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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7900944
· 쪽수 : 404쪽
· 출판일 : 2022-03-10
책 소개
목차
I
초봄 잡목림의 하늘
/ 파편의 창
/ 잡념 예찬
/ 나의 작은 책상
/ 아기의 웃는 얼굴, 사자死者의 미소 / 기다림에 대하여 / 표현으로서의 침묵
/ 무의식에 대하여
/ 억눌려 있는 것
/ 물리학에 대한 우문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메시지 / 틀어박힘의 저편 / 위인의 길
/ 조부의 기억
/ 거인이 있었다—이건희 회장을 기리며
II
나의 제작의 입장
/ 열리는 차원Open Dimension / 1970년대에 출발하여 / 여백 현상의 회화/
하얀 캔버스 / 열리는 회화
/ 열린 조각—만남의 메타포
/ 무한의 문—베르사유 프로젝트
/집, 방, 공간—Chez Le Corbusier와의 대화 내적인 구조를 넘어서
III
데생에 부쳐
/ 얼떨결의 발견
/ 예술가의 토포스
/ 골똘한 자들
/ 예술가의 이중성
/ 회화 제작의 두 가지 입장 / 인공지능과 예술가 지휘자에 대하여 / 대상과 물物이라는 언어
/ AI에 대한 생각
/ AI와 렘브란트, 그리고 초상화 / 문명과 문화
/ AI형의 비평가
/ 가짜 비평
/ 이데올로기의 환상
IV
모노파—외부성의 수용의 표현
/ 단색화에 대하여
/ 미지와의 대화—젊은 예술가들에게
/ 현대미술—이 묵시적인 것
/ 현대미술의 사진을 보면서—표현과 작자의 정체성 / 지역성을 넘어서 / 라스코동굴
/ 스톤헨지
/ 이집트에서 온 소식 / 교토의 정원
/ 조선의 백자에 대하여
V
「모나리자」 송頌
/ 렘브란트의 자화상 / 셋슈이문雪舟異聞—「추동산수도」의 「겨울 그림」과
「혜가단비도」를 둘러싸고
/ 겸재의 회화
/ 카지미르 말레비치—만화경과 같은 카타르시스 / 보는 것에 대하여—메를로퐁티를 기리며 / 뒤샹과 보이스 사이에서
/ 카라얀의 지휘 / 리처드 세라
/ 어떤 우정—김창열과 정창섭의 경우
/ 아트의 경이—애니시 카푸어에 대하여 / 세키네 노부오를 기리며—「위상-대지」 또는 세키네 노부오의 출현
/ 안자이 시게오—70년대 또는 외부성의 시좌
저자 후기
역자 후기
책속에서
나의 작품이 보여주는 침묵의 성격은 아마도 비인간적인 것이리라. 그것은 작품이 특정한 소재나 방법의 구사는 물론이거니와 역시 발상의 근간이 자연이나 외부와의 관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인간의 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나 인간 이외의 소리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그것도 귀에 전해지거나 눈에 비치는 소리나 색채와 형태를 뛰어넘어 광대한 우주에 가득 찬 울리지 않는 소리, 들리지 않는 말과 만나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음악가의 궁극적인 관심은 음의 저편에 있을 것이다. 나의 관심도 이와 비슷하다. 그림을 통해 말로 할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의 차원을 열어가고 싶다. 나의 작품의 파장은 아직 인간의 말의 영역에서 멀지 않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침묵의 저편은 멀고도 깊다.
작품은 끊임없이 삶을 이어간다. 제작이 끝나도 내부와 외부가 서로 대응하는 짜임새로 기능하고 아슬아슬한 텐션을 일으킨다. 그것은 어디에 어떻게 놓이느냐에 따라 새롭게 태어난다. 작품의 대응성의 바탕에 있는 것이 근원적인 양의성이며, 거기에서 작품의 다이너미즘이나 초월성이 발휘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인간은 끊임없이 무의식과 함께 있으며, 타자와의 관계로 변화하며 다시 태어난다. 바꿔 말하자면, 인간은 세계와의 무한한 관계성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인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세계의 불투명함, 미지성을 메울 수는 없다. 그것들은 존재가 아닌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기 자신이나 공동체를 지양하고 타자와의 대화와 교류에 중점을 두는 것은, 표현이 관계에 의한 탄생이며 비약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은 매개의 산물이며, 세계와의 경이로운 만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