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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72756934
· 쪽수 : 320쪽
책 소개
목차
만남
제1부 초월적―돌과 철판의 역사
제1장 자연과 타자
평범한 돌을 찾아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전통’으로 돌아가자고?
젊은 프랑스 비평가들의 당혹감
제2장 모노하, 트릭과 현상
있는 그대로 보기
관계항
제3장 신체의 중층성
신체성과 감성
화가의 몸
붓
캔버스
안료
마티에르와 윤리의 관계성
구토, 양의의 감성
제2부 시적―점과 여백의 역사
제1장 몽마르트르의 에로스
피갈 지역, 세속적 에로스
묘지 위의 다리
제2장 몽마르트르 언덕을 오르며
벽을 통과하기
바람의 언덕
향연
제3장 성스러운 마음, 성스러운 에로스
사크레쾨르, ‘동결된 음악’
바흐와 샤먼, 엄청난 타자와 소통하는 방법
사랑의 샘에서 시를 긷다
어떤 중국 백과사전으로의 산책
제3부 비판적―예술가들의 역사
제1장 예술가, 사회와 우주 사이에서
제2장 작품, 시대성과 영원성 사이에서
양의의 작가―그리고 시적 전환을 위하여
주
이우환의 용어
도판 목록
책속에서
만남이란 미학적으로는 시적 순간의 경험이다. 그리고 이 시적 순간은 여백 현상으로 열리는 장소에서 일어난다. 만남은 자연이나 인간이나 사건을 포함한 타자와의 대면에서 일어나는, 극적인 열림의 장을 두고 말함이다. 작가는 만남을 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작품을 만들어 장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만남은 때때로 웃음이기도 하고 침묵이기도 하고, 언어와 대상을 넘어선 차원의 터뜨림이다.
완전히 폐쇄적이고 내적으로 닫힌 오브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바깥에 있는 것과 작가가 생각하는 것의 엉거주춤한 관계에서 여러 암시를 줄 수 있는 것을 공간적(장소성)이나 시간적(시간성)으로 표현하려는 것에서 모노하가 형성되었습니다. 인간중심적인 산업사회 비판으로부터 태어난 모노하는 ‘만들어진 것만이 세계라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너무 많이 만들어 포화 상태에 있는 지구와 관련하여 ‘만드는 것에 대한 환상’을 다시금 생각해보자고 촉구합니다. 그래서 물건을 덜 가공하거나 덜 만든다는 것을 끄집어내서 시간이나 공간과 관련시키며, 이런 방식으로 예술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런 데서 출발한 것이 모노하입니다. 강요된 인간의 개념 작용을 가지고 세계를 객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배웁니다. 그래서 만들지 않는 부분이 도입되고 트릭도 사용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회화나 조각은 일종의 재제시로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점들이 모여서 여러 형태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면, 그것을 철저히 추려 정리하고 정제시켜서 극히 일부만 내 손을 거치도록 하여 숨결이 느껴지게 재제시하는 작업입니다. 철판과 돌을 어우르는 조각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어디나 자욱이 널려 있는 수많은 사물들의 연관 가운데, 어떤 만남을 통하여 ‘요거다’ 하고 느껴지는 광경을 끄집어내어 철판과 돌로 수렴시키고 단순화하여 울림을 줄 수 있게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이건 창조가 아니라, 있던 것을 다시 제시하는 것으로 일종의 ‘괄호 넣기epoche’(판단중지)입니다. 그럼으로써 현실이 다시 보입니다. 예술은 그래서 ‘창조’가 아니라, 이러한 ‘재제시’에 불과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