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그린 건축가 (김원의 ‘삶과 사람들’ 세 번째 이야기)
김원 | 태학사
25,200원 | 20230525 | 9791168101173
산수(傘壽) 맞은 건축가 김원의 세 번째 산문집
시대의 거시사(巨視史)를 이뤄 온 김원의 미시사(微視史)
건축가 김원(金洹, 1943~ )이 팔순을 맞아 세 번째 산문집 『못다 그린 건축가』를 펴냈다. 2019년 두 번째 산문집 『꿈을 그리는 건축가』 이후 4년 만으로, 그동안 틈틈이 쓴 글 68편을 묶었다.
그는 이 책에 실린 「타인의 시선」이라는 글에서 “사실 나는 자서전이나 회고록 같은 걸 쓸 위인이 못 된다. 세상에서 누가 나 정도의 사람이 살아온 과거사 기록을 그리 재미있고 가치 있게 읽어 줄 것인가? 그런데 실은 내가 살아온, 그리고 사회생활을 해 온 1970년부터 2020년까지의 50년 반세기는 우리나라 역사로 보아 엄청난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진 시대였다. 그 시대에 내가 보고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은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는 것들이 많다. 때로 그 증언들에는 다른 사람들이 겪어 보지 못한 흔치 않은 경험도 담겨 있다.”라고 쓰고 있다. 『못다 그린 건축가』의 ‘출간의 변’이라 할 수 있는 대목으로,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 온 한 건축가가 지난 시대에 겪었던 일,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회고록이면서, 남길 가치가 있는 기록이자 증언이라 할 수 있다.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글 쓰는 건축가’에는 생활 속에서 떠오른 단상, 겪었던 일 등을 잔잔하게 풀어낸 수필 13편이 실려 있다. 「소설가 김훈의 담배 끊은 이야기」는 김훈 소설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더 사실감 있게 재구성한 한 편의 에세이이고, 「‘삼청복집’ 소사小史」는 애주가로서 즐겨 찾던 한 복집에 관한 드라마틱한 역사를 들려준다.
2부 ‘무슨 무슨 위원회라는 것’에는 저자가 각종 지자체나 정부 기관의 ‘○○○위원회’에 초빙되어 활동했던 일들 중 기록으로 남길 만한 이야기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본업인 건축 외에도 문화재, 환경 문제 등에 큰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온 터여서, 다양한 ‘위원회’에 참여한 바 있다. 특히 「문화재위원회의 추억」은 저자가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문화재 관계 현안들에 얽힌 뒷이야기로, 구 서울시청사 보존 문제, 박근혜 정권 때 진행되었던 사찰 음식 체험관, 인왕산에 설치된 안테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축 시 발견되었던 훈련도감 터, 경주 월정교 복원 사업 등의 이야기에서 그는 문화재에 관한 정부나 지자체의 ‘인식의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3부 ‘건축, 그 뒷이야기들’은 건축가 김원이 맡아 진행했던 크고 작은 건축에 얽혀 있는 에피소드들의 모음이라 할 수 있다. 김원은 그동안 건축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그가 자문하고 관여한 5대 프로젝트가 바로 독립기념관, 예술의 전당, 국립국악당, 중앙청박물관, 과천 현대미술관이다. 특히 「독립기념관 이야기」에서는 풍수지리학회 회장으로 이 프로젝트에 초빙되어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대통령과 문화부 장관을 설득해 가면서 우여곡절 끝에 완공에 이르게 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4부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들’은 김원의 ‘사람들 이야기’이다. 6ㆍ25 때 돌아가신 아버지, 남겨진 5남매를 키워 온 어머니, 서른셋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수녀 여동생 이야기를 필두로, 연세대 강사 시절 가르쳤던 가수 이미배, 지인의 소개로 집 설계를 해 준 김재춘 중앙정보부장, 피아니스트 백건우, 우리나라 제1호 여성 건축사 지순 교수, 고교 친구인 유영제약 유영소 사장, 김성수 주교, 이어령 선생, 김동호 위원장 등 그동안 김원이 관계 맺어 온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5부 ‘예술인가?’는 〈다다익선〉을 함께 만들었던 백남준에 관한 5편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전각(篆刻), 성미술, 성당 건축, 영화 등 예술에 관한 저자의 관심을 보여 주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로 선정된 적 있던 김원의 문학적 수필, 인문학적 사유를 엿볼 수 있는 글, 숨겨진 에피소드들을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낸 글들에서, 우리는 ‘김원의 미시사(微視史)’가 ‘시대의 거시사(巨視史)’를 이루어 왔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