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뒤르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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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베버와 함께 근대 사회학의 기초를 놓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에서 싹튼 사회학을 독자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으로 정립하는 일에 누구보다 헌신한 인물이다.
1858년 알자스 로렌 지방의 작은 도시 에피날에서 태어났다. 부친, 조부, 증조부 모두 랍비였으나 그는 집안 전통을 따르지 않고 학자의 길을 걸었다. 종교에 대한 평생의 관심도 신학적이라기보다 학문적이었다. 1879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앙리 베르그송, 장 조레스와 함께 공부하고 철학자 에밀 부트루, 역사학자 퓌스텔 드 쿨랑주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졸업 후 철학 교사로 지내다가 독일로 건너가 사회학을 공부하며 많은 논문을 발표한다. 1887년 보르도 대학에 임용되어 1896년 정교수가 되었다. 당시 그의 지적인 영향을 받은 조카 마르 셀 모스도 이곳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02년 소르본 대학으로 옮겨 1917년 사망할 때까지 사회학과 교육학 교수로 있었고, 1913년 프랑스 사회학회 초대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사회학이라는 학제를 강화하고 그 학문적 토대를 다졌다.
1890년대 주요 저서들을 왕성하게 집필했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아노미의 극복과 사회통합 문제를 다룬 『사회분업론』(1893),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을 선언하고 그 방법론을 제시한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1895), 사회현상으로서의 자살을 통계와 자료를 통해 선구적으로 분석한 『자살론』(1897)을 차례로 펴냈다. 1898년 『사회학 연보』(L’Anne’e Sociologique)를 창간, 당대 지성들이 참여하면서 이른바 뒤르켐 학파를 형성했다. 1912년 ‘사회적 사실’로서의 종교를 분석한 『종교적 생활의 원초적 형태』를 펴냈다. 1916년 전쟁에 나간 아들이 사망하자 충격을 받고, 이듬해 뇌졸중으로 삶을 마감했다.
사회 문제는 ‘구조적’이라고 말할 때 뒤르켐은 여전히 호명된다. 근대국가가 수립되던 프랑스 제3공화국의 혼란기를 살며 연대와 통합, 개인과 공동체 문제에 천착하며 자신의 사상을 펼쳤던 뒤르켐은 오늘 우리 사회에도 깊은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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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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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학문을 구별하지 말아라’라는 C. W. 밀즈의 말을 좋아한다. 한국의 교육학은 한국인의 교육 인식과 행동의 실체를 진솔하게 그려 냄으로써 국민에게 봉사하는 담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외래지식 중심의 교육학이 토착화되어야 한다는 정신과 방법론을 담아 한국교육학의 논리와 운동(1989)을 발표했다.
- 교육학이 비판정신을 담고 비판활동을 통해 성숙해 가야 한다면서 교육학논
쟁(1994)을 출간했다.
- 국민의 교육열이 비하되고 낭비되는 것을 생산적으로 경영되기를 바라면서 교육열 올바로보기(2003), 교육열을 알아야 한국교육이 보인다(2011)를 썼다.
- 학부모의 질이 교사의 질 못지않게 중요한 현실을 생각하면서 학부모와 공교육(공저 2019), 대한민국학부모(공저 2022)를 공동 집필했다.
- 공교육 중심주의를 넘어 공교육의 새로운 개념을 구상하면서 국가총교육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문 교육미래화를 위한 학부모 정책과 공교육 개혁의 방향 (2017)을 썼다.
- 교육학지식이 모든 교육주체에게 귀기울여 교육학 지식의 민주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부모가 본 교육학 , (한국교육학 70년 성과와 과제, 2023).현재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이고, 교육사회학회 회장, 학부모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선임위원을 역임했다. 서울대 사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키워드로 본 주요 관심 사항은 교육학의 토착화와 민주성 확보, 자율적 지속가능 학교혁신체제, 교육민주화, 교육열 경영, 학부모의 교육시민적 역할이다. 이런 키워드들이 어떻게 결합되어 민주성과 혁신성을 갖춘 교육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지를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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