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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생명과학 > 생명과학
· ISBN : 9791196079352
· 쪽수 : 132쪽
· 출판일 : 2019-12-13
책 소개
목차
I. 프롤로그: 과학자가 글을 내는 이유 003
생명과학은 억울하다 010 / 신약을 만들고 싶은 식물학자 012 / GMO도 문제다 015 / 그래서 나는 017
II. 식물학자의 이상한 고민 019
병을 고쳐보자 021 / 오래된 고민 023 / 키가 작으면 낟알이 많을까? 025 쌀보다 난치병 029 / 사고 덕분에 얻은 기회 032 / 비싸고 오래 걸린다 037 / 즐거운 상상 040
III. 동물세포는 훌륭했다 049
이미 잘 하고 있다 051 / 규제과학은 규제만하는 것이 아니다 054 / 식물에는 없는 규제과학 057 / 잘하고 있지만 완성은 아니다 060
IV. 식물로 해보기 067
첫 번째 오해는 저평가 069 / 두 번째 오해도 저평가 071 / 면역 시스템 074 식물이 만드는 항암 치료제 079 / 식물공장 081 / 아이디어 1 084 / 아이디어 2 087 / 실험 089 / 상상 090 / 적용과 한계 093 / 당 사슬을 뺀 허셉틴 099 / 옵션으로 붙을 수 있는 꿈들 106
V. 에필로그 109
선입견과 SF소설 111 / 손 내밀 준비가 필요한 과학 113
사족: 꿈의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115
참고문헌 128
저자소개
책속에서
사람들이 과학, 특히 내가 하는 생명과학을 받아들일 마음과 능력이 충분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데는 교육 탓이 있다. 생명과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배우게끔 과정이 짜여 있다. 그런데 생명과학은 암기 과목으로 받아들여진다. 외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싫어한다. 그러니 생명과학은 외울 것이 많은, 싫은 과목이 된다.
생명과학은 암기 과목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과목이다. 영어로 쓰인 수학 교과서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도, 수식에 익숙하다면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영어로 쓰인 생명과학 교과서는 다르다. 앞과 뒤를 설명해주고, 그림을 그려주고,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는 하나의 덩어리로 생명과학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생명과학은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하고 전체를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게 가르쳐야 하는데, 이런 것들은 빠뜨리고 단순 지식만 외우게 하면 왜곡이 생긴다. 생명과학을 전공하겠다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조차,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부분적인 것들만 외우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어떤 카이네이스(kinase)가 어떤 단백질을 너무 많이 인산화(phosphorylation)하면 전달 신호 스위치가 켜져서 질병의 원인이 되고……’와 같은 지식들은 제법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전체 그림을 그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고, 생명과학이 암기 과목이 되는 바람에 생기는 일이다.
헌터 증후군은 IDS가 없어서 생기니, CHO 세포에서 IDS를 만들어 환자에게 주기적으로 투여한다. 그런데 말이 쉬워 주기적으로 넣어주는 것이지, 치료 현장의 상황은 말 그대로 난리다. 한국에서 헌터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는 70여 명 정도 된다고 한다. 환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병원을 방문해 몸속에 쌓인 뮤코다당체의 일종인 글로코사미노글리칸(GAG)을 없애는 치료를 받는다. 약 4시간 정도 정맥주사로 인공 IDS를 몸속에 넣어주면, IDS 효소가 천천히 피 안으로 퍼지면서 GAG를 분해한다. 문제는 치료 과정에서 면역반응이 생기는 환자들의 경우다.
우리 몸은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을 적으로 여기고, 없애려 노력한다. 이를 면역이라고 부른다. 면역은 우직한(?) 면이 있어, 우리 몸에 좋건 나쁘건 공평하게 없애려 노력한다. IDS가 결핍되어 한 번도 정상적인 IDS를 만나보지 못했던 환자의 면역 시스템은, 기껏 주사로 환자에게 투여한 IDS를 외부 침입 병원체라 여기고 없애기 시작한다. 한 번 작동된 환자의 면역 시스템은 마치 급성 자가면역질환처럼 환자 자신을 공격한다. 공격이 심하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인공 IDS를 곧바로 맞을 수 없어, 우선 면역 능력을 일부러 떨어뜨리는 주사를 맞는다.
이렇게 일부러 면역을 떨어뜨리는 약을 맞고 인공 IDS를 2차로 투여받는데, 중증인 환자는 가족이나 보호자 없이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다.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려면 치료제 비용만 약 수억 원에 이른다. 국가에서 90%를 지원해주지만 내야 하는 약값만 아직 수천만 원 남는다. 헌터 증후군 환자는 발달장애를 동반하며 환자의 기대수명은 10~20세 정도다.
의사 선생님은 다른 것은 되었고, 약이라도 먹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고 연락해오신 것이었다. 고셔 병 치료제 엘리라이소도 효소대체치료 방식이고, 당근세포에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국에서 비슷한 일에 도전하고 있는 곳을 찾다가, 나에게까지 온 것이다. 현장은 언제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절박하다. 절박한 상황 앞에 앉은 의사와 식물학자가 온갖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한다.
아그로박테리움은 식물에 기생하면서 자기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다. 어떤 이유로 식물 뿌리가 상처를 입으면, 식물은 상처 부위에 화학물질(아세토시린곤, acetosyringone)을 뿜어낸다. 아세토시린곤은 상처 부위에서 세포벽을 강화시키는 신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아세토시린곤이 나타나면 아그로박테리움이 이 신호를 가로채 반응하기 시작한다. 화학물질과 반응한 아그로박테리움은 식물이 상처를 입은 부위로 자신의 DNA 일부를 주입한다. 식물로 침투한 아그로박테리움의 DNA는 식물이 종양을 만들도록 유전자를 조작한다. 식물 입장에서 보면 이건 뿌리에 생긴 암(근두암筋頭癌)이다.
암은 원래 자신이 만들지 않던 것을 많이 만드는 특징이 있다. 근두암에 걸린 식물은 오파인(opine)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생산하며, 아그로박테리움은 그것을 영양분으로 이용한다. 아그로박테리움의 전략은 식물의 DNA를 바꾸는 강력한 것으로, 식물학자들은 식물 품종개량에 아그로박테리움을 이용해왔다.
아그로박테리움을 이용해 식물에서 항체 단백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그로박테리움에 의약품으로 사용할 항체 단백질 DNA를 주입하고, 이 아그로박테리움을 다시 식물에 침투시키면, 식물은 항체 단백질을 생산해낼 것이다.
트라스투주맙 항체 정보가 담긴 DNA를 아그로박테리움에 넣고, 다시 아그로박테리움이 식물세포를 형질전환할 수 있게 했다. 예상했던 대로 트라스투주맙 항체 단백질이 식물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생산되는 양이 너무 적었다. 대량으로 재배한다고 해도 약으로 사용하기에 너무 적은 양이었다. 그래서 바이러스에서 다시 해보기로 했다. 식물에 침투하는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는 강력하다.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에 담배 식물이 감염되면 순식간에 잎이 노랗게 변하면서 죽는다. 속도가 빠르고, 확산이 광범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