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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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도쿄에서 4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형 헤이고의 영향을 크게 받아 문학과 예술에 심취했다. 1936년에 도호 영화사의 전신인 P.C.L.의 조감독 모집에 응시해서 합격함으로써 영화의 길에 들어섰다. P.C.L.에서는 특히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고, 그 뒤 야마모토 감독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1943년에 <스가타 산시로>로 데뷔한 뒤 여러 작품을 만들다가, 1951년 <라쇼몽>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는 일본 영화계에 내린 축복이자 구로사와 아키라가 세계적 거장으로 우뚝 서기 시작한 출발점이었다.
구로사와 영화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주제와 속도감 넘치고 재미있는 스토리, 그리고 장엄한 미장센과 섬세한 디테일을 모두 겸비한 독보적인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7인의 사무라이>, <거미의 성>, <숨은 요새의 세 악인>, <요짐보> 등 스펙터클한 시대극과 <살다>,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천국과 지옥> 같은 드라마틱한 현대극을 번갈아 만들며, 주제 의식과 미학의 완성도 면에서 일본 영화를 최정점으로 이끌었다. 또한 셰익스피어와 도스토예프스키, 막심 고리키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대문호들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영화로 만드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1950~70년대에 유럽과 할리우드 영화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일본 영화계를 넘어 ‘세계의 구로사와’로 불렸다. 조지 루카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콜세지 등 유수의 영화감독들이 구로사와 영화의 위대함을 칭송하며 지속적으로 그를 후원해주었다. <가게무샤>, <란>, <꿈> 등은 그런 국제적 후원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기도 하다.
1998년 9월 6일에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생애에 걸쳐 총 30편의 영화 작품을 남겼다. <라쇼몽>으로 1952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는 등 일본 영화를 전 세계에 알리면서 수많은 상을 받았다. <살다>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1953), <7인의 사무라이>로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1954), <데루수 우자라>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1976), <가게무샤>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1980) 등을 수상했고, 1990년에는 세계 영화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아카데미 특별 명예공로상을 받았다.
영화를 만들 때 항상 그가 가슴에 담고 있던 모토 “천사처럼 대담하게, 악마처럼 섬세하게”를 완벽하게 구현함으로써, 그는 영화사에서 보기 드물게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획득한 감독의 대명사가 되었다. 구로사와의 영화가 고전과 현대를 종횡하면서 인간성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한편, 장엄하고 거대한 미장센을 구축하면서도 의상이나 소품과 대사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다루는 솜씨는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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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다이 타츠야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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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배우로서의 명망을 인정받아 동경문화상을 수상했다. 54년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로 영화에 데뷔. <검은 강> <염상> 등으로 좋은 평을 얻고, 59년 <인간의 조건>에서 명실공히 스타가 된다. 이래 출연작품은 100여편을 넘어 일본의 명실상부 한 국민배우로 인정받는다.
61년 제6회 NHK영화상 주연남우상을 수상. 연극에서는 제17회 매일예술상, 제26회 예술선상 문부대신상을, 81년 <카게무샤>, <이백삼고지>로는 매일영화콩쿠르 주연남우상, 에란들 특별상 수상등 영화, 무대에서의 수상은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영화 <하치 이야기>에서 유별난 강아지 사랑을 보여주는 우에노 교수로 열연한 나카다이 다츠야는 무표정한 얼굴로 농담 같은 대사들을 던지며, 관객들에게 친근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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