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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719222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3-11-10
책 소개
목차
제1부 강의 심장을 훔칠 수 있을까요
자연주의적 에로스/ 새들이 날지 않던 날/ 어떤 감정에 대하여/ 당신에게만 좋은 사람이고 싶어요/ 심천역에서/ 냥이의 괜한 사관史觀/ ~스럽다는 게 가벼워지도록/ 관계/ 반달/ 끄트머리에서 지탱하는 힘/ 순환/ Alt+s(저장하기)
제2부 호박 속처럼 환해야
수상한 평행이론/ 우리 애인/ 이별에 대한 적분/ 천천히/ 흰 구름에 부시다/ 진화 혹은 퇴화/ 물그림자/ 첫눈이 새봄에 내린다면/ 자기가 만들어지기까지/ 모모를 찾아서/ 착각/ 아포리즘에 반反한 저녁/ 모과나무 묘비명
제3부 뿌리들 안으려면
잡곡밥/ 눈이 큰 아이/ 큰 바위 얼굴 / 안주를 감추다/ 염소와 엄마/ 영자 언니/ 염전/ 바오밥나무에 감꽃이 피어날까/ 다락/ 아이스크림이모가 사막에서 사는 법/ 가을 소나기/ 냉이와 방정식/ 무당벌레, 날개를 접다/ 촌놈/ 마루와 함께 한 겨울/ 당신의 손
제4부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입술/ 꽃먼지 1/ 그만하자/ 꽃먼지/ 강여울에 등을 기대다/ 봉숭아/ 미루나무/ 설화가 열리는 마당/ 겨울나무를 실은 종점행 버-스/ 속리俗離 가는 길/ 담쟁이 넝쿨에게/ 구두/ 내 집 앞에 매화가 피어있다는/ 봄비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시작을 알 수가 없다 씨 뿌리지 않은 독초처럼 자라나 어느새 전신을 마비시켜 버린 두려움마저 새롭지 않다 메두사의 섬광을 본 듯 순식간에 생겨난 실금들로 이루어진 오래된 무늬들 차라리 썩 잘 어울리는 낙관, 회색 조의 그림이 되어 견고한 성벽을 장식한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옅은 불빛마저 꺼진 뒤 영화가 시작되기 바로 전 찰나의 적요 어둠에 익숙하기 위해 혹은 새로운 빛에 적응하기 위해 가졌던 눈 깜빡임 그러했던 때가 흐릿한 기억이지만 있긴 하였다 하지만 지금 파괴의 본능조차 묻어버리는 아득한 눈의 깊이 떼어내고 씻어낼수록 그리움의 눈곱은 덧대어지는데
바람 거세던 유년의 기억 속 몇 날 며칠 동녘을 밝히던 원인 모를 산불 번져가듯 얼마간 휘감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소리 없이 누군가 건너와 주기를
이 너머로,
그럼에도 다시 또 익숙하게 내려지는 블라인드
캄캄한 밤하늘에는
어제도 오늘도
먼 별들이 총총하다
- 「어떤 감정에 대하여」 전문
너를 만날 때마다 반짝이는 강돌을 하나씩 삼켰어
내가 삼킨 건 복사꽃 그늘에 살던 아기뱀 몸 안에서 점점 자라나 근질거리는 이빨로 심장을 깨물거나 울컥 독을 쏟아내곤 했지 그러한 저도 많이 아플 거라 한 번씩 꺼내어 놓아주려 해도 차마 떠나가지 못하는 토막 난 어둠 꽃잎처럼 흩날리더라
언제까지나 너의 중심에 들어앉아 촘촘히 사랑할 거라 새겨둔 저 깊은 고요 내가 삼킨 건 등받이가 부서진 벤치였나봐 내려앉거나 올라서던 잿빛 불안들 기어코 레일 위를 달려와 길들여진 모든 건 언젠가 사라진다는 바람의 비문을 속삭이지만
예정된 이별에 잠들지 못하는 간이역 이따금 열차가 멈출 때면 내 안의 강돌들 온몸을 기울여 까맣게 잊었던 기적 소리를 듣기도 하더라
- 「심천역에서」 전문
새벽녘 안개는 잠시나마 경계의 시간을 한 덩어리로 뭉쳐놓는다 허락된 순간 저저금 뿌려진 씨앗들이 깨어나기 전 찬란한 어둠의 꼬리를 물고 빛의 탐스러운 꼭두머리를 잡아 하강 혹은 비상을 준비한다
어섯눈을 틔운 시클라멘 이파리들이 몇 잎 간당간당 자라고 있다 행여 마를 새라 혹여 알뿌리가 썩진 않을까 흙도 나도 날마다 눈을 맞춘다
세상의 중심인 양 꽃대가 올라오면서 그나마 시늉만 하던 잎들은 둥근 재생의 공간 속으로 숙명인 듯 들어서고 있다 서늘한 정적이 흐른다 꽃대는 애도의 몸짓으로 내처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이 피어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잎들을 보낸 꽃대가 비로소 꽃으로서 그 도도한 호흡을 유지하던 한 달여간 사라진 잎들의 태동 소리를 나는 듣지 못하였다 마침내 뿌리의 복부가 불러올 즈음 단 한 번도 펄럭여 보지 않았던 기나긴 날개깃을
꽃은 기어이 접고 말았다
- 「순환」 전문
딸아, 둥근 내 딸아
가을볕 쨍한 날
속 좋은 호박 썰어 잘 말려 두었다가
정월 대보름, 들기름에 달달달 볶아 먹으면
휘영청 달 밝은 날에 먼 길 떠날 수 있다 하더라
그믐날 죽으면 어때서 그래
덩굴져 허공을 오르던 우리네
그저 감감하기만 하던 앞날이었지만
호박꽃 같은 달빛 아래서라야
보내는 이도
돌아가는 길도
환하게 이어질 테니
- 「수상한 평행이론」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