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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의학
· ISBN : 9791197548345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22-12-20
책 소개
목차
서문
들어가며
1장 가족
2장 슬픔
3장 모험
4장 자만심
5장 완벽주의
6장 기쁨
7장 위험
8장 압박
9장 희망
10장 회복력
11장 비탄
12장 두려움
감사의 글
용어 해설
책속에서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이름을 물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지 절차에 인간성을 더하고 잔인성을 덜어내고 싶었다. 힘겨운 숨결 사이로 그녀는 더듬더듬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법대생이었다. 내 딸 제마도 법대생이었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나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차디찬 손가락을 잡고는 왼손으로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그렇게라도 말뚝을 시야에서 가려주고 싶었다.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 이제 죽는 거, 맞죠?”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부터 나는 외과의사 노릇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생의 마지막 시간을 고통스레 견디는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위로를 건네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 시간만큼은 그녀의 아빠가 돼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머리를 감싼 채 그녀가 듣고 싶었을 말을 들려주었다. 이제 곧 잠들 거라고, 깨고 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을 거라고. 말뚝도, 고통과 두려움도 사라져 있을 거라고. ―「들어가며」 중에서
심장외과에 필요한 자질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반외과 수련을 거쳐야 했다. 모름지기 심장외과의는 훌륭한 손재주, 그것도 타고난 손재주를 갖춰야 했다. 대부분의 신체 기관은 외과의가 칼로 베고 톱으로 써는 동안 얌전히 자리를 지키지만, 심장은 움직이는 표적이요, 압력을 받는 혈액 주머니였다. 잘못 건드리면 격렬하게 피를 내뿜었고, 서툴게 다뤘다가는 리듬이 깨져 돌연 심정지를 일으킬 수 있었다. 둘째, 심장외과의는 심성이 단단해야 했다. 슬퍼하는 유족에게 죽음을 설명할 수 있고 수술실에서 질책을 당해도 씩씩하게 이겨내야 했다. 셋째, 심장외과의는 용기를 갖춰야 했다. 바쁜 상사의 일을 척척 넘겨받을 정도의 대담성과, 갓난아기들의 수술 후 관리를 책임지거나 외상 환자를 치료할 고문의가 빨라도 한 시간 뒤에나 도착한다는 비보를 응급실에 통보할 정도의 배짱은 필요했다.
―「1장 가족」 중에서
직업적 성공을 위한 전략으로 머리 외상을 추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내 머리 부상이 그해 중간 학기에 발휘한 효과는 가히 인상적이었다. 수줍고 내성적이던 소년은 이제 대담하고 용감하며 자기중심적인 청년이 되었다. 더 이상은 시험을 걱정하지도, 붐비는 강의실에서 발표자로 지명됐다고 당황하지도 않았다. 불과 몇 주 만에 나는 이를테면 교내 크리스마스 행사를 주름잡는 사회자에, 의과대학 사교 모임 총무에, 크리켓 팀 주장이 되어 있었다. 스트레스에 면역력이 생긴 듯하더니 어느새 습관적 모험가에 아드레날린 중독자가 되어 끊임없이 흥분을 갈망했다. 사사로운 문제들로 끙끙 앓던 과거는 이제 사라졌다. 요컨대 나는 그때 머리를 다친 이후로 대담해졌고 냉혹한 경쟁을 즐기게 되었다. 외과의에게 꼭 필요한 조정력과 손재주를 타고난 데다, 알맞은 성격유형까지 갖게 된 것이다.
―「3장 모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