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린 도시, 서울
방서현 | 문이당
14,400원 | 20251110 | 9788974565978
2022년 첫 장편소설 『좀비시대』를 출간한 방서현은 두 번째 장편소설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을 출간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수저 계급론이 양산하는 답답한 믿음과 체념을 소재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너무도 다른 삶이 펼쳐지는 것이 ‘보이지 않는 손에 길’든 듯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서울을 그려냈다. 수저의 이름으로 불리는 네 개의 동네가 도로 하나 차이로 촘촘하게 맞 닿아있다.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동네들은 지명 대신 오로지 ‘똥수저-흙수저-은수저-금수저’로 표상된다. 주인공 ‘나’는 그중 ‘똥수저 동네’, 혹은 ‘달동네’로 불리는 산동네에서 부모도 없이 길에서 자신을 주워다 기른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다.
초등학교는 서로 다른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자라가는 곳이 아니라, ‘수저’를 기준으로 서열을 세우는 공간으로 전락한다. 학교에서 숙제로 ‘우리 집 아빠 차 소개하기’, ‘우리 집 자랑거리 써오기’처럼 가정 형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주제로 인해, 아이들은 서로 사는 동네를 바탕으로 계급을 나누고 그 속에서도 힘과 외모, 부모의 능력 등을 기준으로 세세하게 서열을 짓는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도덕성과 인성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낮은 서열의 아이들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것이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계급 간 이동 가능성을 틀어막고, 그 계급에 따른 삶을 밀어붙이는 압력은 ‘나’의 사고 속에 부러움과 결핍을 새겨넣지만, 정말로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꿈꿀 여백은 남겨두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오래도록 그림을 그려왔더라도 그것을 진로로 삼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나’의 화폭에는 상상력과 꿈이 부재한다. ‘나’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마저 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더 어두워져만 간다. 이미 ‘나’를 버린 이 도시를 버리고 다른 어딘가로 떠난다 해도 지리적 위치만 바뀔 뿐 떠난 곳에도 여전히 수저 계급론이 몸집을 부풀리고 있는 한 보호자까지 잃은 ‘나’의 형편이 더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을 버려도 또 다른 서울이 아가리를 벌린 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은 물질사회의 한 중심에 있는 대도시 서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자아이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세상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세상과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의 세상은 다르다. 학교에는 달동네 아이들과 주택가 아이들, 아파트 아이들, 드물지만 고급 빌라촌에 사는 아이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그러므로 학교에는 여러 계급의 아이들이 존재한다. 하류층 아이에서부터 상류층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부모의 재산에 따라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 등으로 분류해 부르고 사는 동네까지도 수저 색깔로 불러 달동네는 흙수저도 못돼 똥수저 동네가 되고, 주택가는 흙수저 동네, 아파트는 은수저 동네, 고급 빌라촌은 금수저 동네로 부른다.
이 소설은 수저 계급론에 입각해 서울을 4개 지역으로 나눠 서울이 얼마나 자본에 찌든 도시인지를 그리고 있다. 똥수저 동네는 산자락에 위치한 빈민촌으로, 주민들은 못 배우고 직업도 변변치 못하다. 주민들이 사는 집은 늘 어둡고 축축하다. 똥수저 동네에는 나를 비롯해 초등학생인 일수와 혜미가 살고 있다. 그 아이들은 처음에는 순수했으나, 점점 나쁘게 변해 간다.
흙수저 동네는 비록 건물이 낡았지만, 붉은 벽돌의 외관에 옥탑방이 있고 벽의 반이 땅속에 묻힌 반지하 방도 있다. 그러나 동네가 지저분한 것은 달동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곳에 사는 현수는 말이나 태도에 예의가 없다.
은수저 동네인 아파트 단지는 달동네에 사는 나로서는 참으로 매혹적인 곳이다. 아파트 건물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마치 웅장한 성벽을 보는 듯하다. 은수저 동네에 사는 윤우는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도 착하다.
금수저 동네는 각양각색의 빌라가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담장이 높아 내부가 잘 보이지 않고 주위에는 보안요원이 눈에 띈다. 무인 감시 카메라가 곳곳에 설치돼 사람들의 출입을 일일이 체크한다. 그곳 사람들은 옷차림부터 헤어스타일, 메이크업까지 부티가 난다. 금수저 동네에는 도아와 단비가 사는데, 둘은 서로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도아는 예의가 바르고 인성이 좋다. 행동과 말투에서 기품이 묻어 나와 가정 교육을 잘 받았다는 게 느껴진다. 단비 역시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나왔다. 단비 아빠는 유명 화장품 브랜드 사장이며 대궐 같은 집에 살고 방과 후에는 기사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단비는 성격이 거칠고 우악스럽다.
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세상에 태어났는데 누구는 부자로 살고, 누구는 가난하게 사는지 깊은 의문을 품는다. 이에 대해 할머니에게 묻고, 무당인 혜미 엄마에게도 묻는다. 학교 선생님과 교회 목사님에게도 묻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한다. 난 숲으로 간다. 숲에는 수행을 하는 도인 할아버지가 계신다. 난 도인 할아버지에게 깨우침을 얻어, 삶의 의문들을 하나씩 풀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