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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건강/취미 > 등산/캠핑
· ISBN : 9791196249014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18-03-23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제1장 여인금제와 여성의 등산
후지산富士山을 초등한 여성
다테야마立山를 초등한 여성
하쿠산白山을 초등한 여성
이와키산岩木山을 초등한 여성
제2장 근대 등산의 여명
노나카 치요코野中千代子 ― 동절기 후지산 정상에서 72일
학교 등산의 시작
일본산악회의 창립 ― 일본 알피니즘의 대두
일본산악회의 여성 회원 제1호
여성 알피니스트의 등장
제3장 근대 등산 여명기의 여성 등산가들
아오키 미요青木美代 ― 초기 직장 산악부에서 활약
무라이 요네코村井米子 ― 여류 등산가의 여왕
구로다 하쓰코黒田初子 ― 동절기 야리가다케鑓ケ岳 여성 초등
나카무라 데루中村テル ― 일본 최초의 여성 산악회와 YWCA산악회 창립자
이마이 기미코今井喜美子 ― 스키와 암벽등반
가와모리 사치코川森左智子 ― 여성 클라이머
하루키 지에코春木千枝子 ― 걸스카우트 지도자
고바야시 시즈코小林静子 ― 여성 산악회 클럽 에델바이스를 창립
고바야시 레이코小林黎子 ― 학교 산악부의 조언자
기타 여성 등산가들
제4장 사회인 등산
여성 산악회
남녀 혼성 산악회에서의 여성
제5장 학교 등산
메이지明治시대부터 시작된 학교 등산
다이쇼大正시대의 여학교 등산
쇼와昭和 초기의 여학교 등산
초기 학교 등산의 지도자들
학교 등산의 사고
전후戰後 대학 산악부
전후戰後 고등학교의 등산
제6장 등산객을 위해 애쓴 산의 여성들
사카모토 도요지坂本とよじ ― 겐토쿠산乾德山 도쿠와徳和의 할머니
가노 기쿠노狩野きく能 ― 가시마야리가다케鹿島槍ヶ岳 가시마鹿島의 할멈
히라노 야스코平野靖子 ― 오제尾瀬의 조조산장長蔵小屋에 일생을 바치다
오노즈카 히사코小野塚久子 ― 마키하타야마卷機山의 시미즈淸水 ‘운텐雲天’의 엄마
고미야마 다에코小見山妙子 ― 하코네箱根 긴토키야마金時山의 긴토키 아가씨金時娘
제7장 해외 등산
일본 여성 등산사 연표
개인 등산 · 사회인 등산 · 학교 등산 · 해외 등산
에필로그 · 옮긴이의 글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책속에서
여인금제와 여성의 등산
일본의 산은 8세기 말 나라(奈良)시대(710년 ~ 794년)에 생긴 산악신앙에 의해
각지의 산이 개방되었고, 헤이안(平安)시대(794년 ~ 1185년)에는 종교와 결부되
어 등산이 한층 더 번성하게 되었다.
에도(江戶)시대에 걸쳐 신앙등산을 중심으로 하는 슈겐도(修驗道)가 발달하면서, 후지산을 비롯하여 하구로산(羽黑山), 다테야마(立山), 하쿠산(白山), 키소미다케(木會御岳), 오야마(大山), 이시즈치산(石鎚山), 히코산(英彦山) 등 여러 지방의 산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여 참배객들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또한 집단 참배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등산도 늘기 시작하여 후지코(富士講)나 미다케코(御岳講) 등의 단체 참배객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가 산기슭에 번성하였으며, 지금도 그 당시 숙소들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지역들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등산은 전부 남성들만의 것이었다. 성지(聖地)에는 여성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여인금제女人禁制」라는 관습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후지산을 초등한 여성
때는 1832년 9월 25일. 그 당시 함께했던 일행은 다카야마 다쓰 외에 안내인 역할을 맡은 당시 66세의 고타니 산시, 제자 3명, 짐꾼 1명으로 도합 6명이었다. 후지산 요시다(吉田) 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해, 그날은 5부 능선에 있는 나카미야(中宮)에서 숙박하고 다음날인 26일에 등정을 마치게 된다. 그날은 현 양력(陽曆)으로는 10월 20일에 해당되어 등산로는 이미 겨울 산이어서 정상까지는 위험한 빙설등반이었다고 한다. 이날, 용의 해 용의 날에 태어난 다카야마 다쓰는 「남자 같은 모습으로 체크무늬 긴팔 남방을 겉에 걸치고, 앞머리를 가운데로 빗어 내린 남장(男裝)한 모습으로 산에 올랐다.」라고 고타니 산시는 그 당시의 등산 모습을 족자에 적었다. 그리고 그 족자를 다쓰에게 선물하여 눈과 얼음으로 고생하며 후지산 정상에 오른 것을 기념했다.
노나카 치요코 ― 동절기 후지산 정상에서 72일
1895년 10월 12일,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던 치요코는 어린 자식을 친정 어머니에게 맡기고 강인한 의지로 후지산 등반을 감행했다. 치요코는 남편이 하루에 12번씩, 2시간마다 관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식사며 신변의 잡다한 일들을 거들었다. 때로는 남편 대신에 관측 데이터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때의 하루 일과를 치요코는 『연꽃일기(芙蓉日記)』에서 단가(短歌)를 섞어가며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동절기 후지산에서의 생활과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두막집이라고는 하지만 화장실조차도 없는 그야말로 조잡한 수준이었다. 먹거리를 비롯하여 모든 것이 얼어붙어 버려서 물을 만들기 위해 얼음을 가지러 밖에 나가려고 해도 문이 얼어붙어 열리지 않아 창문으로 출입하기도 했으며, 그것도 불가능하면 문턱의 얼음을 깨서 나왔다고 기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