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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한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91191816112
· 쪽수 : 302쪽
· 출판일 : 2022-06-17
책 소개
목차
서문
1부
2부
3부
4부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20세기 초에 한 사내가 있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포근한 보료에 누워서 솜이불을 덮고, 신생아처럼 오래 자며 선명한 꿈을 꾸는 일이었다. 사내보다 네 살 위인 그의 아내는 남편을 귀여워했다. 그래서 남편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고 주로 원서동에서 시간을 보냈다. 당시 조선왕조가 무너지는 바람에 궁에서 나온 수라간 나인들이 서울 원서동에 모여 살았는데, 사내의 아내는 그들에게 떡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몇 년 후 꿈 많은 사내와 그의 아내는 수성동 계곡 앞, 즉 지금의 종로구 옥인동에 작은 떡집을 열었다. 가장 잘 팔렸던 것은 쑥절편으로, 남편이 꿈에서 본 거북이나 연꽃을 나무에 조각하여 긴 떡살을 만들면 아내가 그걸로 반죽을 눌러 먹음직스러운 절편을 완성했다.
하루는 단골 아낙이 고사떡을 맞추러 왔다. 떡살을 깎던 떡집 사내가 아는 체했다.
“또 시달렸소?”
“아휴, 말도 마오.”
아낙에게는 딸만 여섯이 있었는데, 장손을 보지 못해 속 시원히 죽지도 못하겠다는 시조부의 등쌀에 또다시 임신을 준비하던 차였다. 이틀 뒤 떡을 찾으러 온 아낙에게 떡집 사내가 말을 걸었다.
“이보, 내가 간밤에 태몽 같은 걸 꿨는데 사볼라오?”
“태몽? 용꿈이라도 꿨소?”
“내용을 말하면 쓰나. 꿈 기운이 새면 어쩌려고.”
“그럼 듣도 못한 남의 꿈을 어찌 믿고 사겠수?”
떡집 사내가 기다란 쑥절편을 흔들었다.
“요 떡을 걸고 맹세하지. 기막힌 꿈이었다니까?”
아낙은 떡을 오물거리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허구한 날 고사떡 맞추러 오는 게 딱해 그러지. 아들 보내달라고 그리 비는 댁에서 길몽이 왜 아니 필요하겠소? 어떻게, 내 꿈 살 테요, 말 테요? 싫음 딴 집에 팔고.”
그날 떡집 사내는 장가를 들고 처음으로 아내의 손을 빌리지 않은 밥벌이를 했다. 직접 벌어보니, 그 맛이 좋았다.
곤히도 자는구나.
좋겠다, 네놈은.
우리 마누라 뱃속도 훤히 보고
꿈으로 이웃들 인심 사며 돈까지 만지니 참말 좋겠다.
나는 우리 마누라 속도 모르고
남들 소원 들어줄 재간도 없으니 깜냥에 맞춰 이리하련다.
내 너를 오래도록 미워하고 저주하리라.
너의 자손도 널 닮아 꿈을 잘 꿀지언정
내 저주를 피해가진 못할 게야.
들어라! 올해의 마지막 그믐달이 뜨는 밤,
너는 돼지의 아비가 되리.
네 아이가
내가 살을 가르고 피를 뽑아낸 돼지 새끼를 쏙 빼닮을 테니.
돼지는 장차 물고기의 아비가 되리.
돼지가 낳을 아이가
저 앞 어물전에서 메말라가는 조기 새끼를 쏙 빼닮을 테니.
물고기는 장차 나무의 아비가 되리.
물고기가 낳을 아이가
네놈이 떡살 깎으려 동강낸 계수나무를 쏙 빼닮을 테니.
못 먹고 못 배운 나란 작자도
볍씨만 한 양심이란 물건은 뱃속에 지니고 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