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극장의 엔딩 크레딧 (시든 꽃밭에 물주기 1집)
강동규, 권태완, 나래, 박르하, 박은수 | 달아실
10,800원 | 20231124 | 9791191668964
시의 ‘첫’들이 모여 함께/홀로 만들어가는 ‘첫’ 엔딩 크레딧
- 시든 꽃밭에 물주기 1집 『텅 빈 극장의 엔딩 크레딧』
세상에 이런 시집이 있을까. 살고 있는 지역도 개성도 서로 다른 열두 명의 초짜 시인들-강동규, 권태완, 나래, 박르하, 박은수, 백혜자, 신잉걸, 이승희, 이은란, 정지민, 조영미, 최정란-이 〈시든 꽃밭에 물주기〉라는 이름으로 뭉쳐서는, 세상에 없는 합동시집 『텅 빈 극장의 엔딩 크레딧』(달아실 刊)을 펴냈다.
무크 형식으로 발간된 이번 합동시집 『텅 빈 극장의 엔딩 크레딧』에는 강동규 시인의 「호아비빔밥」 등 12명 시인들의 시 작품 60편이 실렸다.
사는 곳도 개성도 각기 다른 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전윤호라는 시 스승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시인 전윤호에게서 시를 배웠거나 시를 배우고 있는 시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말로는, “시라는 미로 속에서 저마다 외롭게 출구를 찾아 헤매다가 전윤호라는 이정표를 만나서 잠시 한데 모인 것”이라고, “전윤호라는 이정표 아래에서 저마다 자신만의 출구, 자신만의 시를 찾아내려 애쓰는 중이고, 이번에야말로 시와 제대로 한판 붙으려 애쓰는 중”이라 했다.
그래서 시인 전윤호에게 이번 합동시집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엔 풀밭이었다. 잡초들이 무성한 아침이면 이슬 맺히고 햇살이 내려와 공을 찼다. 따로 씨를 뿌린 적은 없었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들이 피어났다. 이제 모두들 안다. 보이지 않아도 머리에 봉우리가 숨어 있음을. 다음에는 무슨 꽃이 필지 기다리게 되면서 이제 이곳은 아무도 공터라 부르지 않는다.”
참여 시인들을 대표해서 박은수 시인은 이번 시집을 이렇게 설명한다.
“[시든 꽃밭에 물주기] 시 창작반 학생들은 전윤호를 스승으로 만나 시를 운동하듯 배우고 있다.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온라인으로 모인다. 시들시들한 삶에 ‘시’라는 생명수를 공급하기 위해 뭉친 사람들은 그렇게 글동무가 되었는데,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매주 모여 서로의 작품을 진지하게 읽고 의견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훌쩍 자란 서로의 모습을 느끼기도 한다. 시를 배우기 시작한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이미 시집이라는 결실을 본 제자도 있고, 아직 자신의 작품 세계를 찾아가는 제자도 있다. 하지만 제자들의 열정만큼은 누구 하나 뒤지지 않는다. 회원 절반이 코로나19 환자였음에도 콜록거리며 화상으로 만나기도 하고 종종 출장지의 숙소, 이동 중인 차 안에서도 참여하는 회원들도 있었다. 시집에 낼 작품을 고르고 고치며 고심하는 밤들이 지났다. 이번 시집에는 오프라인에서 시를 배운 제자들도 함께 참여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시를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이번 시집 출간을 계기로 모두 더 단단한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 기회를 열어준 스승님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이번 시집을 편집한 시인 박제영은 이번 합동시집을 “시의 ‘첫’들이 모여 함께/홀로 만들어가는 ‘첫’ 엔딩 크레딧”이라 정의하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시의 정답은 없지만, ‘첫’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 ‘첫’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꿰느냐는 시를 쓰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화두일 것이다. 여기 열두 명의 ‘첫’이 모였다. 때로는 함께 때로는 홀로 시의 ‘첫’을 시작하고 꿰고 있는 것인데, 그들이 내놓은 작품 하나하나를 살피면서 참 좋은 스승을 만나 제대로 시작하고 제대로 꿰고 있구나 싶었다. 모두가 시라는 서늘한 형식을 유지하되 자신의 개성(목소리, 문체 등)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 되었다 싶었다. 이들의 첫 엔딩 크레딧이 보기에 좋았다.”
당신이 만약 시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당신 또한 ‘첫’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시에 있어 정답은 없겠지만, 이정표 하나쯤은 만나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