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게 뮙니까? (35년의 빛바랜 교무수첩에서)
김창학 | 도서출판 위
18,000원 | 20251120 | 9791186861462
시대의 물결 앞에서 교육의 본질을 묻다:
35년 5개월, 교육 여정의 간절한 고백
존경하는 독자 여러분,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분께.
저는 1985년, 청운의 꿈을 안고 사립학교 교단에 첫발을 디딘 이래, 2020년 8월 교감으로 정년퇴직하기까지 35년 5개월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학교 현장에서 보냈습니다. 1999년 공립 특채라는 새로운 도전을 거쳐,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문화를 체득했으며, 심지어 2018년에는 해외 국제학교에서의 경험까지 더했습니다. 이 길고도 험난했던 여정은 단순한 경력의 나열이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의 명암(明暗)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깊숙이 체감한 한 교육자의 고독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강산이 네 번 가까이 변하는 동안, 저는 교실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수많은 학생들의 눈빛을 마주했습니다. 그 눈빛 속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불안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저의 가슴 한구석에는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35년 5개월의 현장에서 체득한 냉정한 현실은, 우리의 미래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밝지 않다는 뼈아픈 진실이었습니다.
“우리의 교육이 변하지 않고 지금처럼 학교 현장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미래가 없다.” 이 단언은 단순히 한 퇴직 교감의 푸념이 아닙니다. 이는 격변하는 시대 앞에서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채, 낡은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우리 교육 시스템에 대한 간절한 경고입니다.
엇갈린 교실 풍경과 교육 이기주의의 그림자
제가 교직을 시작했던 80~90년대와 비교하면, 학급당 학생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분명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같은 지역, 같은 교육지원청 관할 내에서도 학생 수가 15~20명에 불과한 소규모 학교와 30~40명에 이르는 과밀 학교가 공존하는 기형적인 현장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이 이처럼 천차만별로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표면적으로는 일부 학부모들의 교육 이기주의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명문 학군을 찾아, 소위 ‘좋은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는 부모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학교의 교육 환경은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곳에는 교육 행정의 무능과 나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육청이 학교 현장에 대한 정확하고 냉철한 진단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밀집된 곳은 과밀로 몸살을 앓고, 외곽의 학교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처럼 불균형하고 불평등한 교육 환경 속에서, 어떻게 모든 학생들에게 공평한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학교 현장의 문제는 더 이상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 전체의 병든 심장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학생을 위한 학교인가, 교사를 위한 기관인가?
저는 이 책을 통해 가장 근본적이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학교는 학생을 위하여 존재합니까?”
35년 5개월, 교육에 대한 저의 모든 경험과 진심을 걸고 얻은 정답은 차갑고 아픈 “아닙니다” 입니다. 제도와 형식은 학교가 학생의 성장을 돕는 기관이라고 말하지만, 냉정한 현실은 학교가 ‘상급학교 입시 준비 기관’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교육다운 교육’은 현재 학교에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행정 업무와 입시 압박이라는 두터운 벽에 갇혀, 정작 가르쳐야 할 삶의 지혜와 미래 사회를 살아갈 힘을 아이들에게 전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저는 학교가 학생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을 위한 기관일 뿐이라는 비극적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물론, 교사의 열정과 헌신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스템 자체가 교사가 학생을 진정으로 위하는 교육을 방해하고 있다면, 개개인의 노력은 결국 헛된 메아리에 그치고 맙니다. 지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과연 우리의 삶을 위한 본질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 35년간 교단에 섰던 저의 솔직하고 고통스러운 대답입니다.
감동 없는 행정, 교육청은 걸림돌인가?
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막고 있는 또 하나의 거대한 벽은 바로 교육부와 교육청입니다.
저는 교육청의 존재 이유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청은 과연 학교 현장을 지원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기관입니까? 안타깝게도 저의 오랜 경험은 그들이 정부 및 정권의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한 제도권 교육의 첨병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학교 현장을 지원하기보다는, 통제하고 감시하는 기관 내지는 제도에 가까웠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겪는 고통은 “교육청은 감동 없는 행정처리 기관일 뿐”이라는 어느 교사의 한 마디에 너무나도 정확하게 응축되어 있습니다. 현장의 맥박을 짚기보다, 서류와 지침에 매몰되어 탁상공론식 행정을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은 수많은 교사들의 사기를 꺾고 교육의 창의성을 질식시켰습니다. 학교 현장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교육청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저만의 고독한 의견일까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수많은 현장 교사들의 절규가 이 의견에 힘을 실어줄 것입니다.
35년 5개월의 성찰, 변화는 여기서부터
교육이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이 변하기 위해서는 학교 현장이 변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학교 현장이 변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와 교육청이 먼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35년 5개월간의 교육 여정에서 얻은 가장 명확하고 절실한 결론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우리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처절하게 되돌아보려 합니다. 저의 자서전적인 경험과 성찰이 부디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을 여는 작은 불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누구를 폄훼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할 때,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의 미래는 밝아질 것입니다. 이 간절한 염원을 담아, 35년 5개월간의 빛 바랜 교무수첩과 현장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씁니다.
2025년 가을,
교육의 본질을 갈망하는 한 교육자, 김 창 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