118
(5) 일념도 얻을 것이 없다[無所得] —•122
(6)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126
(7)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일 뿐이다 —•129
제2장 마음[心]이란 무엇인가
지성(智性)의 세계와 본성(本性)의 세계 —•135
두 개의 마음 —•135
본성 세계의 실재성(實在性) —•139
무분별・무차별의 본성세계에서
불교적 삶이 시작된다 —•145
본성을 깨달아서 얻은 세계 —•151
무념무상(無念無想)과 반야(般若)의 삶 —•154
불교의 근본 뜻은 대상계를 초월하는 것 —•162
평등과 차별 —•162
만법(萬法)과 짝하지 않는 것 —•165
무차별・무분별의 본성적 직각(直覺) —•169
절대 그 자체가 홀연히 나타나다 —•173
불가사의(不可思議) 해탈 —•176
업보(業報)로부터의 해방 —•180
업사상(業思想)이란 무엇인가? —•180
인간과 업은 하나의 물건이다 —•186
업에 묶임은 업을 초월하는 본성적 충동이다 —•188
기도는 업(業)을 여의는 노력이다 —•190
존재의 근원 그 자체는 묶여 있지 않다 —•193
본성 속에 있는 세 갈래 성질 —•197
불락인과(不落因果)와 불매인과(不昧因果) —•197
본성의 세 갈래 성질은 합해져 있다 —•200
자각(自覺)은 인과법칙에 순응하는 것 —•203
일체의 사물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의미 —•207
지성을 초월한다는 뜻 —•207
불매인과와 반야즉비의 논리 —•210
추위와 더위가 올 때는 어떻게 피해야 하나 —•213
인간은 우주보다 크다 —•215
제3장 진리의 실현[大悲]
지혜[智]와 자비[悲]가 한 개의 환(丸)으로 되어 있다 —•221
대지(大智)와 대비(大悲) —•221
대지(大智)가 곧 대비(大悲)이다 —•223
본성적 직각은 동태적(動態的)이다 —•226
법계(法界)의 동력은 대비심 —•226
초월적·종교적 생활의 소식 —•229
인간은 도덕만으로 살 수 없다 —•231
대사일번(大死一番) —•231
본성적 직각의 세계, 사람을 위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장소 —•234
아미타의 원력과 정토의 장엄(莊嚴) —•237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당면의 문제 —•240
대비심이 적면(覿面)에서 체득(體得)되지 않는 한
법계의 풍광은 없다 —•243
저자소개
책속에서
불(佛)이란 산스끄리뜨어 붓다(Buddha)를 줄여서 한자로 음역(音譯)한 말입니다. 현재의 순수한 우리말로는 ‘부처’ 혹은 ‘부처님’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산스끄리뜨어 Buddha를 순수한 우리말로 뜻으로 번역하면, 즉 의역(意譯)하면 무엇이 될까요? 불교 전래 초기부터 중국의 역경사들은 Buddha라는 단어를 깨달음[覺] 또는 깨닫는 것, 깨달은 사람[覺者]이라는 세 가지의 의미로 번역하였는데, 이 번역은 초기불교의 연구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오늘날까지 적합한 번역어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Buddha라는 말에는 깨달음?깨닫는 것?깨달은 사람이라는 세 가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무분별의 분별을 생각으로 그것의 옳고 그름을 가려내어서 납득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의 경험에서 무분별이 분별 속에 스며들어 와 있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의식 속에서 가지가지로 분별을 합니다만, 이 분별은 실은 어느 것이건 절대 무분별 혹은 절대 무의식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본성을 보고 바로 깨닫는 것[直覺]입니다. 무분별의 경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체득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업(業)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흔히 인간은 고(苦)라고 합니다만, 이것은 업에 매여져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아니 매여졌다고 하기보다도 실은 업 자체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업이라고 하면 나쁜 업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업은 본래 행위라는 뜻이기 때문에 선(善)·악(惡)·선도 악도 아닌 업[無記]이 다 같이 업입니다. 업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타당합니다. 다른 유정(有情)·비정(非情)에게는 업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선악의 가치에 대한 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소위 자연의 법칙에서 본능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말하는 윤리적 행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만이 자각을 가진 동물로서, 파스칼이 말한 ‘사유하는 갈대’입니다. 사유하는 것, 자각적으로 사유하는 것으로부터 사물을 보는 것, 적절히 조치를 취하는 것, 잇달아 생각해 나가는 것 등의 활동이 인간에게 발달해 왔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이 자연법인 것에만 묶여지지 않고, 자기로부터 움직여서 나온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자기로부터 움직여서 나온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행위에 도덕적 평가를 가한다고 하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업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바로 업 그 자체로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