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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1306552
· 쪽수 : 222쪽
· 출판일 : 2023-11-30
책 소개
목차
제1부 물고기가 풍덩
흙의 결단
고려인의 푸른 꽃
그대로 멈춘, 멋
긴 목에 끌리다
물고기가 풍덩
달을 건너, 달을 품은
딱딱하고 차가운
사기장의 공방
물꽃을 만나다
천년을 덖다
제2부 흔들리는 거울
봄 향기 띄워 놓고
오래된 문을 열면
찻잔에 흐르는 사계, 가을
찻잔에 흐르는 사계, 겨울
찻잔에 흐르는 사계, 봄
찻잔에 흐르는 사계, 여름
처지와 경지
치자꽃 차회
포르스름, 천년 향
흔들리는 거울
제3부 그늘의 편애
나무에 들다
그늘의 편애, 이끼
구름 이야기, 찝질한 그리움
느티나무에 기대 보면
땅 씻는 일
ㄹ과 ㅁ
비에게 맞다
소리 수집
오월의 배후
겨울비 안개 속에
제4부 머뭇거리는 종소리
돌아온 해와 달
머뭇거리는 종소리
목련꽃으로 핀 당신께
물 위에 핀 경회루
뭍에 세운 돛대
빛이 걷는 길
시원을 찾다
옥을 모은 집
저수지 가는 길
천년의 골격
제5부 나뭇가지에서 나는 소리
난(蘭), 넌
거장의 시선
고귀함의 의미
마른 몸에 우러르는, 강대나무
병인 양 금인 양
안심을 처방받다
오래된 숲길에서
기운을 그리다
함초롬 뒤끝
나뭇가지에서 나는 소리
저자소개
책속에서
오래 신어서 길들인 고무신처럼 버리지 못하는 정(情)이 있다.
평생 써서 지워진 지문처럼 닳아도 버릴 수 없는 결이 있다.
정과 결을 결어서 광목 한 필 얻고 싶다.
짜고 나면 설피고 성글어
머리맡에 두어도 발치께로 밀려난다.
─ 본문 ‘작가의 말’ 전문
이끼는 여리고 부드러운 존재만으로도 나무와 새와, 또 다른 생명을 부양한다. 곤충들의 서식지로 꾸며 놓은 초록의 양탄자는 자식들을 위해 아랫목에 깔아 두시던 어머니의 솜이불이다. 작은 체구로 가족을 건사하고 눅눅한 그늘을 자처하는 이 땅의 어머니는 만물에 육화된 존재다. 오랫동안 땅과 하나로 낮게 깔려 있어 존재마저 관심 두지 못했다. 소리 없는 손이어서 어머니 그 젖은 손을 잡아드리지 못했다. 이끼 위에 공손히 손을 얹는다.
─ 본문 「그늘의 편애」 중에서
여인의 작은 소(沼)에 비친 희미한 달빛은 애원보다 간절했다. 아이만 무사하게 해달라고 매달리는 기도는 하루하루 달빛이 포개지며 부풀기 시작했다. 절박한 소원의 끝은 애달프기가 달빛 같아 숨소리를 키워갔다. 밤이면 북두로 은하를 퍼 올리고, 낮이면 햇살을 길어 항아리에 퍼 담았다. 감천에 기대기 전에 지성으로 홀로 섰다. 하늘이 듣지 못할지라도, 하늘에 닿지 못할지라도 열 달의 항아리를 까치발로 채웠다.
여인은 실낱같은 몸에 우주만 한 달을 안고 달을 건넜다. 생과 사를 포개고 천 길 불길을 건넜다. 터진 모서리를 문지르며 달빛 나이테 한 올 한 올 맥을 짚어 온전한 달 항아리를 빚어 냈다.
─ 본문 「달을 건너, 달을 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