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머무는 자리 (이우환 수필집)
이우환 | 세종출판사
7,650원 | 20231005 | 9791159796272
이 책은 나의 향촌마을의 옛이름인 자산골(하신)에서 태어나 자라 그동안, 수십 여 년을 경향 각지에 흩어져 살던 고향친구들끼리 저간의 안부와 근황을 주고받으며 나눈 온갖 새설(辭說)들, 유·소년기인 초등학교 및 중학교 시절의 아련한 기억들을 반추하며 긁적거렸던 추억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청·장년기를 지내며 2천 년 대가 막 시작된 즈음, 정년퇴직을 전후한 시기에 여행과 등산, 취미생활 등, 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이야기들을 각종 모임이나 단체활동 공간에 남기게 되었는데, 주변 벗들로부터 그동안의 글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펴내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나 따위의 범부(凡夫)가 책은 무슨 책?’ 하며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곤 했는데 세월이 가도 그런 제안은 끊이지 않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종친이자 죽마고우(竹馬故友)인 이윤환 교수의 끈질긴 권유에 망설인 끝에 ’비록 졸필일지언정 내 삶의 아주 작은 흔적은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결국 문집을 엮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두서도, 형식도 없이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붓 가는대로 이곳, 저곳에 써 놓은 글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빼고, 덧붙이고 또 추려서 정리를 하면서도 이런 졸필들을 한권의 책으로 묶는다는 게 참 부끄럽다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왕 하기로 마음 먹은 이상 내가 쓴 글에 미리 호불호(好不好)나 점수를 매기는 따위를 다 내려놓고, 판단은 글을 읽는 사람의 몫이기에 나는 다만 겸손한 자세로 내 할 일만 성심껏 하자 스스로 다짐하면서 문집일을 계속했습니다.
책갈피마다 드러나게 될 나의 좁은 소견과 얕은 지식, 더불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오류도 있겠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글을 쓰는 체계적인 공부와 전문지식을 기반으로 쓴 것이 아니기에 독자님들께서 너그러이 양해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참으로 부끄럽고 보잘 것 없는 글일지라도 그저 어느 칠순 나그네의 잡설(雜說)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6.25 전쟁이 막 끝난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동 시대를 사는 이 땅의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먹고, 돌아서면 금세 배고프던 가난이 보편적이던 시절, 그 중에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저 하늘과 산, 실개천, 그리고 귀때기만한 논밭 말고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첩첩의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산골 소년이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을 보내고, 어느새 고희(古稀)에 이르러고 보니 참으로 세월이 빠른 것인지 세월을 대하는 내가 무심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글 대부분은 고향과 산천, 그리고 자연이 소재로 다루어져 있으므로 독자님들은 책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반백년 전 산골의 일상을 자연적으로 접하게 될 것입니다.
들녘 길섶에 아무렇게나 돋아난 잡초에서 배어나오는 풀내음, 소똥 거름 냄새, 그리고 해거름녘 여름철 밭일 끝내고 들어오시는 어머니의 베적삼에 배인 진한 땀 내음 등이 풍길 것이며, 아랫채 마굿간에서 새끼 잔등을 혓바닥으로 쓱쓱 핥아주는 어미소랑, 노랑저고리를 단체주문 해 입고는 어미닭 발치를 종종거리며 쉴 새 없이 삐약거리는 새끼 병아리 떼도 지그시 감은 눈앞에 선하게 펼치리라 믿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책을 읽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동심으로 돌아가 편안한 시간이 되시길 빌면서,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교정과 편집 일체를 기꺼이 도맡아 주신 합천 삼가출생의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동갑내기 벗 강길환 님과, 출간에 즈음하여 진심어린 붙임글을 보내준 나의 중학교 옛 벗인 김희규 님께 깊이 감사하며, 아울러 세종출판사 이동균 상무님과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의 건승(健勝)과 지복(至福)을 발원합니다.
2023년 가을
이우환(李禹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