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원하는 삶이 더 행복하다 (염세주의자의 행복론)
쇼펜하우어 | 브라운힐
15,300원 | 20250923 | 9791158251833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행복을 약속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그 속에서 많은 사람은 공허함과 불안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쉬지 않고 끝없이 달려야만 하는 경쟁의 무대 위에서, 잠시라도 멈추면 도태될 것만 같은 압박은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든다. 이럴 때 문득 ‘삶은 고통이다.’라고 단언한 한 철학자의 목소리가 냉정하면서도 묘하게 위로처럼 다가온다. 바로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다.
그는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울하면서도 포악한 성격의 아버지는 결국 생을 스스로 마쳤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냉랭했다. 가정의 불화와 비극은 그에게 삶이란 본래 고통에 물들어 있다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체념이나 원망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고통을 철학의 중심에 놓고, 삶의 진실을 탐구하려 했다.
쇼펜하우어가 본 세계는 이성이 지배하는 질서 정연한 곳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를 ‘맹목적인 의지’의 소용돌이로 보았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원하지만, 그 욕망은 채워지자마자 새로운 결핍을 낳는다. 마치 물을 마셔도 잠시일 뿐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만족은 순간에 불과하고 다시 고통이 찾아온다. 그렇기에 그는 인간의 삶을 고통의 연속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단순한 비관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구원할 일견 소극적으로 보이는 작고 확실한 길들을 제시했다. 욕망을 줄이는 삶, 예술에 몰입하는 순간,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 음악을 듣는 순간 같은 경우 우리는 욕망에서 잠시 벗어나 순수한 직관의 세계에 머물게 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민을 느낄 때, 삶의 무게는 조금 덜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적 성공과 명예가 아닌 내면의 평온에 집중할 때 비로소 인간은 행복에 가까워진다.
요즘 말로 소확행(小確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약칭)이라 할 수 있는 그의 행복론은 다른 철학자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을 덕의 실현에서 찾았다면, 쇼펜하우어는 욕망을 줄임으로써 고통을 피하려 했다. 에피쿠로스가 고통을 최소화하는 쾌락을 긍정적으로 보았다면, 쇼펜하우어는 그보다 훨씬 더 어두운 시선을 던졌다. 칸트가 도덕적 의무를 강조했다면, 그는 오직 ‘연민’에서 진정한 윤리의 뿌리를 보았다. 그리고 니체가 고통을 삶의 원동력으로 긍정했다면, 쇼펜하우어는 고통을 가능한 한 줄이고 회피하는 길을 택했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자본주의와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빨리 성장하며, 더 높이 성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광고와 SNS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계속해서 타인과 비교하게 만든다.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지적했듯이, 욕망의 충족으로 인한 만족은 순간일 뿐 곧바로 허무와 불안이 뒤따른다.
이러한 시대상 속에서 우리는 끝없는 결핍감과 번아웃(burnout, 과도한 스트레스가 오래 이어지며 심리적ㆍ생리적으로 탈진한 상태)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의 철학이 오랜 세월을 넘어 다시 빛을 발하는 까닭을 짐작하게 된다. 욕망을 채우라고 부추기는 사회 속에서, 쇼펜하우어는 욕망을 줄이라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던진다. 과잉 경쟁과 상대적인 박탈감에 지친 현대인에게 그의 사상은 ‘덜 가지는 삶이 더 평온하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미니멀리즘(Minimalism, 최소주의(最小主意)), 마음 챙김(불교 전통의 ‘사띠(sati)’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현재 순간에 집중하며 자극이나 감정을 비판 없이 관찰하는 정신적 훈련),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 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이르는 용어) 같은 요즘 의식의 조류도 사실 쇼펜하우어의 오래된 철학적 직관과 맞닿아 있다.
물론 그의 철학은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개인적 금욕에 치중했다는 한계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펜하우어는 인간 고통의 본질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직시한다. 그 정직함이야말로 그의 철학을 오늘날까지 살아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삶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그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내면을 다스려라. 예술 속에서, 연민 속에서, 그리고 욕망의 절제 속에서 우리는 고통을 넘어서는 행복의 순간을 맛볼 수 있다. 그의 철학은 결국 절망의 철학이 아니라, 고통을 직시한 끝에 찾아낸 또 다른 방식의 희망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쇼펜하우어의 난해한 주저(主著)들과 달리 일반인도 이해하기 쉬운 문체와 실용적 조언을 다룬 ‘삶의 실용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여록과 보유〉 외에 〈윤리학의 두 가지 근본문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의 저서에서 발췌한 내용을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담았다.
모쪼록 이 책이 만만치 않은 일상을 살아내는 독자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나아가 뜬구름 잡는 공허한 행복론이 아닌 현실적 · 객관적인 행복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