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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대학교재/전문서적 > 어문학계열 > 국어국문학 > 한문/한자
· ISBN : 9791192628677
· 쪽수 : 640쪽
· 출판일 : 2026-10-05
책 소개
목차
발간사 _ 청명 선생님의 ‘한문 강좌’ 시리즈를 펴내며(성태용, 청명문화재단 이사장)
1부 _ 한국 고사
1. 백결선생의 방아소리
2. 계백의 최후
3. 손순이 어린아이를 묻다
4. 양산가
5. 설씨가 약속을 지키다
6. 물계자는 자기의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
7. 신충이 갓을 걸다
8. 소지왕이 거문고 상자를 쏘다
9. 세속오계
10. 원효는 얽매이지 않았다.
11. 마의태자
12. 고려 태조 왕후 유씨
13. 서희는 외교를 잘했다
14. 최충의 구재(九齋)
15. 이자현이 청평산에 은거하다
16. 현덕수는 청렴하고 정직하였다
17. 윤언이가 불법을 좋아하였다
18. 김황원은 문장이 유행을 따르지 않았다
19. 정서의 과정곡
20. 의천이 불경을 간행하였다
21. 김부식과 정지상
22. 김의원이 훔친 물건을 돌려주었다.
23. 손변이 재판을 잘 판결하였다.
24. 안전은 바른 길을 지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25. 유승단이 수도를 강화로 옮기는 것을 반대하였다
26. 주열은 까다롭거나 잘지 않았다
27. 이규보는 칠현에 끼이려 하지 않았다
28. 우탁이 바른 말로 간하였다
29. 이영은 그림을 잘 그렸다
30. 최누백이 범을 잡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31. 이보림은 행정에 있어 엄정하고 명쾌하였다
32. 최영의 민둥무덤
33. 정몽주의 단심가
34. 이성계 운봉 싸움에서의 큰 승리
35. 길재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았다
36. 조운흘이 거짓 청맹과니 노릇을 하다
37. 양녕대군과 효령대군
38. 왕씨의 수난
39. 유관은 청렴하고 정직하였다
40. 황희는 관후하였다
41. 윤회의 넓은 아량
42. 맹사성의 “공·당” 문답
43. 문종은 글씨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렸다
44. 세조가 왕위를 빼앗다
45. 사육신
46. 단종이 접동새에 대하여 지은 시
47. 이용은 글씨를 뛰어나게 잘 썼다
48. 김시습이 종적을 불문에 숨기다
49. 김수온은 문장이 뛰어났다
50. 최지는 임금이 사복차림으로 나온 곳에서 만났다
51. 이석정이 속임을 당하여 장원을 빼앗겼다
52. 홍일동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53. 한계희는 청렴한 절조로 자신을 지켰다
54. 윤효손의 풍자시
55. 연산군은 방탕하고 음란하였다
56. 유자광은 간교한 지혜로 미리 죽은 뒤의 일까지 마련하였다
57. 조광조가 야인을 다루는 것을 논의함
58. 정붕은 가난한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겼다
59. 김안국은 계산을 정확히 하였다
60. 개성의 세 가지 명물
61. 이달은 시를 잘하였다
62. 신용개, 국화 여덟 포기와 함께 술을 마셨다
63. 상진은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아니하였다
64. 박영은 기를 죽이고 학문을 하였다
65. 임형수의 호방함
66. 이주경은 단소를 불어서 화를 면하였다
67. 조식은 학문을 철저히 하고 강력히 실천하였다
68. 난설헌은 시를 잘 지었다
69. 옥봉 이씨는 시로 구속된 사람을 석방시켰다
70. 백광훈을 조룡대에 견주었다
71. 유조인은 인자하여 짐승이나 미물을 사랑하였다
72. 이지함이 백성들에게 생활방도를 가르치다
73. 이후백은 청탁을 받지 않았다
74. 유정은 적 앞에서 보물을 이야기하였다
75. 김성일이 대신의 잘못을 규탄하다.
76. 유성룡은 문서를 다루는 재주까지 겸비하였다
77. 홍난상은 닭 소리를 갈매기 소리라고
78. 권필의 궁류시
79. 유몽인의 과부 시
80. 김신국이 지혜로 범인을 살렸다
81. 덕원령이 내기바둑을 두어 속임을 당하였다
82. 홍서봉이 연꽃을 꺾고 지으라는 대로 시를 지었다
83. 김득신은 글을 많이 읽었다
84. 김창흡이 우연히 시를 잘 짓는 중을 만났다
85. 남용익이 지은 시가 자기의 운명을 미리 맞히었다
86. 우복룡이 가난한 백성이 짊어진 나라의 빚을 갚아 주었다
87. 정충신은 거만한 것이 장점이다
88. 이정이 그림을 잘 그렸다
89. 한호는 글씨가 조화(자연)의 힘을 빼앗았다
90. 김현성은 행정사무에 서툴렀다
91. 박노의 종 논학은 지혜와 용맹을 모두 갖추었다
92. 강효원이 재신을 매도하였다
93. 김명국은 취했을 때의 그림이 더욱 좋다
94. 오달제는 시를 지어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였다
95. 황순승은 세상에서 ‘황고집’이라 한다
96. 박엽은 어릴 적부터 시를 잘 지었다
97. 이시백이 꽃나무를 짓밟아 없애 버렸다
98. 정순왕후는 머리가 좋았다.
99. 전백록은 기걸하였다
100. 전종영은 목표를 세우고 공부를 부지런히 하였다
101. 정홍순은 일을 신중히 처리하였다
102. 오효성의 충성
103. 한원이 은혜를 베풀고 보답을 받았다
104. 김만중은 어머니를 섬기는 데 효성이 지극하였다
105. 채제공은 어릴 적부터 큰 뜻을 가졌다
106. 최북의 익살
107. 오도일은 술을 좋아하여 고질병이 되었다
108. 이언진은 글씨를 빨리 쓴다
109. 김홍도가 해상군선도를 그렸다
110. 조광일은 가난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였다
111. 조수삼의 열 가지 뛰어난 것
112. 정약용은 역사상 위대한 학자이다
113. 김정희는 학문과 예술이 모두 높은 경지에 달하였다
114. 이상적과 「세한도」
2부_중국 고사
1. 영첩은 창을 거꾸로 잡았다
2. 맹자의 어머니가 베틀을 잘랐다
3. 안숙자는 촛불을 들고 있게 하였다
4. 구천은 강물에 술을 쏟았다
5. 범여는 호수(동정호)에 배를 띄웠다
6. 사어는 죽어서 간하였다
7. 변화가 옥을 위하여 울었다
8. 칠실에 사는 여인이 아욱이 다칠 것을 걱정한다
9. 오릉자종은 임금이 초빙하는 것을 사양하였다
10. 제나라의 왕후가 옥고리를 깨뜨렸다
11. 연소왕이 대를 축조하였다
12. 조승이 곱추에게 사과하였다
13. 풍훤은 빚을 탕감하였다(1)
14. 풍훤은 빚을 탕감하였다(2)
15. 초장왕이 갓끈을 끊었다
16. 전단이 소에 불을 질렀다
17. 단간목은 많은 의(義)를 가졌다
18. 중련이 바다에 빠져 죽겠다고 하였다
19. 전횡을 위하여 애도하는 노래
20. 빨래하는 부인이 음식을 제공하였다
21. 숙손통이 예법(禮法)을 만들었다
22. 옹치를 먼저 제후로 봉하다
23. 정장(정당시)은 역마를 상설하였다
24. 문옹이 학교를 일으켰다
25. 회남왕은 학문을 좋아하였다
26. 이광이 돌을 쏘았다
27. 이릉이 처음으로 다섯 자의 시를 지었다
28. 소무는 절(節)을 갖고 있었다
29. 종군은 출입증(出入證)을 버렸다
30. 문군이 술집을 차렸다
31. 주매신의 아내는 땔나무 채취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32. 동봉이 사람을 살렸다
33. 반씨 여인이 임금과 함께 연을 타는 것을 사양하였다
34. 왕상은 헛소문을 가라앉혔다
35. 엄릉은 돌아가서 낚시를 즐겼다
36. 송홍과의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37. 양홍의 오희가(五噫歌)
38. 종리의는 진주를 버렸다
39. 조일은 절하지 아니하였다
40. 취직 통지를 받은 모의
41. 장강은 수레바퀴를 묻었다
42. 닭 잡고 쌀밥 지어 놓고 범식을 기다리는 장소
43. 진번은 의자를 내려놓는다
44. 왕돈과 비단 이불
45. 진식은 도둑에게 물건을 주었다
46. 임종의 겹친 모자
47. 유관의 버들 회초리
48. 총명한 공융
49. 가종은 포장을 걷어 올렸다
50. 화타는 환자의 배를 해부하였다
51. 재주가 뛰어난 양수
52. 돈 냄새 나는 최열
53. 혼자서 웃는 초주
54. 허소의 인물 평론
55. 진복의 하늘 문답
56. 감녕의 사치한 생활
57. 수저를 떨어뜨린 유비
58. 적이 보낸 약을 먹은 육항
저자소개
책속에서
신라 소지왕이 천천정(天泉亭)에 갔는데 이때에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었다. 쥐가 사람말을 하기를 “까마귀 간 곳을 찾아라” 하니 왕이 기사에게 명령하여 쫓아가게 하였다.
길에서 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보다가 까마귀 있는 곳을 놓쳐 버렸다. 이때에 늙은이가 못 가운데서 나와 봉한 편지 한 통을 바쳤다. 겉면에 쓰여 있기를 “뜯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뜯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되어 있었다.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기보다는 뜯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하였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두 사람은 서민이고 한 사람은 왕이다” 하니 왕이 그렇게 여기고 뜯어 보았다. 편지의 내용에는 “거문고 상자를 쏘아라”라고 되어 있었다.
왕이 궁에 들어가서 거문고 상자를 보고 쏘았다. 내전(内殿)의 분수승(焚修僧)이 왕비와 몰래 정을 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잡혀서 죽었다. 그리하여 그 못을 명명하기를 서출지(書出池)라 하였다.
(新羅炤智王, 幸天泉亭, 時有烏與鼠來鳴, 鼠作人語云: “烏去處尋之.” 王命騎士追之. 路見兩猪相闘,忽失烏所在, 時有老翁, 自池中出, 奉一封書, 外面題云: “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 王曰: “與其二人死, 莫若不開.” 日官奏云: “二人者庶民也, 一人者王也.” 王然之, 開見, 書云: “射琴匣.” 王入宮, 見琴匣射之, 乃内殿焚修僧與宮主潜通也, 二人伏誅, 因命其池曰書岀池.)_『삼국유사』
신혜왕후 유씨는 정주(貞州) 사람 천궁(天弓)의 딸이다. 궁예(弓裔)의 말기에 홍유(洪儒)·배현경(裵玄慶)·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謙)이 태조의 집에 가서 폐립(廢立)을 논의하려 하였는데 태조는 왕후가 그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왕후에게 이르기를 “채소밭에 아마 새로 익은 참외가 있을지 모르니 가서 따 오시오” 하였다. 왕후는 그 뜻을 알고 나갔다. 그리고 북쪽 문에서 몰래 장막 안으로 들어왔다. 이때에 여러 장군이 드디어 (왕으로) 추대할 뜻을 말하였다. 태조는 화를 내고 매우 완강하게 거절하였다.
왕후가 갑자기 막 안에서 나와 태조에게 말하기를 “의로운 사람을 천거해서 나쁜 사람을 대신하는 것은 예부터 그러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 장군의 의논을 들으니 나도 의기가 솟아나는데 더구나 장부임에 있어서야?” 하고서 손수 갑옷 깃을 들어서 입혀 주었다. 여러 장군이 붙잡고 옹위해서 나갔다.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神惠王后柳氏, 貞州人, 天弓之女也. 弓裔末, 洪儒·裵玄慶·申崇謙·卜智謙, 詣太祖第, 將議廢立, 不欲令后知之, 謂后曰: “園中豈有新瓜乎? 可摘來.” 后知其意, 出, 從北戶潛入帳中, 於是, 諸將遂言推戴之意, 太祖作色, 拒之甚堅, 后遽從帳中出, 謂太祖曰: “擧義代虐, 自古而然, 今聞諸將議, 妾猶奮發, 况丈夫乎?” 手提甲領以被之, 諸將扶擁而出, 遂卽位.) _ 『고려사 열전 1』
양녕대군(讓寧大君) 제(禔)는 태종(太宗)의 맏아들이요, 효령대군(孝寧大君) 보(補)는 태종의 둘째 아들이다. 처음에 양녕대군을 세자(世子)로 봉했는데 공부는 힘쓰지 않고 놀이와 여자만을 좋아하였다. 태종은 마침내 이를 쫓아내고 셋째아들인 충녕대군(忠寧大君) 도(祹)를 세워 세자로 삼았으니 이가 곧 (뒤의) 세종(世宗)이다. 어떤 이는 “양녕은 태종이 세종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곧 거짓 미친 척하여 자리를 양보했다”고 한다. 평소에 자기 생활이 매우 호화스러웠고 술, 여자, 사냥하는 이외에는 하나도 손대는 일이 없었다.
효령대군은 부처를 섬기는 일에 깊이 빠져 있었다. 한번은 불사(佛事)를 거행하면서 양녕을 초청하였다. 양녕은 사냥꾼과 활잡이를 데리고 사냥개를 몰고 사냥하는 장비를 싣고 몰래 토끼와 여우를 잡아가지고 가서 불사에 참여하였다. 얼마 후에 사냥꾼은 잡은 짐승을 들여오고 주방에서도 불고기를 들여오고 시중드는 사람은 술을 들여왔다. 보(補)가 마침내 부처 앞에 절하며 머리를 조아릴 때에 양녕은 불고기를 들고 예사롭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보는 정색을 하며 “형님! 오늘은 술과 고기는 좀 그만하시오” 하였다. 양녕은 웃으며 “나는 평생에 하늘에서 너무 큰 복을 타고나서 살아서는 왕의 형이고 죽어서는 부처의 형이 될 터인데 무엇 때문에 고생을 해야 하느냐?” 하였다. 부처는 보를 가리킨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를 통쾌하게 여겼다.(讓寧大君禔, 太宗長子, 孝寧大君補, 太宗第二子也. 初封讓寧爲世子, 不務學業, 淫於聲色, 太宗乃廢之, 而立第三子忠寧大君祹爲世子, 是爲世宗. 或云: “讓寧知太宗意在世宗, 卽陽狂, 以讓之.” 云, 平生自奉甚厚, 酒色游獵之外, 一不着手. 孝寧佞佛, 嘗作佛事, 請讓寧, 讓寧率田人射士, 牽黃犬, 載獵具, 陰使擊兎伐狐, 往預佛事, 俄而, 田人進獸, 庖人進炙, 御人進酒, 補乃拜佛叩頭, 讓寧撮炙飮酒自若, 補正色曰: “大兄今日姑止酒肉.” 讓寧笑曰: “僕平生天授福甚厚, 生爲王兄, 死爲佛兄, 不可作苦.” 佛指補也, 士論快之.) _ 『추강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