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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90487924
· 쪽수 : 297쪽
· 출판일 : 2021-06-26
책 소개
목차
004 감사의 말(영어판)
006 감사의 말(한국어판)
010 발간사_류진
014 추천사_최종고
016 추천사_송유면
022 제1장 우리 엄마
034 제2장 기아(饑餓)와 골목길
046 제3장 법원리
056 제4장 홀트 입양과 질병
068 제5장 학교
078 제6장 헌병, 우기(雨期) 그리고 산
090 제7장 행복 보육원
104 제8장 새로운 학교 그리고 D 씨 부부
116 제9장 꿈과 저수지
126 제10장 펄 S. 벅 희망원(Opportunity Center)
136 제11장 펄 벅, 나의 마지막 의무 그리고 미국
144 제12장 그린 힐스 농장
154 제13장 새어머니, 새 학교
176 제14장 캐럴
184 제15장 팔머 하우스와 프라이스 씨 부부
204 제16장 펄 S. 벅 어머니의 죽음과 나의 입양
210 제17장 더그 헤닝과의 결혼
220 제18장 네 아들 더글러스, 데이비드, 대니엘 그리고 피터
238 제19장 의회 청문회와 카네기홀
244 제20장 고국 방문
262 제21장 가정
266 에필로그
282 해설_한국전쟁 혼혈고아의 감동적인 성장 이야기 /정정호
책속에서
나는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한국인 어머니와 전쟁에 참전한 미군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토록 단순한 사실로 인해 여러 면에서 나의 이야기가 생겨났다.
나의 한국 어머니, 엄마는 북한 땅에 있던 아버지 농가에서 성장했다. 엄마는 어린 시절 먹을 것이 없어 배가 자주 고팠다. 엄마에게는 열 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는데 쌀과 채소는 늘 부족했다. 북한의 공산주의 지도자 김일성은 게릴라 대원들 그리고 소련(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엄마가 살던 지역으로 들어왔고 이미 빈약한 식량을 약탈해갔다. 엄마는 부모 형제자매와 함께 지내는 건 좋았지만 굶주림이란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십 대 후반의 엄마는 언젠가는 고향 땅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모두 상실했다. 그녀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 깨달았다. “우리 대가족은 먹을 음식이 충분하지 못했어. 난 우리 집 식구들이 늘 걱정스러웠단다. 내가 떠나면 부양가족이 한 명 줄어들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 엄마는 말했다. 종종 나는 엄마가 어떻게 가족을 두고 떠나올 수 있었는지 참으로 궁금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나는 홀트 국제 입양기관에서 살게 하려고 엄마가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매일 거기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고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심지어 간식까지 먹는 게 나는 참으로 좋았다! 이곳의 보모들은 나와 다른 아이들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나는 많은 친구와 놀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엄마가 몹시 그리웠다. 엄마와 떨어져 보육원에서 지낸 것은 엄마가 나를 부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순이야, 네가 달을 볼 때면 엄마도 똑같은 달을 보면서 네 생각을 할 거야.”라고 엄마는 말하곤 했었다. 엄마와 오래 떨어져 있을수록 더는 배고픔으로 고통받지는 않았지만, 엄마 때문에 내 마음은 더 아팠다. 엄마,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는 언제 나를 보러 올 거야? 어느 날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엄마가 운동장 모서리에서 나한테 손짓하는 게 보였다. 나는 엄마에게로 있는 힘껏 달려갔다. 엄마는 내 손을 붙잡더니 재빨리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목도리로 나를 가리고는 엄마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를 택시에 태웠다. 모든 일이 너무나도 빨리 일어났지만 나는 매우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또다시 엄마 품에 안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집에 도달했다. 엄마와 나는 또다시 함께 지내게 되었다.
어머니는 또한 나에게 자신은 단순히 글쓰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종이에 표현될 필요가 있는 이야기, 생각, 느낌 등 말할 거리가 있으므로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중국 생활에 깊숙이 그리고 단단하게 사로잡혀 있었으며 이야기 형식으로 그곳에서의 경험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가 있었다. “내가 어린 소녀였을 때, 나는 산문보다는 시 쓰는 걸 더 좋아했단다.”라고 어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또한 만약에 자신이 미국인 선교사의 외동딸로 중국에서 따돌림당하며 살지 않고 웨스트버지니아에 있던 조부모 저택에서 성장했더라면 어떤 종류의 시나 산문을 쓸 수 있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글쓰기 방식이 자신이 받은 동양과 서양의 양육방식을 모두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사실을 깊이 생각해보았다. “나도 어머니와 똑같이 동양 출신이기도 하고 서양 출신이기도 해요.” 이 대화는 어머니가 내 스케치북을 보고 싶다고 하시는 바람에 중단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그린 몇몇 그림을 흡족하게 생각했다. 내가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방금 완성한 어머니 다리의 스케치를 어머니는 찬찬히 들여다보시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날 오후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은 아직도 소중한 기억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오토만 스툴에 놓여 있던 어머니 다리의 그림을 나는 아직도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